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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선동자 Nov 09. 2020

99.9%의 부모들이 저지르는 최악의 성차별

단순 성차별이 아닌 명백한 아동학대


요즘엔 젠더 문제, 성평등 대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다 보니 많은 젊은 부모들이 딸, 아들을 차별 없이 키우려고 하는 노력을 조금씩 하는 것 같다. 불과 10~15년 전만 해도 공원에 나가보면 대개 남자아이들은 무채색이나 파란색 옷차림을, 여자아이들은 분홍색이나 보라색 옷차림을 하고 있었고 예외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소꿉놀이나 역할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 여자아이들이었고, 공을 차고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 남자아이들이었다. 근데 요즘 아이들이 많은 공원에 나가보면 여자아이들도 함께 공을 차고 놀고, 남자아이들도 분홍색 옷차림을 한 경우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이렇듯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그래도 젊은 부모들 사이에서는 아들과 딸을 차별 없이 키우려고 노력하는 모습들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 놀이문화, 색상, 옷차림, 행동양식 등에서 제약 없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를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나아지지 않고 99.9% 이상의 아들 키우는 부모들이 공공연하게 저지르는 최악의 성차별이 있다. 바로 "남자아이만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이다. 주변에 머리가 긴 남자아이를 본 적이 있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머리가 긴 남자아이를 찾는 건 진짜 사막에서 바늘 찾는 수준이다. 아무리 세계가 점점 발전하고 평등해져도 남자아이들의 머리를 짧게 잘라버리는 관행은 왜 계속 제자리걸음일까? 99.9%의 부모가 아니라 99.999%의 부모들이 저지르는 최악의 성차별인 셈이다.


이것이 최악의 성차별인 이유는, 일단 남자아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자 아동학대다. 아이들(신생아~유아)은 본능적으로 자기 몸이 자연스럽고 온전한 걸 원한다. 즉, 머리 자르는 걸 본능적으로 싫어한다는 것이다. 남자아이를 키워본 일반적인 부모라면 아마 아들이 생애 처음으로 이발하는 순간에 얼마나 자지러지게 울어댔는지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그렇게 머리 자르기 싫다고 온몸으로 거부하는 아이의 절규는 나 몰라라 하고, 억지로 오랜 시간 앉혀놓고 아이의 몸을 난도질하는 건 아무리 봐도 명백한 아동학대다. 근데 더 큰 문제는 아동학대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걸 아동학대라고 생각하지 않고, 아들을 키우는 부모들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고 공공연하게 그 아동학대를 저지르고 있다는 점이다. 거기다가 아들의 마음을 존중하여 아들의 머리를 길러주는 부모들에게 남자애가 머리가 그게 뭐냐느니, 여자 같다느니, 여자애보다 예뻐서 여자애들이 기죽는다느니 하는 말을 하면서 멀쩡히 잘 키우고 있는 부모와 그 아들에게 무례한 발언을 일삼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지도 않고, 아무도 그걸 문제라고 얘기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문제고 그래서 최악의 성차별인 것이다.


(왜 남자아이들이 머리가 짧은 것이 아동학대인지는 본 페이지 하단에 링크 걸어둔 글을 참고해주세요)


남자아이들 머리 자르는 게 아동학대라고 말하는 것이 비약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근데 지금은 아동학대라고 생각하지만, 과거에는 아동학대라고 생각하지 않고 공공연하게 저지르던 문제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아동노동이다. 19세기 산업화 시대에 아동노동은 너무나도 당연한 관행이었다. 당시에 아동에게 노동을 시키는 것은 가계를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여겼다. 아동노동이 아동학대라고 처음 주장했을 땐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우리 애는 일하는 거 좋아하는데요?" 하고 반문하기도 했다.(일부 좋아하는 몇 아이가 있다고 해서, 아동노동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나머지 대다수 아이들의 고통은 나 몰라라 할 수 있는가? 그 몇 아이들 때문에 아동노동이 아무 문제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동노동이 엄청난 문제라는 걸 점차 사람들이 의식하게 되고, 나아가 국제적으로도 아동노동을 금지하게 된다. 체벌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사랑의 매', '매를 아끼면 자식을 망친다'라는 말로 체벌을 정당화했다. 자식을 훈육하기 위해선 당연히 때릴 수 있다고 여겼다. 매를 들지 않고 키우는 부모는 책임감이 없다고 얘기했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체벌은 아동학대다, 체벌이 훈육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생기면서 사회적인 반향이 일어났다. 그럼 자식이 비행을 저지르더라도 때리지도 못하면 어떻게 키우라는 말이냐 하고 반발하는 부모들이 있었다. "우리 애는 잘못해서 맞을 때 사랑의 매라고 받아들이는데요?" 하는 부모들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체벌이 아동학대라는 문제의식이 자리 잡히고, 때려서 아이를 가르치는 부모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체벌을 하지 않고도 아이를 잘 키우는 부모들이 많아지고 있고 체벌을 하지 않고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고 있다. 이렇듯 처음 문제를 제기했을 때나 과도기에는 비약이라고 여길 수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개선되기 마련이다.


이렇듯 "남자아이들만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이 단순 성차별이 아니고 명백한 아동학대임에도, 99.9% 이상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개선의 의지도 거의 없다는 점에서 분명 최악의 성차별이다. 아무리 아이들에게 "너는 뭐든지 할 수 있어, 여자도 경찰 할 수 있고 남자도 간호사 할 수 있어" 하고 가르치면서 왜 남자아이들한테만 강제로 머리를 짧게 자르는 건가? 길 가다가 머리가 긴 남자를 보고 아이가 "저 아저씨는 왜 머리가 길어?" 하고 물으면 "남자도 머리 길 수 있고 여자도 머리 짧을 수 있어" 하고 말하면서 왜 자기 아들 머리는 짧게 자르는가?


그리고 아들의 마음을 존중해서 머리를 자르지 않고 길러주는 부모들에게, 아들이 머리가 그게 뭐냐느니, 여자 같다느니, 여자애보다 예뻐서 여자애들이 기죽는다느니 하는 황당하고 무례한 발언을 일삼는 사람도 이 최악의 성차별에 가담하는 공범이다. 그렇게 아들을 존중해서 키우려는 깨어있는 부모들에게 그런 황당하고 무례한 말을 하면서 결국엔 아이가 외압에 의해서 머리를 짧게 자를 수밖에 없도록 조장한다.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으려는 시도를 방해하고, 남자아이들이 계속 억지로 머리를 짧게 자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큰 문제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자책하라고 하는 건 아니다. "왜 남자아이들 머리를 억지로 짧게 잘랐나요!" 하고 질책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지나간 일을 가지고 뭐라고 한 들 무슨 소용인가?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아이들 체벌하면서 키웠다고 해서 부모님한테 왜 어릴 때 아동학대했냐고 나무랄 수 있을까? 그 시대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키울 수밖에 없었던 일임을 이해하되,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말자고 얘기하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 세대에서만큼은 아이들에게 "남자아이들만 머리를 짧게 자르는 관행"을 멈춰야 할 것 아닌가. 점차 이런 문제의식이 퍼지면서 남자아이들이 억지로 머리를 짧게 잘리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머리 모양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길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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