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파괴적 여성 욕망의 은유

미드 <킬링 이브 1, 2, 3>

by rewr

서로 다른 조직에서, 서로 다른 목표로 일하지만 소름 끼치게 닮은 이브와 빌라넬. 이브는 영국 정보기관 MI6 요원이고, 빌라넬은 사이코패스 살인마다. 점차 서로를 알아가는 둘은 공포, 분노가 아닌 사랑을 느낀다. 동료를 죽이고 가족을 해친 살인마에게 끌린다는 것, 자신을 쫓는 요원에게 끌린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설정이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 기괴한 설정을 설득시키는 일을 어렵지 않게 해낸다.


핵심은 파괴적 여성 욕망이다. 젠더에 따라 굴절된 불평등한 욕망 구조로 인해 여자들의 솔직한 욕망은 늘 파괴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순종하지 않는 여성의 욕망, 남자가 아닌 여자를 향하는 여성 욕망은 용납되지 않았다. 이러한 욕망이 기존 질서를 균열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빌라넬은 살인을 한다. 살인은 파괴적 여성 욕망의 가장 강렬한 은유다. 빌라넬은 <킬 빌>의 우마 서먼처럼, 애초부터 사회에 순순히 적응하며 살아갈 수 없는 '여왕벌'이다. 여왕벌이 여왕벌로서 존재하려면 자신을 옥죄는 주변을 '파괴(살인)'할 수밖에 없다.


이브만이 빌라넬의 파괴를 다르게 독해한다. 남들은 빌라넬의 파괴를 두려워하지만, 이브는 빌라넬의 파괴에 해방감, 흥분, 전율을 느낀다. 기존의 도덕률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빌라넬에게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오랫동안 함께 일해 온 동료 대신,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던 남편 대신 빌라넬을 선택한다. 매혹적인 드라마다.


다만 시즌이 지날수록 드라마의 전개가 처진다는 게 아쉬웠다. 이브와 빌라넬의 서로를 향한 '기괴한' 욕망은 어느 순간부터 질질 끌린다. 둘 사이의 강렬함이 소진되니, 불필요한 캐릭터 설명과 개연성 없는 인물이 늘어난다. 시즌제 드라마의 어쩔 수 없는 한계기도 하겠지만 조금 짧더라도, 압축적으로 둘의 사랑을 찐득하게 감상하고 싶었던 아쉬움은 떨쳐지지 않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