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비언 욕망이 도둑질 당했음에 분노하며

넷플릭스 드라마 〈아이 엠 낫 오케이〉(2020)

by rewr

넷플릭스 드라마 〈아이 엠 낫 오케이〉의 주인공 시드니는 어둡고 우울한 캐릭터다. 어느 날 갑자기 자살한 아빠와 그녀 마음을 몰라주는 엄마, 그리고 가난. 시드니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디나는 그런 시드니에게 어울리지 않는 친구다. 디나는 시드니와 모든 게 반대다. 예쁜 얼굴을 가져 언제나 남자들이 따라다니고 매사에 유쾌하고 긍정적이다. 우연한 계기에 친해진 디나에게, 시드니는 친구에게 느끼는 감정 그 이상을 갖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런 디나에게 브래드라는 남자친구가 생긴다. 〈아이 엠 낫 오케이〉의 서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건 여기서부터다.


흥미로웠던 건, 여자인 시드니가 여자인 디나를 갈망하고 욕망할 때마다 실패한다는 것과, 그 실패가 이성애로 귀결된다는 점이었다. 시드니와 디나의 미묘한 감정은 이성애중심적인 사회에서 미끄러질 수밖에 없다. 이성애중심적인 사회는 동성애 욕망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 미끄러짐의 순간에 이성애는 기회를 얻고 무언가를 성취해낸다. 이성애는 동성애의 실패를 먹고 자란다.


넷플릭스 드라마 〈아이 엠 낫 오케이〉 스틸컷 ⓒ넷플릭스


시드니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괴짜 남학생 스탠을 만나기 시작한 건 디나가 브래드와 연애를 시작한 후였다. 시드니는 디나에게 받은 상실을 메우려는 의도에서 스탠과의 관계를 시작했다.


스탠이 시드니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착각하는 계기도 동성애의 미끄러짐이다. 브래드에게 상처받은 디나를 위로해주던 시드니는 그녀에게 키스한다. 그런데 분위기가 급격히 어색해진다. 시드니는 또 한 번 좌절한 채 뛰쳐나온다. 스탠이 시드니에게 홈커밍데이 파트너가 되어달라고 제안하는 건 이때다. 홈커밍데이에 참석해 이성애 커플로써 ‘공적 승인’을 얻고자 하는 스탠의 이성애 욕망은 디나를 향한 시드니의 동성애 욕망이 좌절된 직후 실현된다. 스탠이 시드니와 관계 맺기 시작한 계기와 똑같다.


우여곡절 끝에 스탠은 시드니와 친구로 지내게 된다. 한편, 브래드와 헤어진 디나는 시드니와의 키스를 달콤하게 추억한다. 시드니와 디나는 서로의 파트너가 되어 홈커밍데이에 참석한다. 좌절되고 미끄러지기만 했던 시드니의 동성애 욕망이 해피엔딩을 앞두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아이 엠 낫 오케이〉 스틸컷 ⓒ넷플릭스


하지만 시드니의 동성애 욕망은 끝내 완결되지 못한다. 그녀에게 앙심을 품은 브래드가 모든 걸 망쳐버리기 때문이다. 시드니가 동성애 욕망이 이성애로 수렴되는 걸 거부하자(즉 브래드의 파트너였던 디나와 홈커밍데이에 참석하자), 철저한 응징이 가해진다. 이성애로 미끄러지지 않는 동성애 욕망은 승인되지 못한다.


〈아이 엠 낫 오케이〉는 이성애를 ‘자연’으로 재현하지 않는다. 이성애는 동성애의 실패에 얻어걸리는 운 좋은 욕망일 뿐이다. 그러나 이성애 욕망에 '선행하는' 시드니의 동성애 욕망은 이성애중심주의에 의해 너무 쉽게 없던 것으로 여겨져 비가시화된다. 이성애는 그렇게 ‘첫 번째 욕망’이라는 거짓된 명예를 획득한다. 이성애는 동성애가 실패하는 순간마다 얼쩡거린다. 스스로는 존재할 수 없기에 동성애의 실패를 자양분 삼으려 하는 것이다. 요컨대, 〈아이 엠 낫 오케이〉는 모든 욕망에 선행하는 최초의 욕망으로 여겨지는 이성애가 동성애의 실패에 기생함으로써 존재한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이성애자 남자들은 자신의 욕망이 여자들을 구원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 그래서 자신감에 넘친다. 하지만 그들의 당당함은 욕망 충족의 실패 후 무기력에 빠진 동성애자 여성이 있기에 가능하다. 실패한 여성 동성애자들은 모든 의욕을 잃은 후 어쩔 수 없이 이성애 남자에게 의탁한다. 이성애 남자의 당당함은 레즈비언 욕망 실천의 불가능성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이성애중심적인 문화는 레즈비언의 박탈감을 이성애의 성취로 둔갑시키는 도둑질을 구조적으로 승인한다. 어쩌면 이성애중심주의는 레즈비언 욕망의 미끄러짐을 도둑질하기 위해 이성애자 남성들이 고안해낸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도둑질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


넷플릭스 드라마 〈아이 엠 낫 오케이〉 스틸컷 ⓒ넷플릭스


한편, 시드니는 분노할 때마다 발현되는 파괴적인 초능력의 보유자이기도 하다. 왜 시드니는 분노할 때만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이성애에 의해 구조적으로 약탈당한 자신의 동성애 욕망을 애도하는 마음이 초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아이 엠 낫 오케이〉 시즌 1은 흥미로운 질문을 펼쳐낸 후 끝난다. 파탄 나 버린 디나와 시드니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시드니가 초능력으로 빼앗긴 것을 되찾아 올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아이 엠 낫 오케이〉의 시즌 2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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