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시 9)
네 아버지
돈 한 푼 못 쓰고
지약스럽게 살더니만
병원비 내려고
악착같이 모았나 보네
나 돈 안 준다고
지청구 많이 했는데
왜 그리 미워했을꼬
돈이고 집이고
내가 다 독차지할 것을.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잃고, 건강해지기 위해 돈을 쓴다.'는 말이 있다. 누가 지어낸 말인지 딱 드러맞는다.
아버지의 통장에서 정확하게 한 달에 두 번씩 빠져나간다. 아끼느라 써 보지도 못한 돈이 병원비로 다 빠져나갈 줄 짐작이나 했을까. 건강을 자신하던 분한테 이상 증세만 없었더라면 애써 모았던 그 소중한 돈이 술술 빠져나가는 일은 없을 텐데. 젊은 시절부터 건강을 위해 투자해 놨더라면 노년에도 건강을 잘 유지하면서 편안하게 사셨을 텐데. 병원비가 몇 백만 원씩 빠져나갈 때마다 엄마가 눈물지었다.
“병원비 마련하려고 아버지는 그렇게 지독하게 돈을 모았나 보다.”
속상한 마음을 역으로 표현한다.
아버지는 돈을 워낙 좋아하셨다. 지독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돈을 아낀 분이다. 워낙에 가난한 환경에서 나고 자라 절약이라는 덕목이 몸에 배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대학 공부까지 마치려니 짠돌이 생활은 당연했다. 아버지는 경제학과 출신답게 소수점 단위까지 이율 계산을 해서 은행에 예금하는 습관을 가졌다. 새마을금고와 농협 두 곳에 돈을 예금해 놓고 이자를 확인하기 위해 가끔 들러보았다. 불필요한 곳에 허튼 돈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우리는 아버지의 구두쇠 작전에 손발 다 들고 따르면서도 투정을 하기 일쑤였다.
언젠가 엄마의 용돈이 2만 원으로 인상된 적이 있다. 2만 원이라 함은 보통 사람의 2백만 원보다 더 큰 가치를 지녔기에 생활비 인상을 다 같이 축하했다. 부모님이 건강하셨을 때는 두 분이 함께 시장에 다녔다. 아버지의 짠돌이 성격은 시장에서 여지없이 잘 드러난다. 여러 가지 반찬거리를 사고 싶어 하는 엄마는 아버지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하지만 끄떡도 하지 않는 아버지의 표정에 속이 터지는 것은 엄마의 몫이었다. 겨우 떨이로 파는 시든 푸성귀를 들고 오거나, 생선 대가리를 사 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우리를 붙들고 답답한 속을 풀어내느라 하소연했다.
"남자가 배짱이 없어도 분수가 있어야지, 돈을 못 써."
엄마는 천성적으로 남한테 퍼주기를 좋아하고, ‘웬만하면 내가 손해 보고 만다’라는 철학을 가진 분이다. 본인한테는 지독하게 아끼는 분이지만 오는 사람 가는 사람 후하게 대접해서 보내야 직성이 풀린다. 시장에서 참외나 오이를 사 들고 오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하나씩 주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엄마의 심리를 훤히 꿰뚫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구두쇠라는 총대를 메고 최전선에 나선 게 아니었을까. 남 주기 좋아하는 엄마한테 경제권을 맡겼다가는 가정 경제가 위태로워질 수 있겠다는 불안감도 있었을 듯싶다. 양쪽에서 대책 없이 무조건 베풀다 보면 우리 집안 기둥뿌리는 누가 지키냐는 말이다.
하지만 아버지를 상대로 사기를 치려고 계획하는 사람들의 손아귀만큼은 피할 수 없었다. 몇몇 사람들한테 많은 돈을 떼였지만 악착같이 받아내기란 불가능했다. 착하고 여린 성품을 갖고 태어났기에 남에게 싫은 소리는 하지 못하는 분이었다. 돈에 대해서 지독했지 사람한테 지독한 분은 아니었다. 어쩌면 떼일 것을 뻔히 알면서도 눈감고 빌려준 것일 수도 있다.
막상 천상으로 떠나가실 때는 양손 모두 빈손이었다. 쓰지 않은 돈을 몽땅 넣어둔 통장 몇 개가 그대로 남았다. 통장뿐만이 아니라 천상으로 가져가지 못한 아파트도 그대로 남았다. 그가 놓고 간 모든 것들은 엄마의 차지가 되었다. 아버지한테서 한 푼, 두 푼 용돈처럼 받아 쓰던 엄마의 손에 생전 보지도 못했던 목돈이 쥐어졌다. 많은 것을 차지하게 된 엄마는 돈을 쓸 적마다 한탄이 먼저 나오고야 만다.
"이렇게 다 놓고 갈 것을 뭐 하러 지독하게 아꼈다냐?"
"나, 사실 아버지 돈 안 쓴다고 미워하기도 했어."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를 비롯해 우리 가족 모두의 미래를 위해 미움받기를 각오하고 최고의 구두쇠 작전을 펼쳤던 것 같다.
우리는 지금 세뇌교육을 하고 있다. 절대로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이제부터는 엄마를 위해 쓰세요. 아버지처럼 아끼지 말고."
돈 안 준다고 푸념했던 지난날을 후회하며 아버지한테 너무 미안하다고 말하는 엄마.
"돈을 쓸 적마다 죄책감이 들어."
그런 이유로 돈은 여전히 아껴야 한다고 강조하는 엄마한테 또 잔소리를 퍼붓는다.
"엄마, 평생을 아끼느라 돈도 못 쓰고 가신 아버지 생각하면 마음이 좋아요, 안 좋아요?"
당연히 안 좋다고 하시는 엄마한테 떨어질 다음 말은 뻔하다.
"엄마가 아끼느라 못 쓰고 가시면 우리 마음이 좋겠어요, 안 좋겠어요?"
엄마는 자식들의 말은 귀담아듣지도 않고 소파에 앉아 흥얼흥얼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시가 나오려고 하는 순간이다. 나는 얼른 받아 적기 위해 펜을 집어 들었다. 오늘도 엄마의 중얼거림은 운율에 딱딱 들어맞는 자유시가 된다. 어쩜 이리도 생각 정리가 잘 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엄마는 보통 머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