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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Dec 27. 2023

바다에 뿌려다오

(엄마의 시 11)

바다에 뿌려다오   


나 죽거들랑

산소 쓰지 마라

수목장도 하지 마라

수중장으로 바다에 뿌려다오

자유로운 저 새들처럼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고파.  




엄마는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유튜브부터 켜놓는다. 입으로는 흥얼흥얼 자연스레 시를 읊으면서. 나는 얼른 귀를 쫑긋 세우고 시를 받아적는다. 중간에 시가 뚝 끊긴다. 그리고는 뜬금없이 묻는다.

"바다에서 장례식 하는 게 어려운가?"


아마 스마트 폰으로 장례식 관련 유튜브를 검색하다가 '수중장' 치르는 장면을 봤던 모양이다. 요즘 들어 엄마는 장례 방식에 대해 부쩍 관심이 많다. 바다에서 장례를 치르는 모습을 유튜브로 함께 보고 있자니 웅장함과 화려함에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현세를 떠나 천상으로 가는 마지막 길에 성대한 잔치라도 베풀어 주려나 보다. 죽음이란 결코 슬픈 것만은 아니니 이 잔치를 마음껏 즐기라 말해주려는 듯. 


"요즘은 수목장이 유행이래요. 커다란 나무에 표시를 해두면 언제든지 자주 찾아갈 수 있어 좋지."

엄마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미간부터 잔뜩 찌푸린다.

"갑갑해서 어찌 항아리 속으로 들어간다니? 나는 그저 새들처럼 훨훨 날아다니고 싶어."

엄마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채 오래도록 멍하니 앉아있다. 감나무의 앙상한 가지를 바라보는지 애처롭게 매달린 까치밥을 보는지. 뒤이어 "나는 바다에 뿌려졌으면 좋겠어"라는 말이 어렴풋하게 귓전을 맴돌았다.


우리 집에서는 부모님 앞에서 ‘죽음’이라는 낱말을 절대 들먹이지 않았다. 불효라 여겼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해 쉬쉬하던 우리 집에 변화의 바람을 불게 한 건 아버지였다. 정확히 말해 아버지가 천상으로 떠나고 난 후부터다. 나와는 동떨어져 있다고 믿었던 죽음이 아주 가까운 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건 주위를 맴돌며 갑자기 달려들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된 사실이다. 아버지의 부재는 누구도 막아설 수 없는 자연의 섭리라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자식 입장으로는 여전히 버거웠다.


유교 사상이 뼛속 깊이 박힌 시대에 태어난 엄마는 꿈이 있었어도 마음껏 펼쳐보지 못했다. 배움의 열망이 불구덩이보다 더 뜨거웠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다. 가슴에 한이 맺힌 분이다. 얼마나 자유에 목이 마르면 죽어서라도 마음껏 날아다니고 싶다 할까. 훨훨 나는 새가 된다면 아마도 제일 먼저 학교로 날아갈 게 틀림없다. 아흔이 된 지금도 한자를 읽고 쓰고, 명심보감 한 권을 통째로 외우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함께 추모공원에 구경 간 적이 있다. 구청 지원으로 지어진 납골 추모공원에서 회원을 모집하던 때이다. 야트막한 산을 끼고 조성된 공원은 조용하고 깔끔했다. 마치 아파트를 축소해 놓은 것처럼 동수도 많고 층수도 높았다. 시선의 위치에 따라 요금이 차등 적용되는 것도 아파트와 비슷한 구조이다. 생전 처음 납골당이라는 곳을 본 내 눈에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꼿꼿한 자세로 응시할 수 있는 13층 앞에서 아버지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구부린다거나 까치발을 들지 않고도 정면에서 볼 수 있으니 참 좋구나”

아파트로 따지면 완전 로열층이라 할 수 있는 위치였다. 아버지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계약서에 선뜻 도장을 눌렀다. 처음 집을 사던 날, 계약서에 인감도장을 찍을 때처럼 목소리가 상기되었다.

"나중에 우리 둘이 여기 와서 살면 돼."

이승에서는 S아파트 로열층(17층)에서 살았고, 저승에 가서도 로열층(13층)에서 살게 됐다며 허허 웃었다. 그 웃음을 따라 웃어야 할지 멈칫하는 사이 내 가슴은 먹먹해졌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병환을 이겨내지 못한 아버지는 스스로 마련해둔 그곳으로 황급히 떠나고 말았다. 떠나더라도 머나먼 훗날쯤으로 기약했으나 세월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 우리 와는 무관하다 여겼던 죽음 앞에서 인간의 나약함은 속수무책이었다. 사후에 살 집까지 손수 마련하던 아버지의 심정은 얼마나 쓸쓸했을까. 지금에야 되돌아보니 자식으로서 미처 헤아리지 못해 죄스러울 따름이다. 


자유의 날개를 달기 위해 바다에 뿌려지기를 원하는 엄마와 추모공원 13층에서 엄마와의 만남을 기다리는 아버지. 60년 넘도록 함께했던 두 분이 각기 다른 세상으로 가게 될지도 모르는 심각한 상황이다. 아버지는 과연 엄마를 다시 맞아들이게 될 것인가. 엄마는 과연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자유를 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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