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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Dec 31. 2023

불효막심 1등 딸년

나를 기다려주지 않은 아버지


나는 불효막심한 딸이었다.

시댁에 갈 때는 당연히 쇠고기 살 생각을 하면서도 친정 부모님 앞에는 돼지고기를 사 갔다. 왜 그랬을까. 아무리 돌이켜 생각해 봐도 어이없는 일이다. 돼지고기조차도 머릿속으로 1근 살까, 2근 살까 계산하느라 주춤거렸다. 돌이켜볼 때마다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귀밑까지 뜨뜻해진다. 천하의 불효막심한 딸년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 놓고 순서를 정한다면 단연코 일등을 거머쥐고도 남을 일이다.


나를 불효녀로 만든 데는 친정엄마의 일조도 조금은 있었다며 항변해 본다. 시집가기 전부터 나에게 엄청난 강도로 세뇌를 시켰으니까.

“무조건 시댁에만 잘하면 돼." 

"너 살기도 힘든데 친정까지 신경 쓰지 마."


평생 욕심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엄마. 받는 것은 부담을 느끼며 극구 사양해도 주는 것에는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엄마. 남한테 신세를 지면 단 하루도 넘기지 못하고 배로 갚아야 직성이 풀리는 엄마는 자식한테까지도 신세 지기 싫다면서 늘 주기만 했다. 그런 엄마의 성품을 잘 알면서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따랐으니 철부지 어린애가 따로 없다. 이제야 잘못을 깨닫고 그동안 못 해 드렸던 사랑을 듬뿍 드리고 싶은데 엄마는 또 그러신다.

"시댁에 하고 남은 게 있으면 그때 해." 

"나한테는 아주 조금만 해도 돼."     


나는 불호막심한 딸이었다. 

자식이 다니는 영어 학원에는 빳빳한 만 원권 지폐를 다발로 묶어 척척 갖다 내면서 부모님께는 많은 돈을 드려본 적이 없었다. 내리사랑의 표본이라도 보이려는지 자식한테만큼은 눈도 깜빡하지 않고 수많은 돈을 척척 썼다. 자식한테 하는 백 분의 일만 부모한테 했어도 '장안에 효녀'라는 칭송이 자자했을 테다. 


아버지는 돈을 쓰는 것보다 모으는 것을 무척 좋아하셨다. 그런 아버지께 돈 한번 넉넉하게 드려본 적이 없다. 일 년에 고작 명절 두 번, 생신에 한 번 드린 돈이 전부다. 아버지보다 형편이 나은 내가 아버지를 위해 따로 큰돈을 드려본 적이 없다니 천하에 불효막심하기 짝이 없다. 이제 돈 좀 드리면서 살아야지, 하고 마음먹는데 내 앞에 아버지가 안 계신 걸 알았다. 


대졸자 출신이 귀하던 시절이라 얼마든지 출셋길이 보장되었을 텐데 운이 따르지 않은 아버지는 조그마한 회사에 다니셨다. 비위가 틀리는 일도 많았으나 자존심을 버리고 진득하게 버텨냈다. 근검절약을 미덕으로 삼으며 평생 도시락을 옆구리에 끼고 만원 버스로 출퇴근한 것은 자식을 위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 원짜리 동전 하나로 눈깔사탕 열 개를 살 수 있던 그 시절에 월급날이면 빳빳한 십 원짜리 지폐를 주시곤 했다. 없는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을 십 원짜리 한 장을 나는 넙죽 받아 들었다. 자존심을 억누르고 수많은 날을 견뎌내며 받아온 월급에서 쉽게 떼어내기 힘들었을 십 원짜리 지폐. 50년 세월이 지난 지금, 그때 받았던 십 원짜리 지폐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한 푼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고 오로지 근검절약했던 아버지는 그동안 일궈놨던 집과 재산을 고스란히 놓고 떠나셨다. 우리 오 남매가 우애를 굳건히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아흔의 일기로 생을 마친 아버지는 빈손으로 서둘러 떠나셨다. 


그때는 왜 망각하고 있었을까. '부모는 자식이 효도하는 날까지 마냥 기다려주지 않는다'라는 말을.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유명한 묘비명과 함께 깨우침의 말들이 왜 지금에야 생각나는지. 나의 무심함을 이제 한탄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땅을 치고 통곡해도 천상으로 가신 아버지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텐데. 그나마 실낱같은 위안이 되어 주는 것은 내 곁에 엄마가 계신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다행스럽다. 우리에게 마지막 단 한 번의 기회가 남아 있으니. 진짜 효도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굳은 의지를 새긴 우리 오 남매가 하나로 뭉쳤다. 엄마한테 잘해드리고자 하는 다짐이 동생들의 말과 행동에 고스란히 우러나는 걸 보면서 큰딸로서 안심이 된다. 그동안 받기만 해 왔던 부모의 사랑을 아버지 몫까지 얹어 엄마께 돌려드리는 일, 그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천상으로 가신 아버지도 흐뭇한 미소로 응원해 주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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