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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음 May 18. 2021

조카는 카봇 시계에서 진짜 로봇이 나올 거라 생각했다

29살 삼촌의 육아일기 #08

조카가 공룡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은 카봇이다. 아직 제한 상영가에 걸려 자주는 못 보여주지만, 가족들이 기분이 좋은 날에는 종종 틀어주기도 한다.


카봇을 볼 때마다 항상 따라 하는 동작이 있는데, 바로 로봇 호출 장면이다. 주인공이 위급한 상황에 시계를 반 시계방향으로 꺾으면, 포탈이 열리면서 카봇들이 등장한다. 그때마다 조카는 일어서서 잘하지도 못하는 말로, “헬로 카봇” 하면서 시계를 꺾는 동작을 따라 한다.


그렇게 몇 번 보여주다 보니, “카봇 시계”라는 말을 하게 됐다. 하원 후 종종 마트에 들어갈 때 “뭐 사줄까?” 물어보는데, 어느 날부터 계속 “카봇 시계!”라고 답했다.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애가 본인이 갖고 싶은 물건을 직접 말하는 게,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누나에게 말해줬다. 누나도 그 말을 듣고 웃으며 “곧 하나 시켜야겠다”라고 했다.


그리고 몇 일뒤, 누나네에서 애기를 보고 있는데 카봇 시계가 택배로 도착했다.





포장지를 풀자마자 조카는 난리가 났다.


평상시에 그렇게 주야장천 말했던 카봇 시계가 눈앞에 있으니, 안절부절못하면서 빨리 조립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하필 누나네 집에 드라이버도, 건전지도 바로 보이지 않아 찾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랬더니 조카는 나에게 물도 갖다 주고 안아주기도 하면서, 빨리 완성시켜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조립을 하고, 드디어 카봇 시계의 스위치를 켰다.


비싸게 주고 산만큼 시계에서 주인공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고, 불빛도 번쩍이는 등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그리고 조카가 좋아하는 카봇 호출 장면도 음성으로 녹음돼있어, 그 장면을 연상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조카는 어딘가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뭔가 김샌 것처럼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의 장난감에 비해서 화려하고 재밌는 것 같은데 왜 이러지?’ 생각했다. 조금 더 흥분시켜주기 위해 카봇을 틀어주면서 변신 장면을 보여줬다. 그리고 직접 시계를 돌리면서 그 장면을 직접 따라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데 조카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상태로 이제는 카봇 만화까지 끄라고 했다. 만화 중에서 거의 제일 좋아하는 카봇인데, 시계도 싫고 만화도 보기 싫다고 하니 난감했다.


‘시계가 생각보다 별로인가?’, ‘만화에 비해 시계가 좀 다르게 보이나?’, ‘조금 더 비싼 걸 사야 했나?’ 등 엄마랑 앉아서 왜 저럴까 연구를 했다. 한 10분 동안 고민하다, 문득 생각이 하나 스쳐 지나갔다.


    “엄마, 쟤 혹시 시계 끼면 진짜 로봇 나오는 줄 알았는데 안 나와서 실망한 거 아니야?”

    “어? 그런가 보다 정말!”




조카의 생각을 이해해보려고 나의 추억을 더듬거리며 거슬러 올라가던  중 유치원 때가 생각이 났다.


나는 그때 벡터맨에 빠져있었다. 특히 이글을 좋아해서 유치원에서 벡터맨 역할 놀이를 할 때마다 이글을 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래서 어린이날 선물도 당연히 벡터맨 이글 시계를 사달라고 했었다.


그렇게 선물을 받았던 날, 나도 조카처럼 집에 가서 바로 변신을 했었다. 그런데 TV와는 다르게 변신이 되지 않았다. 계속해도 내 몸은 그대로였다. 그때 처음으로 ‘TV와 현실은 다르구나’ 느꼈던 것 같다.


그때의 그 실망감을 지금 조카가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 밑도 끝도 없는 아이의 순수함에 웃음이 낫다. 그리고 예전의 나처럼 실망감을 갖게 해주고 싶지 않았다. 동심을 지켜주고자 조카에게 가 말을 걸었다.


    “xx아! 저기 밖에 봐봐! 방금 시계 돌려서 카봇들이 저기 돌아다닌다!”


사실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헬리콥터 한 대가 지나가고 있었다. 애기 때는 동심으로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서, 정말 카봇이 있는 것처럼 연기를 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같이 해달라고 눈치를 줬다. 엄마도 그 상황이 웃기신 지 계속 웃고 계셨지만, 옆에 오셔서 실감 나게 연기해주셨다. 그렇게 하니까 조카는 다시 기분이 풀려서 저기 카봇이 있다고 직접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도 했다.



사실 커가면서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을 더 많이 보게 된다. 나도 그렇고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다. 그렇게 동심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을 무렵, 아이의 순진 무구함을 보았을 때, 잠시나마 나의 옛 동심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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