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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음 May 20. 2021

엄마는 손자 육아가 끝나면, 자식 육아를 시작한다.

29살 삼촌의 육아일기 #09



매주 월요일, 누나네 집 근처에 작은 장이 들어선다. 3개 부스 정도 되는 장인데, 그 사이에 돈가스 집이 있다. 엄마는 매주 월요일 그 돈가스 집 앞에서 서성이다 누나에게 전화를 한다.


    "응~ 엄마인데, 오늘 돈가스 사갈까?"


통화를 마친 후 엄마는 등심 돈가스와 치즈 돈가스 세트를 사신다. 그리고 누나네 손주를 돌보다 누나가 돌아오면, 어서 가서 씻으라고 하고 아까 사 온 돈가스를 다시 데워주신다. 그리고 누나가 씻은 뒤 바로 저녁을 먹을 수 있도록, 간단하게 저녁 상을 차려주신다. 샤워 후 돌아온 누나는 허겁지겁 저녁을 먹는다.


엄마는 이렇게 손자 육아가 끝나면, 다시 자식 육아를 시작한다.




누나네 내외는 맞벌이 부부다. 엄마와 내가 육아를 맡아서 해주고 있지만, 누나가 돌아와서 해야 할 집안일은 항상 쌓여있다. 누나가 일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대략 7시 정도, 잠시 씻고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으면 어느새 8~9시가 된다. 아이와 잠시 또 놀아주다 보면 깊은 밤이 되고, 다음날 또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12~1시에는 잠에 들어야 한다. 사실상 그렇게 되면 집안일을 할 시간이 많이 없다.


엄마는 그런 누나네 사정을 아셔서, 육아를 할 때 누나네 집안 살림을 조금 도와주신다. 아이 빨래를 해주시거나, 치우지 못한 설거지를 해주시거나, 밑반찬을 만들어주시기도 한다.


매주 월요일에 돈가스를 사는 이유도 그러한 이유다. 퇴근 후 돌아온 누나가 저녁 먹는 모습을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아이를 먹이느라 저녁을 먹는다는 개념보다 때운다는 개념으로 먹었다. 아이를 다 먹이고 급하게 컵라면을 먹거나 비엔나소시지를 뜯어서 그냥 먹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더니, 엄마는 언젠가부터 돈가스를 사기 시작했다. 누나도 집에 돌아와서 맛있는 것 좀 먹고 싶을 텐데, 돈까쓰는 뒀다가 저녁으로 먹을 수도 있고 급하면 돈가스만 먹어도 배부를 것 아니냐고 하셨다. 정말 누나는 그랬다. 처음 사다 준 날 오자마자 돈가스를 집어 먹기 시작하더니 너무 맛있다고 했다.




그런 모습이 엄마는 마음에 걸렸는지, 이후 종종 누나한테 저녁에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고 가라고 하셨다. 더 맛있는 음식을 해줄 수도 있고, 엄마나 내가 아이를 봐주면 좀 더 수월하게 밥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은 하시지 않지만, 밥 먹을 때 만이라도 마음 편히 먹으라는 엄마의 배려다. 그렇게 엄마는 정해진 시간외에 연장 근무를 할 때가 많다.


주말에도 누나가 육아 때문에 힘들까 봐 종종 넌지시, "갈 곳 없으면 우리 집에 와서 있어"라고 말하신다. 코로나로 인해 아이를 데리고 외출이 힘들기 때문에, 갈 곳이 없는 누나네를 집으로 불러 잠시 있게 하신다. 그리고 아이가 자면, 그동안 밥을 차려주신다. 종종 아이가 조금 늦게 일어나면, 늦은 김에 같이 저녁 먹고 가라고 말씀하시면서 저녁도 한 끼 차려주신다. 누나로써는 아이를 돌봐줄 사람도 있고 밥도 해결할 수 있어, 집에 오면 마음이 한결 가벼웠을 것이다.


그런 엄마가 걱정되어 내가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해도, 엄마는 "힘든 거 다 아는데 엄마가 돼서 어떻게 그냥 가만히 있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렇게 엄마의 자식 육아는 자식들이 다 컸어도 아직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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