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음 Jun 02. 2021

비가 올 때는 하원이 참 힘들다.

29살 삼촌의 육아일기 #11



아직 장마철도 아닌데 요새 참 가 많이 온다.


창문 밖에 어두컴컴한 하늘, 습기 가득한 날씨, 옷에 비가 젖는 찝찝함 등 비가 오는 날은 기분이 꿀꿀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런 날 나의 가장 큰 걱정은 하원이다.




비가 올 때는 하원이 참 힘들다.


육아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비가 온다고 하원이 힘든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비가 오는 날이 가장 힘들다.


아이에게 우산을 씌우는 게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다. 아이와 나의 키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내가 쓰고 있는 우산 아래로 아이와 함께 걸으면, 아이는 비를 다 맞는다. 조카가 좀 컸으면 혼자 우산을 쓰고 가라고 하면 되는데,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비가 오면 한 손에는 조카를 안고, 한 손에는 우산을 들어서 집까지 데려와야 한다. 아니면 아기 자전거에 아이를 태우고 아이만 혼자 우산을 쓰게 한 다음, 나는 비를 맞으면서 집에 오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평소처럼 우리 엄마와 함께 조카를 돌볼 때는 다행이다. 엄마는 차가 있기 때문에 비가 오면 차를 갖고 하원 시킨다. 차를 타면 비도 안 맞고, 맥도날드 드라이브 스루에 들려서 간단한 간식도 사 올 수 있다. 아니면 같이 아기 자전거를 갖고 나가서 한 명이 옆에서 우산을 씌워주기도 한다.


하지만 종종 나 혼자서 아이를 보게 되는 날은, 비가 오면 온 힘을 다해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와야 한다.




비가 오는 날은 집에 데리고 와도 할 일이 많아진다.


평소 같으면 집에 도착해서 옷 벗기고 손만 씻기면 된다. 그런데 비가 오면 일단 아이가 감기에 걸릴까 봐 실내 온도를 높이거나, 전기장판을 켜야 한다. 그리고 비를 조금 맞으면 어서 닦아주고, 너무 많이 맞았으면 따뜻한 물에 한번 씻겨줘야 한다. 나와서도 혹시 감기에 걸릴까 봐 이불로 잠시 아이를 덮어줘야 한다.


비가 와 밖에서 놀지 못한 조카는 이제 모든 에너지를 실내에서 푼다. 날씨가 맑으면 밖에서 뛰어다니기 때문에 집에 돌아올 때쯤 체력이 바닥나 있지만, 밖에서 놀지 못하면 실내에서 왔다 갔다 하며 엄청 뛰어다닌다 (참고로 집에는 소음 방지 매트가 깔려있다). 그렇게 한차례 실내에서 뛰고 나면 장난감 통을 뒤엎으며 장난감 놀이를 하자고 조른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내가 맞아주는 역할을 하면서 조카랑 놀아줘야 한다.


이처럼 비가 오면 하원 하는데 힘을 다 쓰기도 하고, 번거로운 일들도 많아져서 웬만하면 비가 안 왔으면 한다. 만약 하원 전에 날씨가 꾸리꾸리 하면, '제발 비 오지 말아라...'라고 기도하지만, 요새는 속절없이 비가 내린다.




그래도 조카랑 그렇게 한차례 힘든 하원을 마친 후, 나도 씻고 나오면 뭔가 개운함을 느낀다. 


누나의 부탁으로 베이비 시터를 하고 있지만, 종종 나도 속으로 '내가 애를 잘 보고 있나?'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전문 시터가 아니기 때문에 내 행동에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그럴 때 요즘처럼 비가 내려 힘들게 하원 하면, '그래도 밥 값은 했네'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누나에게 "비가 와서 너무 힘들었다~~"라고 말하면서 생색 한번 낼 수 있고, 잘하면 누나가 고생했다고 짜장면을 사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비가 오는 게 좋은 것은 아니다. 요 며칠간 날씨가 조금 맑아서 좋지만, 당장 내일모레 비 소식이 있어 벌써부터 기분이 착잡하다.

이전 10화 아이들은 서로의 이름만으로 친구가 될 수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