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 삼촌의 육아일기 #12
조카가 얼마 전부터 말문이 트이기 시작했다.
"둘리", "공룡" 등 짧은 단어를 시작으로, 요새는 "배고파", "배 아파", "집에 가자", "어서 가자", "다리 아파" 등 짧은 문장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아니야"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귀엽고 웃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뒷목 잡을 일이 많아졌다.
이제는 뭐만 하면 "아니야"다. 씻자고 해도 "아니야", 맘마 먹자고 해도 "아니야", 어린이집에 가자고 해도 "아니야", 집에 가자고 해도 "아니야" 등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반대로 하려고 난리를 친다. "아니야"라는 말이 많아질수록, 내 목소리 톤은 점점 높아지고 조카의 칭얼거림은 더 심해진다.
종종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등 아이와 부모 문제에 대해서 진단하는 프로그램을 보면, 부모가 아이에게 다그치고 막무가내로 화를 내는 장면이 많았다. 그걸 볼 때마다 '부모가 왜 굳이 저렇게 소리를 칠까? 좋은 말로 타이르고 설명하면 되지. 저러니까 애 성격이 나빠지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내가 막상 그 상황이 되니, 웃프게도 조카에게 높은 톤으로 혼을 내고 있었다. 옷도 안 입고 갑자기 나간다느니, 집에 있는 곰돌이 인형이 할머니 집에는 없다고 집에 간다느니, 우유를 먹고 싶다고 해서 덥혀왔더니 안 먹는다느니 해서 "안돼"라고 말하면, "그거 아니야"라고 하면서 여전히 칭얼댄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갖고 계속 고집을 부리니까 나도 모르게 화가 나고, 그럴 때마다 "TV 안 보여준다!", "할머니랑 삼촌 다 간다!"라고 혼을 낸다. 그러면 얼굴은 시무룩한데 고집 꺾기는 싫어서 그대로 가만히 서있는다.
혹시 이런 식으로 자주 혼내면 아이에게 좋지 않을까 봐, "반대로 하는 아이 이유"라고 검색해봤다.
검색해보니, "아니"라고 말하며 반대로 하려는 아이의 행동은 아이 최초의 독립적 의사 표시라고 한다. 본인도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어른들은 그걸 몰라주고 성에 차지 않으니 직접 해보려고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럴 때 해결책은 너무 말이 안 되는 상황은 아주 빠르고 따끔하게 "안돼" 하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아이가 원하는 행동이 뭔지 예측해서 아이에게 "아~~ 이런 걸 하고 싶은 거구나?"라고 말하고,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해주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나도 어렸을 때 그랬던 것 같다.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이 많지는 않지만, 조카처럼 행동하다 엄마한테 혼났을 때가 기억난다.
내가 아파서 죽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엄마는 그래도 맛있는 죽을 먹이고 싶어 시장에서 죽을 종류별로 5~6개를 사 오셨다. 그런데 내가 하나하나 다 "싫어", "안 먹어"라고 말하니 엄마도 화가 나서 "먹지 마! 그럼"이라고 하셨다. 그 모습을 외할머니가 지켜보시더니, "애한테 그러면 먹니? 덥혀서 천천히 먹여봐야지!" 하시고 손수 먹여주셨다. 그리고 "이거 먹고 싶어? 이거 먹어 볼까?"라고 말해주시면서 달래주셨다. 그땐 할머니가 내 마음을 다 알아주는 것 같아 참 고마웠다.
조금 알아보고 나니, '조카도 본인 나름대로 의사표시를 한 건데 삼촌이 몰라줘서 답답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외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뭘 하고 싶은지 천천히 달래주면서 말했으면, 조카도 나도 신경전 벌일 필요가 없었는데, 아직 그 요령이 없어서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직도 "아니야"라는 칭얼거림에 익숙해지지는 않는다.
나중에 더 나이가 들면 그때는 조금 익숙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