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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음 Jul 07. 2021

가끔 기계가 사람보다 더 아름다울 때가 있다.

29살 삼촌의 육아일기 #17

조카를 하원 시키고 실컷 놀리다 집으로 데려오면, 삼촌으로서 나름 중요한 육아가 시작된다. 그건 바로 ‘독서’다.   


다른 아이들보다 말문이 조금 늦게 틔여 어린이집 원장님이 독서를 권유했는데, 집에서 책을 가까이한 게 나뿐이라 내가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이게 효과가 있을까?’ 반신반의했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말문이 트이기 시작했다. 같은 책을 여러 번 읽게 되자, 조카는 구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단어로 책을 설명하기까지 했다. 덕분에 지금은 말문이 많이 트여서 단문과 간단한 복문까지 잘 구사하고 있다.


그런데 독서시간이 점차 많아질수록 조카의 짜증과 실증도 잦아졌다. 엄마는 읽기 싫어하면 읽히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얼마 전에 본 다큐멘터리의 충격적인 내용 때문에 독서를 계속 시키고 있다. 요새 아이들의 문해력에 관한 다큐멘터리였는데, 어릴 때부터 스마트 기기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독서 행위 자체에 심한 압박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아이들은 그림책의 짧은 글을 읽는 것도 힘들어했다. 글을 읽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글을 읽는 ‘행위’를 어려워했다. 그 다큐멘터리에서 4살 전후의 독서습관이 앞으로의 문해력을 좌우한다고 나와, 조카에게 최대한 책을 읽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본인 주관이 생긴 지금 시점에서 강제로 책을 읽게 하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딜레마를 말끔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심지어 지금은 조카가 먼저 책을 읽자고 한다. 그 방법은 바로 ‘오디오북’이었다.





나는 ‘밀리의 서재’를 정기 구독하고 있다. 책을 읽을 때 대부분 종이책으로 독서를 하지만, 밀리의 서재를 이용하면 굳이 서점에 가지 않아도 여러 권의 책을 미리 읽어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구독하고 있다.


밀리의 서재는 오디오북 기능도 있었지만, 사실 조카에게 오디오북을 들려주기 전까지 사용하지 않던 기능이었다. 처음에는 신기해서 몇 번 써봤는데 눈으로 읽는 게 훨씬 빠르고, 오디오북을 듣는 동안 다른 일을 하면 내용이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아 잘 쓰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누나가 잠시 저녁을 먹는 동안 아이를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별생각 없이 아이패드로 조카가 좋아하는 텔레토비를 틀어줬다. 나는 그 사이, ‘요새 볼 만한 책이 뭐 있나’ 하면서 핸드폰으로 밀리의 서재를 훑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혹시 오디오북으로 구연동화는 안되나?’ 생각이 들었다. 재빨리 검색을 해보자 생각보다 많은 구연동화 오디오북들이 있었다. 심지어 조카가 좋아하는 뽀로로, 타요, 띠띠뽀 등과 같은 캐릭터 책들도 있었다. 아이패드도 있겠다, ‘한번 시험 삼아 읽혀봐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우리 텔레토비 말고 이거 한번 봐보자!"

    "싫어! 텔레토비!"


아니나 다를까 조카는 텔레토비를 보겠다고 떼를 썼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잠시 시선을 딴 데로 집중시키고 얼른 아이패드로 오디오북을 켰다.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하는 듯했으나, 곧 오디오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오디오북은 생각보다 퀄리티가 좋았다. 해당 애니메이션 캐릭터 성우들이 책을 읽어줬다. 구연동화처럼 글 한마디 한마디에 감정이 가득했고 전달력이 높았다. 내가 평소에 읽어주던 것과 비교하면, 역설적으로 기계가 읽어주는 책이 더 사람 같았다. 나는 오히려 뻣뻣하고 어색해서 더 기계 같았다.





이후로 몇 번 더 오디오북을 틀어줬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아하면서 집중도 잘했다. 나중에는 직접 더 읽어달라고 조르기까지 했다. 책 읽기를 싫어하던 상황에서 오디오북은 육아에서 한 줄기의 빛과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애니메이션을 안 보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책보다는 애니메이션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조금의 책을 읽는 것에 정말 만족한다.


사람이 기계보다 아름답다고 하지만, 이번만큼은 기계의 아름다움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해당 글은 (주)밀리의 서재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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