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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음 Jun 22. 2021

우리 조카님은 짜장면이 좋다고 하셨어.

29살 삼촌의 육아일기 #15

언젠가 한번 엄마가 저녁을 차리기 너무 귀찮다고 짜장면을 시켜먹자고 했다.


엄마는 애를 키우는 누나가 안쓰러워서, 퇴근 후에 우리 집에 들려 밥을 먹고가라고 할 때가 많다. 그러면 나도 있고, 엄마도 있으니 누나가 편히 밥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은 엄마도 너무 힘이 드셨는지, 배달을 시키자고 했다. 가족들이 모두 짜장면을 좋아해서, 배달 메뉴는 중화요리로 결정됐다. 몇 십분뒤, 배달이 도착하고 누나는 아이에게 먹일 밥을 준비해 상에 앉았다. 그런데 조카는 밥을 먹지 않았다.


    "왜? 밥 먹기 싫어?"

    "짜장..."

    "짜장면 먹고 싶다고...?"

    "네!"


조카는 갑자기 짜장면을 먹겠다고 했다. 누나는 '이걸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가위로 잘라 한 젓가락 먹여봤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조카는 너무 잘 먹었다. 한 젓가락 먹기 시작하더니, 밥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계속 짜장면을 달라고 했다. 신기해서 탕수육도 조금 줘봤는데, 탕수육은 맛이 없다고 하고 짜장면만 달라고 했다.


    "신기하다... 짜장면이 맛있나?", 나는 신기해서 말했다.

    "이 맘때 애들은 짜장면을 좋아하긴 하지. 너도 그랬어", 엄마가 말했다.


그렇게 조카는 거짓말 안하고 짜장면 1/3을 먹었다. 더 먹으려는 것을 엄마가 겨우 제지했다.


    "다음부터는 곱배기로 하나 시켜야겠다...", 누나가 말했다.


짜장면을 너무 잘 먹으니 신기했다. 나는 사실 애들이 피자나 통닭, 햄버거 같은 인스턴트 음식을 더 좋아할 줄 알았다. 짜장면이야 우리한테는 맛있는 음식이지만, 아이에게는 기름진 육즙이 가득한 인스턴트 음식에 비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또 짜장면은 검은색이라 아이의 입장에서 맛이 없어 보일 것 같았는데 웬걸, 다른 음식보다 제일 좋아했다. 그때부터 우리 집 배달 음식은 짜장면으로 통일됐다.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한국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지오디의 '어머님께' 가사 중 일부다. 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노래인데, 가난 속에서도 아이에게만큼은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하고 싶은, 모성애가 엿보이는 노래다. 그런데 여기서 그 신파를 다룰 생각은 없다. 이제는 길거리에 널린게 중국 음식점이며, 국민소득도 많이 오른 시대다.


내가 이 가사를 언급한건, 짜장면이라는 단어에 압축된 의미가 궁금해서다.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 짜장면을 하나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대 외식의 상징이자, 비싼 음식의 은유적 표현 정도로 생각했다. 90년대생인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면 아웃백이나 빕스 정도가 될것 같다.


그런데 조카를 직접 길러보니 애기가 진짜로 짜장면을 좋아했다. 노래처럼 깊은 모성애 그런 걸 느끼는게 아니라, 조카는 그 맛 자체를 좋아하고 느끼고 있었다. 90년대 박진영에게 아이는 큰 관심사가 아니였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는 짜장면을 좋아하다는 고증이 너무 잘 반영됐다.


'짜장면'이 관통하는 감정은 무엇일까? 추억일까, 맛일까? 어떻게 부모님 세대부터 조카 세대까지 호불호 없이 먹게 되는 걸까?




길거리를 돌아다녀 보면 요새는 별에 별 것을 다 판다. 중국 음식도 다양해져 한 때 우리나라에 마라 열풍까지 불었다. 또 배달 문화도 발전해서 요새는 어플만 키면 한식, 중식, 일식, 양식 등 없는 음식을 찾기가 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짜장면은 여전히 인기 있는 음식이다. 추억으로 먹는건지, 맛으로 먹는건지, 또 짜장면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는 개인 마다 다를 것이다. 답을 낼 수는 없지만, 조카를 보며 내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짜장면이 무엇인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이미 좋아한다는 것이다.


조카가 짜장면을 좋아한다는 것을 안 이후로, 배달을 시키기 전에 "오늘 뭐 시켜먹을까?" 물어보면, 조카는 "짜장"이라고 말한다. 이제는 눈치도 좋아져서 주문을 하고 몇 십분 뒤 초인종이 울리면, 직접 나가서 짜장면을 들고 온다. 그 모습이 웃기고 재밌어서 일주일에 한 두번 정도 짜장면을 시켜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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