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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음 Jul 13. 2021

아이가 점잖을 때가 제일 무섭다.

29살 삼촌의 육아일기 #18

올해로 조카는 만 3살이 됐다. 나는 작년 이맘때 즈음부터 조카를 돌봤다. 처음부터 전적으로 돌 본 것은 아니고, 친할머니 병간호로 바쁜 엄마를 대신해서 잠깐잠깐 돌보다, 어느 순간부터 전적으로 돌보게 됐다.


작년의 조카는 참 조용하고 귀여웠다. 크게 말썽을 피우지 않아서 육아가 한결 수월했다. 어린이집에서 하원 시키고, 간식 좀 먹이다 같이 뽀로로를 보며, 조카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7시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온 누나와 교대하고 맥주 한 캔을 사서 집에 왔다.


하지만 올해의 조카는 상당히 힘들다. 전에도 한 번 올린 내용이지만, 조카는 이제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하원 후에도 꼭 놀이터에 들려야 하고, 이제는 놀이터에서 1~2시간 노는 것은 기본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기운이 남아도는지, 한 30분간 방방 뛰다가 배가 고플 때가 돼서야 차분해진다.


엄마에게 종종 “작년이 나았어…”라고 말하면, 엄마는 오히려 지금이 좋다고 한다. 이제 말도 잘하고 감정 표현도 풍부해져서, 훨씬 애 키우는 맛이 난다고 했다. 나는 질색하며, “말을 잘해서 이제는 한마디 한마디 지지를 않아… 힘들어…”라고 응수한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난리를 치며 다니는 모습이, 점잖은 모습보다 훨씬 보기 좋다.




해맑은 아이의 모습이 보고 싶어 난리 치는 것 까지 좋아하게 된 걸까? 전혀. 그건 부모의 입장일 테고, 나는 ‘혹시…?’하는 생각 때문이다.


약 1년간 육아하며 가장 공포스러울 때는 아이가 점잖을 때다. 아이가 점잖다는 것은 곧 크게 아플 것이라는 신호다. 이렇게 되면 보통 2가지로 아프게 되는데, 열과 동반한 감기가 오거나 설사를 한다.


작년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는 코로나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의 여파는 어린이집까지 찾아왔다. 아이가 열이 나거나 기침을 하면, 즉시 어린이집 등원이 금지된다. 어린이집뿐만 아니라 병원조차 열이 떨어지기 전까지 내원이 어렵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힘든 것은 어린이집을 가지 못하는 동안 집에서 아이와 함께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전히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작년 이맘때 조카는 에어컨으로 인한 냉방병으로 고생을 했다. 혹여나 아이가 더울까 봐 밤낮으로 에어컨을 틀었는데 오히려 부작용으로 냉방병이 생기고 말았던 것이다. 열이 올랐다 떨어지고, 기침이 잦아졌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코로나 시국이 아니라면 감기가 좀 나아졌을 때 어린이집을 보내도 상관이 없었었겠지만, 코시국 이후부터는 열과 기침이 조금만 나도, 바로 등원 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그러면 하루 종일 애기와 집에서 씨름을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작년 여름의 절반 정도를 등원하지 못하고 집에서 육아를 했다.


근데 조카는 꼭 아프기 전에 갑자기 점잖아졌다. 간식도 먹고 뛰어다닐 시간인데 조용히 누워서 티브이만 바라볼 때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보이고 한두 시간 후, 여지없이 열이 올랐다. 그래서 점잖은 모습보다 차라리 난리를 치며 돌아다니는 모습이 훨씬 마음이 놓인다. 요새도 아이가 조용히 점잖게 티브이만 볼 때면, 걱정이 돼서 등을 한번 쓱 만져본다.





작년 일을 계기로 올해 우리 집은 아이가 있을 때 웬만하면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 식구가 모여 저녁을 먹을 때면, 각자의 온기로 인해 더워지기 십상인데도, 여러 개의 선풍기를 돌리며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으로 인해, 앞으로 어린이집 등원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 시기 동안에 역설적으로 조카의 점잖은 모습보다 난리 치는 모습을 더욱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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