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 삼촌의 육아일기 #20
어느새 조카의 머리카락이 많이 자랐다. 깔끔했던 머리카락이 중구난방으로 뻗치며 덥수룩해졌다. 그 모습이 보기 싫었던 우리 엄마는 조카를 꼬드기기 시작했다.
“머리가 많이 자랐는데 오늘 할머니랑 같이 머리 자르러 가면 안 될까?”
“아니야, 싫어!”
“왜~ 우리 손주 머리 자르면 얼마나 예쁜데!”
“아니야!”
조카가 꼬드김에 넘어가지 않자 엄마는 조금씩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머리를 안 자르면 내일 키즈카페에 못 들어간다던데?”
“응?”
“거기 아저씨가 ‘머리 안 자른 사람들은 위험해서 못 들어가!’라고 하면서 집으로 돌려보낸데!”
“아니야…”
“뭘 아니야. 진짜로 아저씨가 돌려보낸데. 그래서 오늘 할머니가 우리 손주 머리 자르려고 했던 거야. 키즈카페 가고 싶어 했는데 못 들어가면 어떻게 하려고!”
“…”
조카는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할머니랑 지금 머리 자르러 갈까? 그러면 내일 키즈카페 갈 수 있을 텐데!”
“…”
“어떻게? 갈 거야, 말 거야? 오늘 자르면 내일 놀러 갈 수 있어!”
“가…”
“머리 자르러 간다고?”
“응…”
엄마의 거짓말이 통했는지, 조카는 내키지 않지만, 머리를 자르러 가자고 했다. 신난 엄마는 서둘러 항상 가던 미용실로 향했다.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원장님이 계시지 않았다. 엄마는 목청을 높여 원장님을 찾았다. 그때 옆 가게에서 문 소리가 들리며 원장님이 나오셨다. 여러 자루의 가위와 빗이 담긴 앞치마의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서 미용실로 걸어오셨다.
“우리 xx이 왔네?”
“아.. 아니야…!!”
조카는 돌처럼 얼굴이 굳어졌다.
“으아아앙~~~”
머리를 자르겠다고 약속한 조카는 원장님을 보자마자 상가가 떠나가도록 울기 시작했다.
“괜찮아, 괜찮아! 아까 머리 자른다며”
엄마와 내가 진정을 시키려고 했지만 이미 겁에 질린 조카는 우리 말을 듣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잠시 안아주면서 진정되도록 달래줬다. 한 10분 후 조카가 조금 진정이 되자, 엄마는 조카에게 다시 물었다.
“머리 안 자를 거야? 그러면 내일 키즈카페 못 가는데?”
“아니야… 갈 거야…”
“그러면 머리 자를 거야?”
“…”
“머리를 잘라야 키즈카페에 가서 놀지”
키즈카페는 가고 싶은데 머리 자르기는 싫고… 그렇게 조카는 미용실에서 108 번뇌를 하며, 마음속으로 엄청난 갈등을 겪고 있었다. 그 사이에 미용실에 손님이 왔는데, 손님도 그 상황이 웃겼는지 “아줌마 봐봐! 아유~ 시원하네~ 하나도 안 아프네~”하면서 우리를 도와주셨다.
마음이 조금 흔들렸을 때, 미용실 원장님은 살짝 머리를 잘랐다. 깜짝 놀란 조카는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뭐가 그리 서글프다고… 상가가 떠나가도록 엉엉 울었다. 결국 오늘은 도저히 못 자르겠다고 생각한 엄마는 그냥 미용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오늘 머리 못 잘랐으니까 내일 키즈카페 못 가겠다 우리 손주”
엄마는 머리를 자르게 하려고, 조카에게 한 번 더 갈등을 안겼다.
“아니야… 갈 거야…”
“어떻게 가! 머리를 안 잘라서 못 간다고 하는데!”
“아니야… 갈 거야… 으아아아아앙~”
조카는 다시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엄마는 어쩔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웃으면서 “알겠어 알겠어. 미용실 안 가. 어서 씻고 오자!”라고 말하며 조카를 씻기셨다. 그런 조카에게 엄마는 “오늘은 못 잘랐으니까 내일은 엄마랑 같이 가서 꼭 잘라야 해, 알았지? 그래야 키즈카페 간데”라고 말했다. 씻고 나온 조카는 기분이 좀 나아졌는지 “응”이라고 했다.
하지만 다음날 누나에게 물어보니 그날도 머리 자르기에 실패했다고 한다. 결국 이발병 출신인 매형이 집에서 조금씩 조금씩 잘랐다고 했다.
나도 어렸을 때 머리 자르는 게 무서워서 울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그때 나도 조카처럼 이렇게 엉엉 울었을까? 사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무서웠는지…
어서 조카가 마음 편히 이발을 받을 수 있는 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