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번외편, 익숙하고도 낯선섬, 제주

by 청량

그곳이 그토록 좋았던 것은 왜일까

안정적으로 도피할 수 있었던 섬,

일상을 떠나 자연을 누릴 수 있고,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었던 시간,

낯설기에 더 아름답고,

낯설기에 더 자유로웠던 순간들,

제주에서의 시간은 마치 따뜻한 꿈처럼 지나갔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허락된 것 같았다.(물론 우리 부부는 제주에 있는 3달간 둘다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적인 것에서는 자유를 허락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개의치 않으려고 했다. 없는대로 있는대로 충분히 즐겼다.)

바다를 보고, 바람을 맞고, 길을 걷고, 오름을 오르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해야할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순간들이었다.

조금 더 느슨해도, 조금 더 천천히 걸어도 되는 시간이었다.

강박에서도 벗어나고 싶었다.

시간을 지키느라, 계획된 대로 하느라 지칠대로 지친 나는 제주에서만큼은 그것들을 내려놓아 보려 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불안을 떨쳐내고,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겨보는 시도. 솔직히 만족할만큼 잘 되진 않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답답하게 살아왔는지를 깨달았다.

그렇게 무려 세달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한 70퍼센트 쯤은.....


제주를 떠올리면 가슴 한쪽이 뭉클하다. 아주 감성적인 날이면 눈물이 핑 돌기도 한다.

언제였던가. 떠나온 지 한달하고도 며칠이 흘렀는데 마치 30년은 지난 것처럼 아득하다.

멀리 와버린 것 같은 희뿌연 느낌이 든다.

꿈인듯, 오래된 기억인듯, 안개 낀 길을 더듬어 나가듯 조각조각 펼쳐지는 순간들이다.

귓가에 남아 있는 파도소리,

두뺨을 스치던 거센 제주 바람,

코끝을 맑게 하던 공기,

아이들이 뛰어다니던 모래밭.

그곳에서 나는 조금 더 자유로웠고, 조금 더 가벼웠다.


그렇지만 현실은 가혹하다. 나를 다시 제자리로 불러 세운다. 일상으로 돌아오니 그 무게는 여전하다.

해야할 일들은 버티고 있었고, 현실의 온도에 맞춰 다시 적응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꿈같던 시절들을 꾹꾹 눌러 담는다. 마음 한켠에 제주를 넣어두었다.

언젠가 다시 펼쳐볼 수 있도록,

그 기억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다시 써 내려갈 수 있도록.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한때의 도피였지만 결국 다시 나를 살아가게 만든 곳.



당신에게도 그런 장소가 있나요?


지독한 현실 속에서 문득 떠올리기만해도 뭉클해지는 곳.

잠시라도 다녀오면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는 곳.


바쁜 현실 속에서도 그곳에서의 순간들이 당신에게 작은 쉼이 되어 주기를.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08화08 제주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