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을 제주에서 마무리하는 것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익숙한 곳에서 한 해를 정리할 거라 믿었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나를 덮쳤다.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어지러워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 나는 여기 있다. 지금.
11월은 폭풍우 같았다. 12월은 계속 추웠다. 따뜻함을 찾아 제주로 왔는데, 마음까지 싸늘했다. 슬펐고, 외로웠다.
그러다 문득, 그런 감정들이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는 걸 느낄 무렵, 새로운 해가 다가왔다.
우리 가족은 조금 특별한 1월 1일을 맞이하기 위해 제주의 동쪽으로 향했다.
아무 계획도 없었다. 그저 즉흥적이었다.
주로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는 쪽은 나였지만, 이번엔 달랐다. 계획을 세울 힘도, 의욕도 없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계획이 없다고 해서 꼭 불안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즉흥적인 걸 잘하는 남편에게 맡기기로 했다. 사실, 마음 한편으로는 그를 믿고 있었던 것 같다.
해안선을 따라 반나절을 달렸다. 바다도 보고, 숙소도 알아볼 겸.
이렇게 성수기에 방이 있을 리 없다고 확신했지만, 남편은 포기하지 않았다. 무모해 보였지만, 은근히 기대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위치도 중요했고, 터무니없는 가격을 지불할 생각도 없었다.
찾고 또 찾아, 해가 질 무렵 마침내 한 곳을 정했다. 컨디션이 썩 좋진 않았지만, 나름 유니크한 분위기의 숙소였다.
공간이 생겼으니 이제 배를 채워야 한다. 오늘도 ‘00이네’. 역시 잘 골랐다.
공깃밥까지 추가해 아이들까지 싹싹 비운 밥그릇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한 방에 다섯 식구가 나란히 누웠다.
우리 집에는 TV가 없지만, 이런 곳에 오면 아이들이 실컷 볼 수 있어 신나 한다.
TV를 틀어놓고, 따뜻한 방에 다 같이 누워 있는 것이 묘한 안정감을 줬다.
내일이면 2025년이다.
어떤 한 해가 펼쳐질까.
나는 정말 괜찮아질까.
우리는 정말 괜찮아질까.
나는 원래 새해를 맞는 데 큰 감흥이 없는 사람이다.
예전에는 계획도 세우고, 다이어리도 사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새해는 그저 오늘 같은 내일이 또 오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5년이라고 해서 갑자기 1월 1일이 되면 모든 것이 좋아지고, 행복해지는 건 아닐 테니까.
그런데도,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공간에서 맞는 새해는 생각보다 평화로웠다.
함께한다는 것. 그 자체가 주는 안정감이 있었다.
해는 예상보다 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일출 시간이 7시 36분쯤이라고 해서 우리는 서둘러 동쪽 해변으로 향했다.
마침내 붉은 해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나는 눈을 떼지 못한 채 오래 바라봤다. 해의 잔상이 남아, 시야가 초록빛으로 번질 정도로.
별 감흥이 없다면서.
그런데 저 해는 왜 이렇게 예쁠까.
잘 살아봐야지.
행복해져야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1월 1일, 날씨는 유난히 따뜻하고 맑았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한적한 해변에 차를 세웠다.
나는 아이들과 모래를 파며 뛰어놀았다.
새해가 밝아서인지, 날씨가 좋아서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았다.
찍힌 사진마다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이었다.
나 정말 괜찮은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