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이메일을 쓸 때마다 딜레마가 있었다. 용건이 한 줄이면 끝날 때, 한 줄만 써서 보내려니 왠지 차갑다. 너무 정 없이 느껴진다고 생각하며 쓸데없는 말을 덧붙여 길이를 늘렸다.
"안녕하세요 OOO님,
주말은 잘 보내셨는지요?
혹시 지난 주의 광고 클릭 데이터를 보내주실 수 있는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문의사항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감사합니다."
위 이메일의 용건은 간단하다. 지난 주의 광고 클릭 데이터를 보내달라는 것이다. 그 간단한 용건을 전달하기 위해 주말이 어땠는지도 물어보고, 환절기니까 감기 조심하라고도 하고, 언제든지 연락 달라고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메일을 받는 상대방도 안다. 주말이 어땠는지 진심으로 궁금한 것이 아니며, 감기 이야기도 겉치레에 불과하다. 문의사항이 있으면 당연히 물어볼테니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받는 사람의 입장은 생각해보지도 않고, 그저 분량을 늘린 후 [보내기]를 눌렀다. 그러고 나면 한국인인 나는 안심이 됐다. 너무 늘어지지도 않고, 너무 짧지도 않고 딱 좋다며 혼자 만족스러워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메일을 보내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동료들의 이메일은 대부분 두세 줄만에 끝났다. 처음 메일을 보낼 때야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한 문장을 어느 정도 덧붙였지만, 그 후에는 용건만 간단히 적었다. 쓸데없는 안부 인사는 없었다. 메일이 짧으니 쓰는 사람도 금방 쓰고, 읽는 사람도 금방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일하면서 세 가지 진실을 발견했다.
(1) 긴 메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2) 내용이 길수록 대충 읽을 확률이 높다.
(3) 읽기만 해도 다행이다.
완벽한 문장 체계를 갖춘 장문의 이메일은 나의 자기만족일 뿐이었다. 길면 길수록 내용이 잘못 전달될 가능성이 높다. 메일을 열었는데 긴 텍스트 덩어리가 펼쳐지는 순간, 나중에 읽어야겠다며 미루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다 읽은 후 '그래서 뭘 어쩌라는거지?'라는 의문이 드는 이메일은 실패작이다. 그리고 내용이 길수록 '어쩌라고' 확률은 높아진다.
설사 내가 보낸 장문의 메일을 읽고 장문의 답장을 써준다한들, 여러 번 답장이 오가면서 오해가 생기기 십상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읽고 싶은대로 읽기 때문이다. 결국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며 오해를 풀어야 한다. 그럴 바에는 처음부터 직접 이야기하는 것이 낫다. 직접 만나기 힘들다면 화상 통화나 채팅을 하면 된다. 이메일은 정보 전달의 역할로 제한하는 게 좋다.
나 자신에게 질문을 해봤다. '나는 짧은 이메일을 받으면 기분이 나쁜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럼 나는 왜 억지로 분량을 늘리고 있는 것일까? 이메일을 짧게 쓴 후 머릿속으로 읽어보면 어째서인지 건방진 말투로 읽혔다. 재미있는 것은, 다른 사람의 메일은 부드러운 톤으로 읽으면서 스스로 쓴 메일만 다르게 읽힌다는 것이다. 내 머릿속에 자리 잡은 선입견이 나를 괴롭혔다. 의미 없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안 좋은 버릇이었다.
이후부터는 메일을 보내기 전에 분량을 체크하고, 길다 싶으면 바로 줄였다. 억지로라도 줄였다. 줄일 때마다 어딘지 찝찝했지만, 단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며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역시 한국어보다는 영어 메일이 줄이기 쉬웠다. 한국어로 쓸 때는 상대방의 기분이 신경 쓰였다. 짧으면 기분 나빠할 것 같았다. 군대에서 관찰 일지를 쓸 때도 소대장의 지시는 명확했다. ‘최대한 길게 써라.’
나는 분량이 짧은 것은 성의 없는 것으로 여기는 사회에 익숙했다. 그래서 비교적 감정이입이 덜 되는 영어 메일을 줄이는 것에 집중했다. 이메일 답변에 답변이 꼬리를 물며 길어지면, 'Hi' 'Thank you' 같은 인삿말도 치워버렸다. 그리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나 혼자 쓸데없이 생각이 많았던 것이다.
"당신의 이메일은 너무 짧아 예의가 없게 느껴져요!"
이런 식으로 불평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메일을 의식적으로 짧게 쓰다보니 이내 익숙해졌다.
일을 시작한 지 한두 달 가량 지나며 드디어 회사 매출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점점 신경써야 될 일도 늘어났다. 메일 쓸 시간까지 아껴야 할 정도로 바빠진 탓에 자연스레 메일을 짧게 쓰게 되었다. 짧든 길든, 중요한 건 메시지다. 나의 메일을 천천히 음미하며 읽는 사람은 없다. 나는 서서히 긴 이메일이 메일함에 도착하면 스트레스를 받는 몸으로 바뀌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