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사들과의 소통은 대부분 이메일이나 스카이프 채팅으로 이루어졌다. 글로 소통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누가 읽느냐에 따라 내용이 다르게 전달되기도 하고, 큰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WHY로 시작하라>의 저자 사이먼 시넥이 TED 강연에서 한 말이 있다. ‘이메일로는 정보 교환만 해라. 주관적인 내용은 직접 만나서 전달해라.’ 그래서 글이 길어질 것 같으면 바로 미팅을 잡았다.
한국에서는 고객사들이 대부분 한국에 있었다. 외국 회사라도 강남에 지사가 있는 경우가 많아 담당자들과 직접 만나기가 어렵지 않았다. 비는 시간에 약속을 잡기만 하면 됐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미팅은 대체로 비슷한 형태로 흘러갔다. 한 명이 자신의 노트북과 큰 화면을 연결한 후, PPT를 띄워놓은 채로 발표를 한다. 다들 발표를 열심히 듣고, 그 내용에 대해 논의한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할 때도 있고, 무거울 때도 있다. 대화의 무게는 주로 직책이 높은 사람들에게 가 있다. 너무 딱딱하지도 무례하지도 않은 존댓말이 오간다. 미팅이 끝나면 손님을 엘리베이터까지 배웅해준다.
베를린에서는 조금 달랐다. 일단 화상 미팅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독일 회사니까 고객사도 대부분 독일에 있을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고,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우크라이나, 체코, 프랑스, 러시아, 이스라엘, 한국, 중국, 인도네시아, 미국 등 전세계에 퍼져 있었다. 어느 나라 회사인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수익 정산을 해야 하는 재무팀에서는 신경을 썼다). 중요한 것은 함께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였다. 하지만 미팅할 때마다 비행기를 탈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스카이프로 화상 미팅을 했다. 서로의 시간대를 확인 후 모두에게 너무 이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은 시간을 골라 미팅을 했다.
시간 잡는 것 자체가 어려울 때도 있었다. 예를 들어 베를린과 샌프란시스코 사이에는 9시간의 시차가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출근 시간은 베를린의 퇴근 시간이고, 베를린의 출근 시간은 샌프란시스코의 늦은 밤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한쪽은 희생을 해야 한다. 이럴 땐 더 절실한 쪽이 상대편에 맞춰주는 게 일반적이다. 업계 인지도가 없는 퍼플팀은 늘 맞춰주는 쪽이었다.
첫 미팅 전에 긴장을 많이 했다. 미팅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분위기 파악이 전혀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실수를 수습해 줄 선배 같은 존재가 없으므로, 쓰레기를 만드는 것도 금을 만드는 것도 전부 내 몫이었다. 혼자서 모르는 사람들과 미팅을 하면서 기회를 만들어내야 했다.
첫 미팅의 의제는 두 가지였다. 사용자가 광고를 눌렀을 때 그 행동이 정확히 어떻게 측정되는지, 수수료는 어떻게 산정되는지를 묻고 답하는 자리였다. 미팅 상대는 이스라엘 회사의 직원 두 명이었다. 내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갖고 있는 이미지는··· 아무것도 없었다. 굳이 있다면 뉴스에 가끔 나오는 종교 이미지가 전부였다. 혹시나 민감한 주제가 나오면 어떡하나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데, 상대방이 메시지를 보냈다. 원래는 2대1 미팅인데, 다른 한 명이 아파서 혼자만 참석한다는 내용이었다. 긴장이 약간 풀어졌다. 나는 1대1 미팅을 더 좋아한다. 압박감이 덜해 친밀감을 쌓기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알겠다고 답변을 보내고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서로의 얼굴이 화면에 나타났다.
"제 말 잘 들리세요?"
마이크 테스트를 한 후 대화를 시작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래도 내가 바랐던 느낌을 얻을 수 있었다. 겉핥기식 대화 없이, 편안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본론에 집중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이걸 기대하며 베를린에 온 것이다. 다음에 또 이야기하자는 말로 마무리 짓고, 미팅 요약본을 작성해 이메일로 보냈다.
처음이 가장 어렵다. 시작하는 게 가장 귀찮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할 때도 침대에서 일어나는 게 가장 힘들다. 하지만 일단 시작을 했다면 탄력이 붙어 그 기세를 따라갈 수 있다. ‘좀 더 매끄럽게 이야기할 수 있었는데··· 그리고 중간에 목소리 삑사리도 한 번 났어.’ 아쉬움도 있었지만, 처음을 완료한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