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제가 하는 일은요

by 맨오브피스

복잡할 수도 있어 잠깐 정리를 해보겠다. 베를린으로 오기 전, 나는 독일 모바일 광고 회사의 한국 지사에서 일하던 직원이었다. 그러다 1년 후 베를린 본사로 옮기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본사의 직원이 된 것이 아니라, 본사의 사내 스타트업인 ‘퍼플팀’의 직원이 된 것이다.


서류상으로는 완전히 다른 회사에 취직한 것이지만, 아직 본사의 일부라는 느낌이 강했다. 사무실도 함께 썼다. 비유하자면 백화점 안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것과 같다. 카페 직원들은 백화점 소속이 아니다. 겉으로만 보면 모두 백화점의 일부이지만, 엄연히 별개의 존재다. 같은 사무실 안에서 퍼플팀의 공간은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구석'에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아직 매출이 없는 자들이 마땅히 있어야 할 공간처럼 느껴졌다.


일단 본사가 하는 일을 다시 한 번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신발을 파는 온라인 상점이 있다고 치자. 사장님은 신발을 더 많이 팔고 싶다. 아무래도 광고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이때 본사가 나타나 말한다.


"수수료만 주시면 광고를 대신 뿌려 드릴게요."


그렇게 본사와 사장님(=광고주)은 계약을 맺는다. 본사의 임무는 신발 광고를 전세계 사람들의 스마트폰에 노출시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전세계 스마트폰 사용자는 30억명이 넘고, 구글 플레이와 애플 앱스토어에 등록된 앱을 합치면 4백만 개가 넘는다. 사람들이 접속하는 웹사이트, 사용하는 앱은 천차만별이다. 여기서 막막한 질문이 생겨난다.


‘광고를 어디에 얼마만큼 뿌려야 효과적인가?’


예산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아무데나 뿌리면 돈 낭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때 퍼플팀이 등장한다. 퍼플팀은 광고주와 직접 일하지 않는다. 광고주에게서 광고를 따오는 일은 본사 같은 회사에게 맡긴다. 대신 어떤 광고 지면에 얼마만큼 광고를 뿌려야 효과적인지에 집중한다. 모바일 광고는 스마트폰 앱과 웹사이트에 노출된다. 혹시 무료 앱 하단에 노출되는 직사각형 모양의 광고가 기억나는가? 인스타그램 사진을 넘기다보면 광고 사진이 보이는 것을 기억하는가? 그 직사각형과 사진이 노출되는 영역이 광고 지면이다.


앱 개발사들과 협력해 광고 지면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력이 된다면 앱 개발사와 계약을 맺어 광고 지면을 독점하기도 한다. 본사는 광고를 하고 싶은 광고주들을 대변하고, 퍼플팀은 광고를 노출하고 싶은 개발사들을 대변한다. 부동산의 역할과 같다. 한쪽 부동산은 집을 사려는 사람을 대변하고, 다른 쪽 부동산은 집을 팔려는 사람을 대변한다. 되도록 싸게 사려는 쪽과, 되도록 비싸게 팔려는 쪽이 대립하는 구도다.


퍼플팀은 광고 효과가 있을만한 앱과 웹사이트를 발굴하는데 힘썼다. 그 앱과 웹사이트를 개발한 개발사와 계약을 맺고, 광고 지면에 우리의 광고 소프트웨어 코드를 넣는다. 유저가 앱을 쓰다가 광고 지면을 보게 되면, 앱에 심어진 퍼플팀의 코드가 작동해 유저에게 광고를 보여준다.


어떤 유저에게 어떤 광고를 얼마나 보여줄지 정하고 실행하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게임 앱에는 다른 게임 광고를 넣고, 뉴스 앱에는 라이프 스타일이나 쇼핑 광고를 넣는 식이었다. 요즘에는 빅데이터에 기반해서 자동으로 최적화가 되지만, 당시에는 나의 데이터 분석력과 직감에 의존해야 했다. 나는 광고 예산이 우리쪽에 많이 배정될 수 있도록 광고 효과를 최대한 높이는 것에 집중했다.


Technical Account Manager. 나의 명함에 인쇄된 직책이었다. 직역하면 '기술적 계정 관리자'인데, 주 업무는 고객인 개발사들과 소통하며 광고 매출을 올려주는 것이었다. 직책에 '기술적'이라는 단어가 붙은 이유는 간단하다. 고객센터에 전화했는데 질문할 때마다 ‘기술 부서로 연결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면 얼마나 속 터지겠는가? 기술적인 부분까지 커버하는 담당자라는 것을 강조하는 이름이다. '고객 관리를 하면서 기술적인 부분도 약간 커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복잡한 질문은 개발팀에게 넘길 수밖에 없었지만.


퍼플팀의 구성원은 총 네 명이었다. 대표 한 명, 영업 두 명, 고객 관리(나). 개발과 인사 쪽은 본사의 도움을 받았다. 본사 직원들은 우리 할 일도 많은데 왜 퍼플팀 일을 도와 줘야 되냐며 불만이 많았다. 아직 땡전 한 푼 못 벌고 있는 상황이니 일단 본사의 양분을 쪽쪽 빨면서 성장하자는 게 기본 방향이었다.


문서상으로는 역할 분담이 명확했지만, 현실은 뒤죽박죽이었다. 모두가 모두의 일에 참견하면서 아이디어를 냈다. 한쪽에 일이 몰리면 다같이 분담했다. 키보드를 마구 두들겨가며 광고를 200개 이상 세팅해야 할 때는, 각자 50개씩 맡는 것으로 분담했다. 착한 오지랖이 넘쳐났다. 팀 규모가 작으니 어쩔 수 없었다. 본사 개발팀에게는 빨리 좀 개발해 달라며 계속 보챘는데, 너무 보챈 나머지 개발자 한 명이 그만 괴롭히라는 내용이 담긴 장문의 이메일을 보낸 일도 있었다.


개발팀이 최소 기능 제품을 만들면, 영업 담당이 기를 쓰고 팔았고, 내가 광고 매출로 연결시켰다. 매출이 부족하면 모두가 내 모니터를 보며 나를 닦달했다.


"사람들이 광고 클릭을 안 하는데 어쩌라고!"


나는 그렇게 외치며, 제발 사람들이 광고 좀 클릭하게 해달라고 마음 속으로 빌었다. 그래도 결과가 시원찮을 때는 개발사 담당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해법을 모색하는 게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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