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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아빠 Mar 19. 2022

너구리와 도토리와 들꽃과 갈대.

우리 가족 이미지 찾기

도토리에서 진화한 수달과 너구리

아주 가끔씩은 사람에 대해 느끼는 이미지를 다른 것에 빗대어 표현해 보곤 한다.

큰아들은 왠지 너구리를 닮았다.

진짜 너구리보다는 흔히 대중들이 너구리로 오해하는 미국 너구리-라쿤-을 닮았다.

까칠하고 예민한 성격이나 -여느 아이들도 그렇듯이- 뭐라고 해도 아랑곳 않고 난장판을 치는 습성도 비슷하다.

게다가 가장 좋아하는 책도 "너구리 손뽀뽀"

언젠가부터 그 이미지를 별명으로 불렀더니 아들이 기뻐했다.

녀석은 자신의 별명이 너구리라는 것에 대해 굉장히 만족하고 사람들에게도 그 별명을 불러줄 것을 적극적으로 권하고 한다.

"아이고 우리 강아지 왔니?"할머니가 반기면

"너구리라 불러주세요"요청한다.


작은아들은  도토리를 닮았다.

뜬금없지만 그렇다.

도토리중에서도 특히 갈참나무나 신갈나무의 열매와 비슷하다.

누구를 닮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직모 때문에 뻗친 바가지 머리는 도토리 뚜껑이요. 그 밑의 동글동글한 얼굴은 열매같아 도토리를 꼭 닮아 있다.

제 맘대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땅바닥에 누워 굴러다니는 모습도 닮아있다.

걸핏하면 "호랑이 이불"이라 부르는 사자 그림이 그려진 너덜너덜한 라이너스의 담요를 펼쳐 놓고 들어가 숨는 모습도 나뭇잎 밑에 깔린 도토리를 연상시킨다.

다만 형과 달리 둘째는 도토리란 별명을 그다지 좋아하는 눈치가 아니다.

서울대공원에서 수달을 보곤 "나처럼 귀엽고 빠르니까 난 도토리말고 수달 할래"라며 수달로 불러주길 요구했는데 "수달아"는 영 입에 붙지 않았던지라 외면해왔다.

그러다 스톱모션 <리락쿠마와 가오루 씨>에 나오는 노란 병아리를  너무 맘에 들어하게 되었다.

녀석은 그날부터 몇 달 동안 매일매일 노란 내복, 노란 바지, 노란 마스크, 노란 마스크 줄, 노란 모자 노란 양말 등으로 무장하고 병아리로 불리길 원하고 있다.

매일 하나 이상의 노랑을 입고 땅바닥 여기저기를 굴러 다니는 도토리 덕분에 매일매일 빨래가 일이다.


오늘은 아내가 작은 아들을 보며 괴짜라고 혀를 차기에 내가 "저 녀석은 모양으로 치면 별 모양이야. 볼펜으로 대충 그렸고 5개의 꼭지가 있지. 중심은 단단한데 꼭지는 물러서 지맘대로 휘어버려. 그런 이미지야"

내친김에 대충 생각해 보니 큰 아들은 8자 모양이다. 두 개의 동그라미를 가로로 지르는 선이 없는 눈사람 모양.

통통대며 움직이고 겉은 말랑한데 속이 꽉차서 제법 단단한데 겁을 먹으면 위아래로 뚱뚱하게 움츠러 들고 살살 어루만져 주면 다시 8자가 되어 통통 뛰어 다닌다.

보통사람이라면 뜨악한 표정과 심드렁한 말투로 그게 무슨 뜻이냐고(개소리냐고) 물을 법도 하건만 내 헛소리에 익숙한 아내는 그 과정을 과감히 생략해 버리고 웃으며 그저 묻는다.

"그럼 난 무슨 모양이야?"

"자긴 작은 꽃 모양이야."답했다. 그리고 이어서,

"꽃은 꽃인데 들판에 핀 이름 모를 꽃. 꽃잎은 희고 가운데는 노랗지. 냄새를 맡아보면 꽃향기가 나지는 않아. 하지만 꿀벌이나 나비는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지. 하지만 굳이 거기 매달려서 꿀을 채취하진 않아. 그러기엔 너무 작거든.. 그저 거기에 옹기종기 모여서 피어 있는 거지. 그런데 우악스럽게 다가 온 거친 손이 꽃을 뿌리째 뽑아서 내 탁상위 화분에다가 대충 구멍을 내고 꽂아. 내 손이지."

가닥 없는 헛소리를 쉬지 않고 내뱉자 아내가 그럼 당신은 무슨 모양이냐고 재차 물었고 지체 없이 답했다.

"난 사각형이지 네 모서리 모두 이가 나가 있고 오른쪽 상단 모서리에서 1방향에서부터 난 금이 꺾여서 다시 8시 방향으로 엇비스듬히 금이 가 있는 사각형"

아내가 이유를 물어본들 답할수는 없다.

감상만 있을 뿐 합리적인 이유는 없기 때문에.

이런 비유를 개인적으로 즐기는 건  가닥 없는 헛소리를 즐기는 까닭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정해진 단어로 정의하거나 잣대질 하고 재단하지 않아서 좋기도 할뿐더러 표현하기 모호한 사람의 이미지를 표현하기에 좋다고 생각해서이기도 하다.

내 개인의 심상이니 듣는 사람이 공감할지는 미지수지만 아내가 웃어주니 그걸로 됐다.


소싯적에는 스스로를 갈대나 달에 비유하곤 했는데 그 심상은 신경림의 '갈대'라는 시에서 비롯되었다.

"갈대는 몰랐다.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고교시절 집에 굴러다니던 시집에 적혀 있던 글을 읽는데 까닭 몰래 가슴에서 뭔가 치밀어  올라 눈물이 났다.

그 시는 내게 강렬한 심상남겼다.

문득 단단한 콘크리트 벽의 금 사이를 뚫고 피어난 이름 모를 작은 꽃과 같기도 했고,

비구름 사이를 매섭게 가르며 번쩍였던 한줄기 번개 같기도 했고,

찰나지간 슬쩍- 검은 밤하늘을 가로지르고 사라져 버린 유성 같기도 했다.

그 심상은 오래도록 내게 남아 영향을 끼쳤고 그 이후로 나는 그 시에 묘사된 어둠 속 갈대밭과 밤하늘 차가운 달빛과 불어오는 바람과 하늘을 메워가는 짙은 구름 따위에 나를 빗대곤 했다.

때론 늦은밤 차를 몰아 달성습지의 너른 갈대밭이 보이는 다리 위에서 맥주를 마시며 갈대소리를 듣는 것을 즐기기도 했다.

속이 빈 형태, 죽었는지 살았는지 묘한 상태, 척박한 땅에서 자라났다는 특성, 못 박힌 채 떠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는 모습따위에 동질감을 느꼈다.

만지면 부서지기라도 할 것 같이 생겨먹은 한겨울 갈색의 갈대가 삭풍에 이리저리 힘없이 흔들리며 꽤나 장한 소리를 내고 있는 장면을 보고 듣고 있노라면  왠지 모를 위안마저 느꼈다.


층간소음 스트레스가 극심하던 시절 스트레스를 이겨 내기 위해 그렸던 만화의 한 페이지. 짙은구름이 가득 차 있다면 대략 이런 이미지다.

땅 위의 갈대가 나의 자조적인 심상을 의미한다면,

밤하늘의 달은 어떤 희망을 의미했다.

현재는 바람 따라 흔들리는 갈대.

과거와 그로부터 비롯된 굴레는 밤하늘을 메우고 달빛을 가려버린 먹장구름.


나는 달.


언젠가 먹장구름을 벗어던지고 갈대밭을 밝게 비추리라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고 그 심상은 잊혀진 기억이 되었다.

그런데 아내가 그 심상을 기억해 내고 언급하기에  시간이 지난 뒤 지금 다시 재해석한 그때의 심상을 이야기해줬다.


"바람만 불면 엄청 열심히 몸을 움직여서 주변 갈대들에게 자꾸 부딪치는 거야. 앞으로 옆으로 뒤로 닥치는 대로 자꾸자꾸 부딪치는 거지.계속 욕을 지껄이면서.."

"옆의 다른 갈대들이 걸리적거려서?"

"아니.. 마찰열이라도 일으켜서 갈대밭에 확 그냥 불을 질러 버릴수 있을까 싶어서"


웃자고 말한 헛소리에 불과하지만 생각해보니 정말 그땐 그랬다.

내 마음속 여기저기에 갈 곳 모를 분노가 얼마나 가득했었던가.

때론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고, 때론 스스로를 망가뜨리거나 소모되게 만들던 나의 깊은 분노.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분노는 갈무리되어 눈에 잘 띄지 않게 되었다.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고 다른 존재에게 집중하게 된 것이 그 계기일지도 모르겠다.

아내를 만나고 난 뒤부터 분노는 조금씩 희미해져 갔고 시간이 더 흘러 아이들을 키우게 되고나서부터는 더 빨리 희미해져 이젠 흔적만 남은 것처럼 느껴진다.

세월은 흐르고 이렇듯 나도 변해간다.

이제 새로운 심상과 이미지를 찾아볼 때가 된 것 같다.

의식적으로 찾아보려 애써 봤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언젠가 또 닥 없이 내키는 대로 내뱉다 보면 내 상태를 적절히 비유할 만한 표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작년 여름 만들어준 아이들 컵.애들은 순식간에 이걸 깨뜨려놓고 목 놓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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