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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자전거 탄 사람들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었다. 힘차게 폐단을 밟고 머리를 휘날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꿈꾸는 사람’인 듯 느껴진 달까. 그래서 누군가 자전거를 타고 나를 지나치면, 늘 뒤를 돌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곤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이는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옥스퍼드가 내게 ‘꿈의 도시’로 각인된 이유도 바로 자전거 때문이었다.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도시 옥스퍼드. 그 명성처럼 유서 깊은 건축물들이 즐비해 있었지만,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어느 곳이든 이어져 있는 자전거 행렬이었다. 거리마다 자전거들이 세워져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누볐다. 마치 평생 봐온 자전거들이 모두 그곳에 모여 있는 것만 같았다.
옥스퍼드는 작은 도시라 웬만한 곳은 걸어서 갈 수 있었다. 골목길이 많아 버스보다는 걷는 것, 걷는 것보다는 자전거를 이용하는 편이 훨씬 수월해 보였다. 그래서 옥스퍼드의 학생들은 자전거 바구니에 책을 실은 뒤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집과 학교를 빠르게 오갔다. 저마다의 꿈을 안고 바람과 함께 유유히 내 곁을 지나가는 그들을 보며, 자연스레 또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옥스퍼드의 고풍스러운 풍경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사라지는 이들의 뒷모습, 그 자체가 하나의 꿈처럼 마음속에 찬찬히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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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여행의 시작점은 카팩스 타워. 13세기에 세워진 이 역사적인 타워는 23M의 높이로 옥스퍼드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도시의 대표 명소다. 카팩스는 불어로 '사거리'란 뜻, 그래서 타워 앞에는 옥스퍼드의 대표적인 사거리가 교차하고 있다. 그중 가장 붐비는 곳은 콘마켓 스트리트. 번화한 쇼핑 거리라 다양한 상점들이 즐비해 있었는데, 여전히 내 눈길은 쇼윈도가 아닌 거리의 자전거들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 골목길 어귀에서 특이한 자전거 하나를 발견했다.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듯 무지개색으로 뒤덮인 예쁜 자전거였다. 손잡이에는 노란 별장식이 달려있고, 바구니에는 당근을 든 토끼 인형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자전거의 주인은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해 보이는 어린 남학생이었다. 내 관심어린 눈빛에 장난기가 발동한 것일까? 열심히 폐달을 밟던 그는 느닷없이 한쪽 다리를 들고 자전거를 왼쪽과 오른쪽으로 번갈아 기울이는 묘기를 부리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그 재간이 신기해서 나도 모르게 그 뒤를 따라가게 되었다.
옥스퍼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탄생한 도시다. 그 때문인지 나 역시 갑자기 시계를 든 토끼를 따라갔던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귀여운 자전거에 호기심이 생겨 그것을 따라가다 낯선 골목에 발을 디디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그 자전거는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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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홀린 듯 멍하니 서 있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하늘 위에 자전거가 보였다. 자세히 살펴 보니 진짜 자전거였다. 사실 마법이 아니라 간판이었다. 간판 대신 자전거를 건물 벽에 걸어놓은 기발한 가게 ‘Bike Zone’이었다.
또 한 번 이끌리듯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각양각색의 자전거가 나를 반겼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새 자전거와 손때 묻은 낡은 자전거, 세발자전거와 산악자전거, 오렌지색 자전거와 금색 자전거 등. 심지어 천장에도 자전거들이 한가득 매달려 있었다. 그야말로 자전거 천국이었다. 입을 벌리고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바람 소리가 들렸다.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누군가가 한창 자전거를 고치고 있었다. 그는 열심히 바퀴에 바람을 넣으며, 자전거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나를 보더니 손을 번쩍 들고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어서 와요! 어떤 자전거를 찾고 있어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다, '자전거 렌탈'이라고 써있는 포스터를 발견했다. 그것을 가리키자 그는 내게 어울릴만한 자전거를 골라주겠다고 했다. 자전거 가게의 아르바이트생이란 그는 친절하게 나를 자전거 세상으로 이끌었다. 그리곤 아담한 사이즈의 파란 자전거를 내 앞에 내놓았다. 사실 계획에 없던 일이라 자전거를 받아들고 쭈뼛대고 있자 그는 자전거 벨을 두 번 경쾌하게 울리며 말했다.
“얼른 타봐요. 자전거를 타야 진짜 옥스퍼드를 만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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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자전거 페달을 밟자 기분이 묘했다. 늘 다른 사람들이 자전거 타는 걸 지켜보기만 했지, 정작 내가 타 본 적은 손에 꼽혔다. 용기가 없어서였다. 혼자 자전거를 타고 차와 사람들이 가득한 거리에서 쌩쌩 앞으로 나갈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또 넘어질까 두려워 애초에 타지 않는 쪽을 택하고 말았다.
몇 년 만에 핸들을 잡으니, 몸이 잔뜩 경직되었다. 처음에는 서툴렀다. 혹여 내가 넘어지는 걸 다른 사람이 보게 될까 걱정이 앞섰다. 중심을 잡기 위해 핸들을 이리저리 돌리며 좌충우돌을 이어갔다. 하지만 자전거의 매력은 한 번 배워놓으면 언제든 다시 탈 수 있다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몸이 그때의 기억을 잊지 않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속도를 내고 달리기 시작했다. 자전거와 한 몸이 된 듯,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지금껏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자전거의 속력이 빨라질수록, 옥스퍼드의 풍경이 더욱 활기차 보였다. 학생들이 매일 자전거를 타며 바라보는 일상의 순간들. 영국 최초의 돔형 도서관인 레드클리프 카메라,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인 보들레이안 도서관, 학생들이 기숙사로 들어가는 길 성적표를 받아들고 탄식을 했다던 탄식의 다리 등 하나하나 오랜 역사와 사연을 담고 있는 생생한 풍경들이 클래식 영화처럼 쉼 없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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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달리다, 브레이크를 꼬옥 잡았다. 자전거를 멈춘 곳은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 앞이었다. 13명의 총리와 작가 루이스 캐럴, 시인 윌리엄 모리스 등을 배출한 명문대라 그런지 입구부터 아우라가 느껴졌다.
옥스퍼드에는 유니버시티, 머튼, 크라이스트 처치 등 약 40개의 대학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중 크라이스트 처치는 옥스퍼드에서 가장 큰 대학인데,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의 촬영장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또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성당인 동시에 대학인 특별한 곳이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캠퍼스로 들어서자 학생들이 어디론가 뛰어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학위복을 입은 졸업생들이었다. 3월은 영국 학교들의 졸업 시즌이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출발을 앞둔 설렘과 떨림이 캠퍼스에 가득했다. 학사모를 쓴 학생들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자전거를 탈 때처럼 꿈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가장 아름다운 청춘의 모습처럼 말이다.
캠퍼스 속 청춘들을 뒤로하고, 다시 자전거 핸들을 잡고 페달을 밟았다. 처음과는 달리 이제 능숙한 라이더의 면모가 보여 스스로 흡족했다. 그 순간 저 멀리서 누군가가 자전거 벨을 누르며 손을 흔들었다. 날 아는 사람인가? 점점 가까워지자 알 수 있었다. 자전거 가게에서 내 자전거를 골라줬던 바로 그 남학생이었다.
나도 손을 흔들며 그에게 화답했다. 그리고 천천히 다시 페달을 밟으며 옥스퍼드의 일상을 하나씩 하나씩 온몸으로 맞이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