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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유정 Sep 12. 2023

관계 중독

애정 결핍이 있다면,

BGM : 중독 Overdose - EXO




뿌리 없는 자의 비애는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가정에서 ‘소속감’과 ‘연대감’, ‘유대감’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정서적으로 결속된 부분이 없었다.




자라는 내내 매일 부모님 간의 크고 작은 의견 다툼이 있었다.


부모님이 이혼할 수도 있다는 불안이 있었다.


한 켠으로는 엄마가 우울을 버티다 못해 먼저 죽거나 떠나 버릴까 봐 막막하고 무서웠다.




하지만 부모님의 입장과 상황, 감정을 이해하고 잘 견뎌 내는 것 외에 별 다른 방도가 없었다.


분위기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기 위해서 내 기분보다 엄마아빠의 기분에 맞춰서 행동하는 게 우선됐다.




때문에 내 기분을 잘 느끼지 못했고, 표현하기도 어려웠다.


잘 섞이고 속하고 싶으면서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누구도 의도한 바 없었고, 사랑받았는데도 현실적이고 무심한 성격의 가족들 사이에 있다 보면 내가 다른 점이 너무 크게 보였고, 소외감이 들었다.


예민하고 세심한 기질과 감각을 타고난 나한테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크게 다가왔다.




내 마음이 다쳤을 때,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따뜻하게 품어줄 안전기지와 보호자가 필요했는데 그 역할을 수행해 주는 어른이 없었다.


내가 뭘 잘하고 뭘 못 하는지 관심 가져 주는 만큼, 내 정서와 심리 상태에도 관심 가져 주길 바랐는데, 그 역할을 수행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갖고 있는 상처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사람 사이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대처해야 할지, 내가 생각하는 이상에 걸맞은 표본이 주변에 없었다.




이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 사랑에 목을 매었다.


가족의 울타리에서 느끼지 못한 안정감과 유대감을 바깥에서 찾아다녔다.


가족을 대신할 수 있을 만큼 끈끈하고 친밀한 관계, 나의 기반이 되어 주고, 의지하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을 찾아다녔다.




나한테 관심과 애정을 쏟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내어 줬다.


외로움을 채워주고, 시간을 많이 내어 주는 사람에게 의지하면서, 걱정과 불안을 낮추는 법을 조금씩 터득해 갔다.




하지만 아무리 사랑받아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불안이 내재되어 있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나를 어디까지 꺼내 놔도 될지, 그래도 관계가 흔들리지 않을지 자신이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어서, 내가 가진 가장 좋은 면만 보여주다가, 나는 그런 사람이기만 한 게 아니라서 그 간극 사이에서 자괴감도 들었다.




버려지고 혼자 남겨져서 상처받는 것에 대한 압도되는 공포가 무의식에 잠들어 있다가 그와 가까워질수록 깨어나서 나를 괴롭혔다.




그가 기대하는 모습을 채워주지 못했을 때, 실망할 게 너무 겁이 나서 시작도 전에 선을 그어버리거나 도망쳤다.




날 좀 꽉 껴안아서 내 불안을 잠재워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이렇게 불안한 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서로 해로운 관계일 때에도 나는 그를 잃는 게 무엇보다도 두려워서, 관계를 개선하려고 많은 노력과 에너지를 기울였다.




그에게 더 친한 친구가 생기거나,
상황이나 환경이 바뀌어서
그에게 내 존재감이 작아진 것 같으면,
불안하고 초조해지고, 질투가 났다.


그가 나한테 소홀해지면, 내 존재 가치도 위협받는 것 같았다.



그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믿음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 중에 큰 부분을 차지했었다.




그러다 보면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거나, 나를 깎아서라도 맞춰주게 됐다.




그가 나를 생각하는 시간과 마음이 줄어든다는 건 내가 살아갈 이유가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관계 안에 있어야 내가 살아 있는 이유가 증명되는 것 같았고, 스스로 어디에 있는 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을 계속 만나도 결국엔 본질적으로는 같은 성향과 문제해결 방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았다.


나한테 집착하거나 회피하는 사람을 택했다.


나도 그에 따라 계속 회피했다 매달렸다를 반복했다.




가족을 힘들어하고 미워하고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사랑받고 싶어서 다시 그 관계 안에 머무는 걸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답습하고 있었다.




이 관계 중독에서 빠져나와서 나로 바로 서야 했다.


언제까지고 애정에 목마른 아이로 살아갈 수는 없었다.




나는 이제 나를 제대로 책임지는 법을 배워야 했다.


어릴 때 누구도 해주지 않았던 걸
지금의 나만이
나한테 해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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