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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Writes Feb 07. 2020

 호주에도 학교 폭력이 있나요?

호주 학교에서 4년 

 시골로 이사와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은 것은 잭 러셀이라는 종의 강아지였다. 어쩐 일인지 이 마을은 낮에도 거리를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산책 삼아 나간 길에서 갈색 점이 있는 하얀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러다 갑자기 아이들에게 점프를 하기 시작했다. 애완동물이라고는 달팽이, 고슴도치 같이 작은 케이지에 넣어 키우는 동물만 키워 봤던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겁을 냈다. 그러자 강아지는 더 크게 짖으며 이빨을 드러낸 채 얼굴까지 더 높이 점프를 하자 아이들은 혼비백산하며 울기 시작했다.

'Help me, Help'

 살려달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지나가는 사람이 하나 없었다. 급한 김에 길가에 있던 집에 달려가 아무리 문을 두드리며 살려달라고 해도 사람 기척 없었다. 강아지는 아이들이야 울든 말든 계속 짓으며 아이들에게 달려들었다. 마침 아이들은 두드리던 문 앞에 이중으로 있던 방충망을 발견하고 그 사이에 끼여 강아지가 떠나기만을 기다렸다. 강아지는 방충망 프레임 때문에 아이들에게 더 이상 가까이 오기 힘들자 흥미를 잃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강아지가 도로를 건너고 더 이상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이들은 방충망 사이에 끼여 나오지 못했다. 나라도 강아지를 잘 다룰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나도 강아지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아이들을 빨리 구해 주지 못한 게 미안했다. 집으로 돌아오며 아이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강아지는 입을 크게 벌리며 짓어도 아이들을 물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상처 하나 없었다.  강아지가 점프를 하며 가슴팍에 뛰어드는 게 놀자는 뜻인지 우리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시골로 이사와 새로운 학교로 간 후에도 별이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에서 혼자만 동양인인 환경에서 아이는 더 부담감을 느낀 모양인지 오히려 깃발을 게양하는 긴 봉을 잡고 빙빙 돈다던지,  팔을 좌우로 벌리고 빙빙 돈다던지 하는 돌발행동을 하곤 했다. 그러니 아이들은 별이가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는 늘 혼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반 아이 세명이 별이에게 시비를 걸다가 싸움이 났다며 다음날 아침 학교로 와 달라고 했다. 밤새 얼마나 속이 상하고 별이가 가엾던지 눈물을 한 바가지는 흘린 듯하다. 다음 날 아침 부은 눈으로 교장 선생님과 면담을 하니, 덩치 큰 쌍둥이 형제가 별이의 모자를 장난으로 뺏어갔고, 그 모자를 다시 가져가려던 별이를 밀쳐 버려 얼굴에 상처가 생긴 것이다. 두 아이는 별이에게 사과를 했지만 부모에게 알릴 의무가 있어 나를 불렀다고 했다. 괜찮냐는 교장선생님의 다정한 목소리에 마음이 녹아내려 또 눈물이 났다. 교장선생님은 나를 포근하게 안아줬다. 

“괜찮아, 모든 게 잘 될 거야.” 

 

  이 시골로 오면서, 나는 다시는 별이를 위해 울지 않기로 다짐했다. 눈물은 어떤 것도 해결 해 주지 않는다. 나를 피곤하게 할 뿐이다. 감정 낭비를 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데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교장선생님께 별이를 괴롭힌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인지, 우리 아이만 괴롭히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남을 잘 괴롭히는 아이들인지. 또 학급 내 분위기는 어떤지를 물었다. 그리고 내가 느끼기에는 이 시골에서 아이들이 동양인을 처음 봐서 낯선 데다가 말도 하지 않으니 더욱 낯설게 느끼는 것 같은데, 내가 반 아이들에게 한국과 별이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면 효과가 있겠는지 여쭤 봤더니, 선생님은 환영이라고 했다. 그래서 집에 가서 부랴 부랴 급한 대로 PPT 파일을 만들었다.

 

  한국에서 태권도 승급 대회에서 한국 아이들 사이에 둘러 싸여 밝게 웃으며 태권도 검은띠를 뽐내는 별이의 사진('너희들 까불지 마... 여차 하면 발차기 날릴 수 있어'라는 눈빛을 쌍둥이 형제에게 팍팍 보내며), 별이가 살던 높은 아파트, 서울의 고층 빌딩… 등 한국의 사진을 보여줬다. 우리는 이런 곳에서 왔어… 이 곳 시골 아이들 중에 동양인을 가까이서 처음 본다는 아이도 많았다. 그래?? 궁금한 건 무엇이든 질문해도 좋다고 했더니, 수줍게 머리카락을 한번 만져 봐도 되냐고 한다. 

‘어떻게 머리가 이렇게 까매요??’

‘서울에도 트럭이 있나요?’

‘양 떼도 있나요?’

‘저렇게 높은 곳에 살면 무섭지 않나요?’ 

‘도대체 여기에 어떻게 왔어요?’

‘우리 동네에 대한 첫인상이 어때요?’

‘아줌마는 영어를 할 수 있는데 별이는 왜 못 해요?’

‘아줌마는 한국에 있을 땐 어떤 일을 했어요?’

아이들은 내 눈을 들여다 보고 머리도 만져 보며 이것저것 질문을 쏟아부었고, 나는 나름대로 정성껏 답변했다. 그리고 마침 당시에 티브이에 어드벤처 타임이라는 미국 만화가 방영을 하고 있었다. 거기 나오는 주인공의 여자 친구 캐릭터가 무지개 유니콘이었는데, 외계에서 온 생명체였다. 그 성우가 마침 한국 사람이어서 한국어로 말을 했는데, 그게 외계어라는 컨셉이었다. 그래서 그 한국어로 말한 부분을 아이들에게 보여 줬다.

'뭐라고 하는 거 같니?'

'모르겠어요! 외계어잖아요!'

'사실, 이건 한국어야. 나와 별이는 다 이해할 수 있어.'

내가 한국어로 별이에게 말을 건네고 별이가 한국어로 대답하자 호주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 졌다.

'별이는 한국말은 할 줄 아네요!'

'그럼... 별이는 한국말을 할 줄 알아. 그리고 아주 다른 세계에서 왔지. 너희가 금방 이 만화에서 들은 한국말이 외계어 같이 들린 것처럼 별이에게는 영어가 외계어처럼 들릴 거야.'

'와... 힘들겠다.'

'답답하겠다!'

'멋진데!' 아이들은 한 마디씩 하며 별이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내가 교실을 들어올 때와는 약간 달라져 있었다.

'별이는 언어도 다르지만, 생각하는 방식도 조금은 다르데. 아줌마는 그게 참 멋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힘든 점도 있고, 별이는 수줍음도 많아. 다음에 별이가 혼자 있거나, 수줍어하면 안녕하고 너희가 먼저 인사해 주겠니?' 

 아이들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유초등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던 경험을 더듬어, 별 모양 표창 만들기 종이 접기를 하고 멀리 날리기 대회도 했다. 영어로 의사소통은 큰 문제가 없고 한국에서 영어강사 경험도 있었지만, 이십여 명의 호주 아이들과 선생님 앞에서 영어로 프레젠테이션과 종이접기 수업을 하니 식은땀 나고 손이 덜덜 떨렸다. 하지만 말도 못 하고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이 아이들 속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있어야 하는 별이를 생각하니 내가 지금 느낌 부담감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께 인사를 하자, 활짝 웃으시며 말했다.

‘It is a hard job to be in my shoes. You did awesome job.’  

(be in somebody’s shoe는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 보다. 는 뜻이다.) 선생님은 수업이 아주 뜻깊고 좋았다며, 자신의 역할을 하는 게 쉽지 않았을 거라고 추켜 세워주셨다. 하지만 나에게는 선생님보다는 별이의 신발을 신어보는 시간이었다. 사십개가 넘는 눈이 자기 입만을 바라보며 무슨 소리가 나올까 기다리는데... 아이는 얼마나 주눅이 들까? 나는 알아듣기라도 하지,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데 얼마나 답답하고 두려울까? 아이의 입장이 잠시나마 되어 보게 되어 감사했다. 


 별이 반 아이들은 한국에서 가져온 색종이가 너무 이쁘다며 감탄했다. 간단한 종이접기 기술도 ‘Wow’를 연발하며 신기해했다.  

'다음에 또 오면 안 돼요??'

아이들의 요청에 따라 3번쯤 더 종이접기 수업을 갔다. 

그러다 호주의 다문화를 기념하는 호주의 하모니데이에는 교장선생님의 요청으로 한복을 입고 가서 복주머니 종이접기 수업했다. 호주 아이들도 한복을 입어 보며 너무 이쁘다, 왕자님 공주님이 된 것 같다며 감탄했다. 그리고는 고이 접어서 옷걸이에 걸어서 나에게 돌려줬다.

'망가지면 안 되니까요.'

 복주머니를 접어서 절을 하는 걸 보여주며 오늘 집에 가서 부모님이나 할머니 할아버지께 이렇게 절을 하면 복주머니에 용돈을 넣어줄 거야 하고 절하는 시범을 보여주자 아이들은 와~ 하며 환성을 내질렀다. 

그날 저녁에, 학부모들에게서 

‘오늘 나탈리가 집에 와서 절을 하더니 이 복주머니를 내밀지 뭐야. 아름다운 전통을 알려 줘서 고마워’ 하는 등의 문자를 몇 통 받았다. 한국문화 전도사가 된 기분이었다. 


 약 두 달간의 학교 방문 후, 아이들은 멀리서도 나를 보면 이름을 부르며 달려와 인사를 건네고 갔다. 나는 시골마을의 작은 유명인사가 되었다. 어차피 이 작디작은 마을에서 모두는 모두를 알고 있다. 원래도 나는 어릴 때부터 방그레, 헬렐레 등의 별명이 붙을 정도로 방긋방긋 잘 웃었지만, 일부러 더 많이 웃고 밝게 다녔다. 마을에 행사가 있거나 모임이 있으면 꼭 참석했다. 나라고 어색하고 부족한 영어에 마음이 쪼그라들 때가 없었을까, 한국과 호주와의 차이에 더해서, 캔버라 같은 도시와는 시골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운영방식에 또 다른 차이가 있어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달이와 별이가 나의 행동을 보고 배울 거라는 생각에 더 어깨를 펴고 미소를 지으며 당당하게 다니고 참여했다.

‘엄마가 저렇게 괜찮은데, 애가 이상할리가 없어.’라는 인상을 주려고 했고, 성공했다. 


 어느 날 아마도, 학교에서 별이가 또 그 쌍둥이 아이들과 트러블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다음날, 가게에서 일을 하면서도 마음은 별이에게 가 있었다. 그런데도 내 표정은 세상 밝았나 보다. 한 손님이 나를 보며 말했다. 

 '넌 좋겠다, 매일 그렇게 행복하니, 세상 걱정이 없어 보이네… 너 웃는 모습은 정말 행복해 보여.' 

내 속은 새까맣게 탔던 것도 모르고. 하지만 찡그리고 있어 봐야 내 얼굴에 주름만 늘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데 못 웃을 건 뭐야??


 그 후에도 같은 반 아이들을 집에 초대해서, 김이나 라면 같은 한국 음식 먹기 챌린지도 하고. 보드 게임도 하고, 컴퓨터 게임도 하는 등 함께 하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만들었다. 마을에서 열리는 농구게임과 테니스에도 매주 꾸준히 보냈다. 처음에는 말도 통하지 않고, 두 아이 모두 원래 운동을 하기 싫어해 너무 싫어했지만, 공부는 안 해도 운동은 꼭 해야 한다며 설득해서 데리고 다녔다. 농구 룰도 잘 모르면서 옆에서 호주 엄마들이 하는 응원을 잘 듣고는 따라 하면서 격려했다. 그랬더니, 게임할 때 본인에게 영어로 얘기하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다음에는 한국어로 크게 응원했더니… 아예 경기를 보러 오지 말라는 금지 명령을 받았다. 조용히 눈으로만 보겠다는 약속을 한 후 에야 계속 따라갈 수 있었다. 


 그 후에도 3년 동안 별이는 학교에서 ‘말하지 않는 아이’로 통했다. 쌍둥이 형제는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다가 지겨워지면 한 번씩 별이를 또 도발하곤 했다. 하지만, 아이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별이 친구들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를 보면 알려주기 바빴다. 별이 친구들은 눈빛만 봐도 별이가 뭘 원하는 지를 알아내어 선생님께 눈빛, 몸짓 통역을 자처했다. 별이는 3년간의 시간 동안 친구나 선생님의 대화를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지만, 굳이 입을 벌리지는 않았다.  별이는 학교를 굳이 가고 싶어 하지는 않았지만, 가기 싫다는 말 역시 않았다. 


 학교 매점을 운영하는 다이앤은, 별이반에 다니는 딸이 있다. 그래서 처음 이 학교에 왔을 때 별이가 얼마나 주눅 든 아이였는지, 움츠린 아이였는지 잘 알고 있다. 어느 날 슈퍼에서 만난 그녀가 나에게 와서 말한다.

‘He has a beautiful smile. His smile made my day!’

‘별이는 아주 멋진 미소를 지니고 있어. 별이가 웃는 모습을 보면 내 하루가 행복해진단다.’

그녀의 그 말이 나의 하루를 행복하게 한다. 


별이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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