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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별 Nov 27. 2020

엄 사장, 땅 파서 장사하나?

고객에게 잔소리 좀 듣는 사장입니다.

엄 사장, 땅 파서 장사하나!


 건물 소장님께서 커피 두 잔을 주문하시며 3천 원을 꺼내신다. “소장님, 오늘은 제가 드릴게요!” 하니 장난기 가득한 호통을 내리신다. "아니 엄 사장, 땅 파서 장사하나? 허허허.",

소장님 3천 원도 땅 파서 나온 것 아닌데......


 돈을 받아 들며 감사한 마음 가득이지만, 하필 이 자리에서 커피를 팔게 되어 죄송한 마음도 든다.


200일 행사날, '개시 요정' 과일가게 사장님


 자상하신 과일가게 사장님과 꼼꼼하신 우리 건물 관리소장님. 매일 마주 보며 수다 나누시는 소울메이트 사이. 본래 그 수다는 믹스커피와 함께 진행되는데 내가 가게를 여는 바람에 아메리카노가 필수 준비물이 된 것 같아 감사하지만 죄송하다.


 오늘은 월요일이니까 오늘은 비가 오니까 오늘은 거리두기 시작이니까 오늘은 휴일이니까 매번 대박나라는 주문을 담아 주문하신다.


찾게 되고 소문내게 되는 동네 카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얼마를 더 남길까'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얼마나 더 진심을 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브랜드를 보고 위치가 좋아서 사진 명소여서 유명 맛집이어서 '하나의 강력한 조건'만으로도 찾게 되는 도심지, 관광지의 카페에 비해 집 앞 카페는 소소한 조건들이 모두 어우러져야 자주 찾게 된다.  


 맛 좋은 것은 기본(맛 좋은 곳은 많다), 가격이 비싸면 코앞이라도 자주 가기 꺼려지고 접객 태도가 불편하면 찾지 않게 된다. 공간도 사람도 깔끔해야 하며 전체는 늘 익숙하면서도 한두 곳은 새로워야 한다.

 구석구석 모두 만족스럽게 어우러져 휴식, 공부, 집안일, 업무 등 하던 일을 더 즐겁게 이어할 수 있는, '기분 좋은 경험'이 되는 공간.

 

 집 앞 카페의 '한잔'은 일상이지만 일탈 같고 일탈이지만 일상 같은 '쉼표' 역할을 한다.


 '졸음 오니 커피 한잔 사 올까', '집중 안되는데 버블티 한잔 마실까', '일이 밀렸는데 당 보충하고 마저 해내야지', '가족들 모두 나갔으니 잠깐 쉬고 청소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 때, 한잔의 쉼표 뒤 문장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상품, 공간, 사람이 모두 감사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땅 파서 장사하냐" 소리 좀 듣는 동네가게

 꼭 무얼 더 주어야만 "땅 파서~"가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다. 매우 감사하고 있다는 진심이 전해지는 것이다. 가게를 열고부터 자주 중얼거린다. '난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을 하고 있다.'


 사업을 한다고 생각하면 더 멀리 볼 수 있다. 지금 이 음료만을 파는 것이 아니라 지금 주문에서 조금 더 남기는 것이 아니라 내 이름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작은 것에 연연하던 마음이 작아진다. (특히 내 아이들이 친구들과 오랜 기간 어울려온 동네에서 장사를 한다면 그 공간은 이미 물건만 파는 곳이 아니다. 나의 모든 것을 평가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분명 정해진 가격을 내고 구매하시는데, 도리어 "감사하다", "덕분에 잘 먹고 있다"는 인사를 남기신다. '이렇게 팔아도 남나요?' 호탕하게 또는 은밀하게 묻는 분들께, "아주 많이 팔면 돼요! 이렇게 자주 와주시잖아요" 웃으며 대답한다. 그럼 그분들께서는 '못 남겨 문을 닫지 않도록' 친구에게 소개하고 동네에 소문을 내어 주신다.


 내가 생각하는 "땅 파서 장사하냐"의 의미는 '이 집 가성비 참 좋다', '이 집이 없어지면 불편할 것 같은데 없어지지 않도록 자주 와야겠다'이다.


 종종 퇴근길에 음료 두 잔 또는 네 잔 주문하시는 고객분이 계시다. 더위가 절정이던 여름날 처음으로 함께 오신 아내분께서 투덜거리듯 말씀하셨다. "아니 집 바로 앞에 카페가 있는데 꼭 커피는 여기서만 사야 한대요. 그래서 이 날씨에 한참 걸어왔어요."


 초보 사장인 나의 '동네장사' 개똥철학은, '고객의 백원도 땅 파서 나온 것이 아님'을 기억하는 것이다.'고객이 시간 남아 걸음 한 것이 아님'에 감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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