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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별 Dec 11. 2020

꽈배기가 따뜻해서 눈물이 나는 거야.

모든 동사의 어근은 '용기'입니다.



 자다, 깨다, 씻다, 먹다, 입다 모든 동사의 어근은 '용기'라 믿습니다. 마음이 동(動)하기만 한다 하여도 그 역시 동사이므로 용기입니다. 무너짐 역시 용기입니다.


 그리고 오늘 당신의 모든 동사에 담기는 접사는 '행복'이길 바랍니다.


눈을 뜨고 옷을 입고 집을 나서는 그 거대한 용기에 대하여


 마치 음료 가격 묻듯 자연스럽게 깊은 이야기를 꺼내셨다.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는(거리두기 전) 아이들을 바라보다 꺼내신 것 같았다.


 '이 얘기를 왜 여기서 하고 있지' 하는 마음을 보이시면서도 이어지던 이야기. 아가 눈동자가 담긴 어른 음성. 그저 묵묵히 들었다. 무너진 담을 태연하게 추스르고 돌아서기 어려우신 듯 보였다. 그대로 답 없이 보내드리면 '괜한 말을 꺼냈구나 날 이상하게 본 건 아닐까' 하실까 봐 입을 열었다. 그냥 내 이야기를 했다.


 대단한 일을 해낸 누군가의 용기와 나의 소심한 일상이 비교되기도 하지만 그 무용담 뒤에 '너도 이제 좀'으시작하는 조언을 받기도 하지만, 그저 아침에 눈뜨는 것만으로도 그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한 때가 있더라고. 나도 그런 시간을 보냈다고.

 가족들 밥은 멀쩡하게 차려 먹이고 고무장갑 꼈는데 ‘설거지 어떻게 하더라’ 싶은 때가 있었다고. 실컷 떠들며 전화 통화한 뒤 머리 감으러 들어가 ‘아 샴푸로 뭐 해야 하지’ 하던 순간이 있었다고.


 그냥 오늘 눈 뜨고 문 밖에 나선 것만도 정말 대단하다고. 지금 고객님 정말 멋지시다고.


 “엄마 나 여섯 개나 틀렸어.” 하며 풀 죽었다가 “오 어려운 단원인데 진짜 잘했네!” 하는 엄마 칭찬에 밝아지는 준우처럼 살짝 웃으시며 인사하셨다.

 크지만 작은 뒷모습에 5년 전 이비인후과를 나서던 내 모습이 보였다.



엄마가 사라지고 어느 날 새벽 몸이 휘청였다.

 

 한쪽 귀가 잘 안 들리기도 했고 땅이 흔들렸다. 이비인후과에 갔더니 이석증이라고 하셨다."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으셨어요?" 여느 때처럼 환자가 많았다면 "그냥 일이 좀 있어요." 했을 것이다. 답을 기다리는 물음표가 아닌 줄 알면서도, 하필 병원이 한가해서 마음이 풀어져버렸다. 터져 나온 말 덩어리에 나도 놀랐다. "엄마가돌아가셨어요아침에아무렇지도않게통화했는데갑자기쓰러지시고바로돌아가셨어요."


 “힘내라” 한마디 하지 않으셨다. 지금 땅이 흔들리는 건 당연하다는 듯 표정의 변화도 없으셨고 이석증은 약으로도 금방 좋아지지 않으니 푹 쉬라고 하셨다. 완전한 타인 앞에서 간단한 문장으로 털어놓으니 덜 흔들렸다. 흔들리지 않으려 마음을 너무 부여잡아서 도리어 땅이 흔들렸던 것 같았다.


 엄마는 사라졌지만 당연히 일상을 살아야 하고 엄마는 사라졌지만 당연히 일상을 살아내는 것은 누구에게나 벌어지는 당연한 일이고 일상을 살아내면서도 여전히 힘들어 이석증이 생긴 것도 당연한 일상이라고 느껴졌다.


 집에 와서 약을 먹고 소파에 누워 한참 울었다. 다시 용기가 생겼다. 와르르 무너지고 나니 일상은 좀 더 단단해졌다.(부끄러워서 그 이비인후과는 아주 나중에나 갈 수 있었다.)  


따뜻한 꽈배기에 담긴 용기


 여름이 지나갔고 가을도 지나가고 무너지셨으니 다시 일상을 경쾌하게 지내고 계시리라 믿었다. 편의점에 들어서다 모자와 에어팟, 낯익은 뒷모습에 슬쩍 나왔다. 나를 못 보신 줄 알았는데 다음날 고객님이 아무렇지 않게 음료를 주문하신다. 그리고 따뜻한 꽈배기를 건네셨다.


(pixabay 이미지)

 "아니 고객님!", "아니 따뜻해서요. 아이들 생각나서. 지난번에 감사했어요."

 나의 '아니'와 그분의 '아니'는 마주 웃었다.


 아! 꽈배기 가게는 꽤 걸어야 하는데 어쩜 이렇게 따뜻하지. 빠른 걸음으로 오셨나. 우리 가게를 지나며 꽈배기를 주문하며 그리고 다시 우리 가게에 들어서며 아마 고객님께서는 용기를 내셨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용기 담긴 따뜻한 꽈배기가 감사하다.


 "엄마 울어?", "아니 꽈배기가 따뜻해서 눈물이 나는 거야."


용기의 크기는 결과의 크기로 가늠할 수 없다.


 "잘 지내고 있지?" 답이 정해진 물음표에 "아니 사실 힘들어" 하고 싶은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다. 곱게 다듬어진 언어들 속에서 오열 한번 내지르고 싶은 때가 누구에게나 있다. 그 순간 필요한 것은 '이러지 그랬어.', '이러면 될 거야.',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어.' 보다는, '그저 들어주는 것' 그리고 "지금의 용기도 참 멋져"라고 생각한다.

 

 결과의 크기로 용기의 크기를 가늠할 수는 없다. 결과를 비교하며 용기까지 비교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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