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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별 Nov 12. 2020

얼마 들었어요? 얼마 파나요?

수익 말고 행복을 말합니다.

"혹시 사장님이세요?"


 카운터 바로 앞에 앉으신다. 그리고 이 질문을 던지시면 거의 창업 때문에 오신 분이시다. 인스타그램을 보고 오시는 경우도 있고 오며 가며 바쁠 때의 매장을 보고 오시는 경우도 있고 단골분 이야기를 듣고 오시는 경우도 있다.


 주문 때부터 일반 고객분들과는 다르시다.

 창업 고민을 나누기 위해 오신 경우, 입구에서부터 매장 구석구석과 일하는 모습을 관찰하신다. 메뉴를 꼼꼼히 보시거나 "뭐가 제일 잘 나가요?" 물으신다. 키오스크 기계의 가격을 물으시기도 하고 매장의 거울이 얼마짜리인가 묻기도 하신다. 또 혼자 일하는지 물으신다.


 "혹시 사장님이세요?" 물으시면 이어질 질문들을 예상하며 마음으로 이렇게 답한다. 매출만 묻지 마시고 제가 행복하게 일하고 있는지 물어봐 주세요!


이어지는 질문 역시 예상 가능하다.
 


(pixabay 이미지)

"얼마 들었어요?", "얼마 파나요?", "얼마 남나요?"

하루 매출,  매출, 인건비, 재료비, 월세, 관리비, 부대비용, 순이익.


 나도 그랬다. 

 창업을 계획하며 마음먹기까지 '과연 이만큼(최소 손익분기점은 넘기는 금액)을 내가 팔아 낼 수 있을까'가 가장 중요했다. 상권분석 책을 보며 수학 문제 풀듯 대입해서 이 가게 저 가게 숫자를 풀어냈다. 숫자부터 읊으시는 마음에 진심으로 공감한다.


 그렇지만 이제 겨우 정신 가다듬은 초보 사장이니, 월세와 배후세대수를 듣고 "순이익 꽤 가져가시겠어요."라고 속 시원한 답을 할 수는 없다. 자영업의 고충을 자주 기사로 접하는 코로나 시대이고 더군다나 나는, 매번 말실수가 두려운 소심인인 것을.


 그런 내가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있다. 장사를 해보니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질문. 하지만 누구도 묻지 않는 질문. "일이 행복한가요?"라고 질문한다면 "나는 이 일이 매우 행복하다." 명확히 답할 수 있다. 7평의 동네 음료 가게. 이 작은 공간에서 나는 경단녀로서의 내가 아닌 장사형 인간으로서의 나를 발견했다.


첫 장사이지만 행복한 이유


 물론, 첫 장사이기 때문에 14년간 집에 있었기 때문에 나만의 공간이 무조건 행복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이유들이 없었다면 꾸준히 행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창업을 고민하며 가게를 방문하신 분들께 전하고 싶은, 첫 장사지만 행복한 이유를 떠올려 본다.


창업 비용

 아이들을 키우며 동네 창업을 해야겠다 결심하고 많은 업종을 고민했다. 거대한 용기가 필요했던 큰돈이었지만 그래도 "억" 소리 나는 가게들에 비하면 부담이 덜하다.


창업 동기

 그냥 돈 좀 벌어보려고 창업을 하기에는 자영업이 어려운 상황이다. 대박집들도 만날 웃기 쉽지 않고 대박 아니던 집들은 버티기 쉽지 않은 때이다.

 나의 창업에는 '아이들을 돌보며 일해야 하고, 정년이 짧은 편인 직종의 남편이 퇴직하기  사업 경험이 무조건 필요하다' 동기가 있었다. 강한 동기가 있기에 설사 실패하더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패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했다. 숫자에 실패하는 상황에 대비하며 시작했고 성공이든 실패든 사업 경험 자체가 필요했다.


장사 적성

 장사를 하다 보니 오는 돈은 반갑지만 오는 사람은 반갑지 않은 분도 간혹 뵙게 된다. 그런 경우는 장사가 잘되어도 고되고 장사가 안되어도 힘들다.

 이건 잘잘못의 이야기가 아니라 적성과 성격의 이야기이다. 난 판매 업종 아르바이트 업무가 참 즐거웠다. 재미있게 일하니 찾는 분도 늘고 매출도 늘었다. 접객 경험을 해보고 본인의 성격과 잘 맞는가 판단하는 것이 순이익 계산보다 먼저다.


업무 강도

 일이 단순하여 바빠도 복잡할 것이 없다. 복잡하고 직접 손질하고 개발하는 것이 많은 창업이라면 순이익 비율이 더 올라갈 것이다. 나는 가사와 육아를 병행해야 하기에 단순한 업무에 비중을 두었다. 일이 단순하기에 바빠도 친절하게 서비스할 여유가 있다.


판매 가격

 판매가가 비쌌다면 소심한 성격, 동네 장사에 아는 얼굴들을 마주하기 불편했을 것 같다. 주력상품의 판매가가 높지 않아 파는 입장도 사는 입장도 마음이 가볍다. 이 부분에서 다시 마진율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저렴한 만큼 더욱 친근하다. 1500원 아메리카노이지만 가격 덕에 주 5일, 주 6일 방문하시는 분들이 생긴다.


고객의 기분

 일을 하며 행복한 가장 큰 이유이다. 거의 모든 분들께서 '감사합니다'와 미소를 남기신다. 돈을 받고 팔았다는 기분보다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것을 선물했다는 기쁨이 있는 일이다.  

 종일 수업에 수업이 이어지는 학생들, 업무를 시작하는 직장인들, 힘든 운동을 하고 나온 분들, 집안일과 육아에 잠깐 휴식이 필요한 엄마들, 휴일 나들이에 나서는 가족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는 분들. 달달한 순간이 필요한 분께 음료를 전하며 나는 감사를 선물 받는다.

 이것은 좋은 재료를 쓰는가. 가격이 비싸지 않은가. 일의 강도가 적절한가 등 위에서 언급한 부분들이 모두 어우러져 나오는 결과일 것이다.


"바빠도 안 바빠도 행복하실 일인가요?"


"혹시 사장님이세요?"로 시작하여 순이익을 묻는 분들께 뜬구름 잡는 소리 같겠지만 여쭈어 보고 싶다.


 "장사가 잘되어 너무 바빠도 장사가 안되어 조금 한가해도 행복하실 자신이 있는 일인가요?"


 아직 초보 사장이라 더욱 그렇겠지만 장사는 참 예측이 어렵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정해진 금액이 입금되는 월급과는 다르게 날씨에도 경기에도 너무나 민감하다. '이 날씨에는 이렇다' 하는 규칙도 없다. 어떤 비 오는 날은 목적지에 서둘러 가느라 손님이 없고 어떤 비 오는 날은 비를 피하느라 매장이 가득 찬다. 어떤 추운 날은 찬바람 때문에 외출하는 분이 없고 어떤 추운 날은 독감주사 맞고 가는 가족들로 주문표가 이어진다.


 규칙 없는 게임 속에서 바쁘면 장사가 잘되니 몸이 피곤해도 기분이 좋고 한가하면 아이들과 더 많이 이야기하고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다.


 물론 상권도 입지도 마진율도 손익분기점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 부분은 특별히 강조하지 않아도 창업 준비 중인 모두가 중요하게 여기고 끝없이 계산기를 누른다. 계산기의 답과 달라도 당황하지 않고 그 숫자 이상을 끌어내는 힘이 중요하다. 뜬구름 잡는 듯한 '행복'에 대한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어야 가장 현실적인 '숫자'에 대한 답을 할 수 있다.


 행복도 찾고 숫자도 찾아가는 7평의 순이익을 어떻게 설명해드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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