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지나가며 큰 소리로 반갑게 인사해주는 아가. 종종 귀여운 선물을 전해주기도 하고 수업 때 만든 작품을 보여주기도 하는 1학년 단골 고객님이시다. 본래 가게에 들어오면 키오스크 앞으로 돌진하는데, 오늘은 어쩐지 다른 손님들의 주문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음료를 만들며 생각한다. '할 이야기가 있나!', '몸이 안 좋은가!'
매장이 한적해지니 어머님께서 '이제 말씀드려 보자!' 하신다. '무슨 일일까?'
"아줌마~ 이거 해주세요~!"
귀여운 손으로 귀여운 연필을 들고 귀여운 글씨를.
학교 과제를 위한 인터뷰라는데! 어머나 나를? 앗 쑥스러워라! 어깨가 배배 꼬인다.
아가는, 마흔한 살 아줌마의 17개월치 보람을 꾹꾹 눌러써준다. 어서 음료를 마시고 싶은 급한 마음에 글씨가 자꾸 표 밖으로 나가려는 귀여운 장면을 바라보며, 내 입꼬리도 마스크 밖으로 튀어 나가려 한다.
1학년 아가의 인터뷰이가 된 날, '버블티 아줌마의 보람'에 대해 생각한다.
나의 인터뷰어가 되어준 아가는 종종 키오스크 앞에서 엄마를 도발한다. "오늘은 달고나!", "그건 아줌마가 뭐라고 하셨지? 중학생 되어서 공부 많이 할 때, 선물로 주신다고 하셨지!"
다른 고객분께서 달고나 버블티를 사 가면 아가의 열망은 더욱 커진다. 모르는 척 한번 더 도발 시작. "엄마, 형이 사가는 저건 뭐예요?"
착한 어머님 돕기 위해 대화에 살짝 등장한다."아줌마가 중학교 갈 때 밤늦게까지 공부할 때, 달고나 버블티 선물해 줄게~", "네! 그럼 오늘은 초코 버블티 주세요! 많이요~"
달고나 버블티를 만들 때면 아직 달고나 버블티를 마셔보지 못했지만 늘 달고나부터 눌러보는 아가가 떠오른다. 중학교 입학 때 달고나 버블티를 선물하기로 약속했는데 그때까지 이곳에 서 있을 수 있을까.
"오늘 가려는데 몇 시까지 하나요?"
저녁 8시쯤 전화가 온다. "오늘 가려는데 몇 시까지 하나요?", "네 9시까지 영업합니다. 천천히 조심히 오세요~" 마감 때까지 전화의 주인공이 나타나지 않아 일부러 청소도 느릿느릿. 아 아무래도 오늘은 못 오시나 보다.
며칠 뒤, 가끔 방문하시던 예쁜 고객님께서 급히 들어오신다. 달고나 버블티. 늘 드시던 메뉴. 특별히 대화를 나눈 적은 없고 상냥히 웃으시며 음료를 받아가시던 분이셨다. 음료를 드리며 "머리 스타일이 바뀌었어요. 예뻐요!" 하니, 알아보았냐고 하시며 풍선에 바람 불어넣듯 후후훅 말씀하신다.
"아니 회사가 이전을 해서 여기 달고나를 못 먹으니 너무 먹고 싶어서 아빠 겨우 졸라서 차 타고 겨우겨우 왔어요~", "아~ 지난번 밤에 전화하셨었지요?", "네!!! 너무 먹고 싶어서 오려했는데 늦게 끝나서 못 오고 오늘 월차라!!!"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흔한 버블티인데 굳이 멀리까지 와주시니 죄송할 정도로 감사하다. 아니, 귀한 월차에, 이 작은 가게로, 아버님께 겨우겨우 부탁해서, 까지 오시다니! '황송'이라는 표현을 이런 때 쓰는구나 싶다.
다음 휴일에 어머님 차 타고도 오시고...... 마지막 오셨을 때 웨딩촬영을 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달고나처럼 달달한 일상을 보내고 계시겠지 그려본다.
"저기요~ 달고나만 더 사갈 수도 있나요?"
처음 방문한 날, 아이들 그림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던 귀여운 학생. 유학생일 때 만났고 지금은 삼성동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다. 긴 생머리를 업스타일로 올리고 피곤한 모습으로 퇴근길 들를 때에는 어른 모습이 보이지만, 여전히 귀여운 아가다.
달고나 버블티에도 달고나. 토피넛 버블티에도 달고나. 달고나가 너무 맛있다며 달고나만 따로 사갈 수 있냐 묻던 고객님. 요즘 좀 뜸한 이유가 어른 생활에 적응되어 '달고나 응급처치'가 필요 없어진 것이길 바라본다.
<달고나 버블티> 초코만 먹는 딸의 그림
흑당 버블티에 달고나를 주문하고 키득키득 수다를 나누는 학생들, 헤이즐넛 라떼에 달고나를 추가하시고 최고다 해주시는 큰 키의 고객님, 일행분들 모두가 초코 버블티에 달고나를 추가, 엄지 척 올려주시는 외국인 고객님들, 연유 라떼에 달고나를 올리는 그 잠시에도 문제집을 펼치시는 수험생 고객님, 공주님 같으신 사모님께서 달고나 버블티 좋아하신다며 소중하게 안고 가시는 고객님, 옆 동네로 이사 가셨음에도 주차가 불편함에도 에스프레소 담은 달고나 한 잔을 위해 와 주시는 고객님.
버거운 생각을 짊어지는 날에는, 달고나 추가 고객님들을 떠올리며 나도 달고나 한 조각 입에 넣고 고민을 이리저리 굴려본다. 달달달. 달달. 달. 작아지는 달고나 조각처럼 생각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절로 녹기 기다리기 답답할 때에는 와그작. 툽. 툽 씹어도 본다. 그러다 보면 무려 '고민'이었던 생각들이 그저 '지나갈 일'이 되어 있다.
음료를 기다리시는 고객님들께도 이런 달고나 마법이 통하기를. 달고나 주문표를 바라보며 '신나는 일은 더욱 신나게, 힘든 일은 조금만 힘들게' 주문을 담듯 달고나를 담는다.
1학년 아가가 적기에는 너무 길어 다 말하지 못했던 버블티 아줌마의 마음. 한분 한분 얼마나 큰 의미인지 들키면 그저 고객으로서 입장하시기 불편하실까 봐 감추는 마음, 넘치고 또 넘치는 그 감사한 마음, 들키면 안 되는 사장의 속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