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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별 Oct 14. 2021

제가 그 버블티 가게 딸이에요!

초코는 좋고요, 같이는 더 좋아요.

'제가 그 집 딸이에요' 하고 싶어!


 낮에 버블티를 먹고도 남편이 "아빠 운동 가는데 뭐 사다 줄까?" 하면 "아빠 혹시 버블티 사다 줄 수 있어?" 하던 딸. "엄마, 그 언니 엄마가 다른 동네에서 버블티 가게 하신대~" 음료 마시며 공부한다는 언니를 부러워했다. "아 엄마가 버블티 가게 했으면 좋겠다." 장난처럼 진담을 전했다. 


 시작은 그러했으나 개업하고 만 17개월이 지나니 중학교 교복 입은 딸의 사정이 궁금하다. 동네 작은 가게가 부끄러운 때는 없는지. "엄마 가게 때문에 힘든 건 없어?" 조심스레 묻는다. "응 없어. 길에서 우리 가게 컵 들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제가 그 가게 딸이에요' 하고 싶어." 울컥. 눈은 움푹 감기고 어깨는 봉긋 솟는다.


 그런 딸이 매일 먹고도 질리지 않는다는 초코 버블티, 가끔 미숫가루 버블티를 먹기도 하지만 만날 초코다. 마스크 안으로 한숨 좀 내불며 이겨낸 중학생 일과 속 "엄마 나 초코!"는 투정이고 매번 "와아~"하며 먹어주는 딸이 내겐 위로다.


연주는 왜 초코만 먹어?


 초코를 좋아하는 소중한 이는 또 있다. 긴장되던 첫 영업일부터 지금까지 바쁠 때 도와주아르바이트 친구, 연주. "연주는 왜 초코만 먹어! 더 맛있는 것 먹어~" 해도 "초코가 제일 좋아요." 일 년 넘게 초코만 먹었다. 다른 음료를 권하다 진짜 초코가 제일 좋을 수 있으니 강요가 될까 봐 양보하곤 했다. 옆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절친, 애교 가득 혜지가 와도 둘 다 "으으응~ 초코가 제일 좋아요!"


 거리두기 시작, 곳에서 배달을 시작했다. 진지하게 고민했다. 소심을 딛고 겨우 창업해낸 터라 두려웠다. 매장 판매만으로도 영혼 날아갈 때 많은데! 

 갈등을 바라보며 연주는 단호했다. "사장님! 하세요 배달! 제가 할게요!" 유명 브랜드 매장에서 배달 업무를 해봐 일이 늘어날 것을 알면서도 '하세요, 제가 할게요!' 말해준 연주. 참 많이 감사하다.(찾아주시는 감사한 분들 덕에 아직 매장 판매만으로 잘 버티고 있다.)

 

 '귀여운데 근면까지 하다' '귀엽고도 근면하다' 중 어떤 표현이 더 정확할까 고민하게 만드는 예쁜 연주에게 초코는 쉼이요, 초코를 좋아하는 연주는 내게 위로다.


동생은 돈을 너무 아껴서 버블티랑 마카롱 대신 껌 사 오래요.


 초코 이야기를 하자니 4학년 양갈래 초코 사랑 고객님 말씀이 떠오른다. 엄마나 할머니께서 사주실 때에는 초코 버블티, 초코 마카롱을 먹던 동생이 오늘은 용돈으로 사는 거라 껌을 선택했단다. 1900원이면 500원짜리 껌을 거의 네 번은 살 수 있는 돈이다. 편의점 풍선껌 '플러스 증정 행사'까지 생각하면 1회 지출로는 큰 돈이다. 주문은 고객님의 신중한 결단임을 기억하며 늘 진지하게 임할 것!

 

 용돈 모아 받아 든 주문표의 초코는 아가 고객님들께 설렘이고 이 7평에서 설렘을 찾는 모습이 내겐 위로다.


언니야 날씨 봐라! 뜨끈~한 펄이~ 공원 앉아 마시면 예~술이다!

 초코는 어르신들께도 인기다. 어제는 "당분간 포장 판매만 하고 있어서...... 죄송해요......" 말끝 흐리는 내게, 어르신 두 분께서 선율 담긴 문장을 선물하셨다. "언니야~ 날씨 봐라! 뜨끈~한 펄이~ 공원에 앉아 마시면 예~술이다!"

 

 초코 하나, 오리지널 하나. 칭찬에 들뜬 음료를 건네며 또, 엄마를 만난다. 엄마가 살아있다면 이 정도 나이였겠지. "스위스 저축은행 커피가 진짜 맛있어~ 거기 적금 들자!" 지민이 엄마와 커피값 대신 만원씩 저축하고 커피 하나 뽑아 온다던 엄마. 그 기계 커피가 '정말' 맛있다 말하는 엄마의 표정은 없는 돈도 만들어 '정말' 저축하고 싶게 만들었다. 그 커피를 마셔보았던가. 엄마와 함께 들고 공원에 좀 나가볼 것을. "어머 날씨 봐~ 맛있는 커피 들고 같이 있으니 정~말 좋다. 그치?" 엄마 목소리가 들려온다.


 초코의 위로, 한참은 노란 믹스커피가 그랬다.

 온몸 비틀리는 고통이 그저 그리움인 척 살아내야 했다. 믹스커피뿐이었다. 엄마처럼 에이스 크래커를 샀다. 커피에 녹아드는 과자처럼 나도 물컹물컹 성큼성큼 엄마 있는 곳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물이 끓어오르면, 엄마 향기, 엄마 목소리, 엄마 표정, 엄마 글씨, 엄마의 미사보, 엄마의 된장찌개 그런 기억들을 휘휘 저었다. 벌컥벌컥 삼키기도 하고 천천히 아껴 마시기도 했다. 봉지를 뜯고 붓고 물을 따르고. 엄마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음료 한잔이 큰 의미가 될 수 있지" 중얼거리며 앞치마를 입곤 한다.

  

 학원 강행군 중 잠시 마시는 기력 초코, 독한 다이어트 중 보상 데이에 마시는 치팅 초코, 고마운 친구에게 특별히 쏘는 감사 초코, 동전 모아 생일선물로 사가는 축하 초코, 시험 잘 본 친구들에게 선생님께서 사주시는 칭찬 초코, 식사 잘 못하시는 어르신께서 유일하게 잘 드신다는 온기 초코, 식사를 뛰어넘기고 밥 먹기는 애매한 시간이 되어 마시는 든든 초코 그리고 나처럼, 그리움을 이겨내는 초코.


 누군가에게 초코가 필요한 순간, 마침 내가 여기 서있음에 감사하다.  

 초코는 좋고 같이는 더 좋다!




"준우야 너는 엄마가 해준 음식 중에 뭐가 제일 맛있어?"


 동건이가 준우에게 묻는다. 가게 정리하다 긴장한다. 음식? 음식이라니. 자신 없다. 요리라면. 당당히 자신 없다. "응? 음식?" 준우의 대답이 늦다. 설마 진라면 순한 맛? 안 듣는 척하며 머리 끝이 삐죽 선다.


 "응...... 초코 버블티!"

으하하하. 으핫. 다행이다. 버블티 가게를 열어서. 맞아 사실 라면도 그다지 맛있게 끓이지는 못하는걸.


 준우에게 초코는 엄마의 요리 중 으뜸이고 나에게 초코는 이 순간 오예! 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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