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또 해냈다
* 6일 차, Dingboche(4,410m) → Lobuche(4,910m) 4시간 소요
06시쯤 눈을 떴다. 밤사이 두세 번 깨긴 했지만 잘 잤다. 07시 25분 오늘의 목적지인 로부체(Lobuche)로 향했다. 이른 아침 체감 기온은 몹시 추웠다. 준비 부족으로 인해 장갑은 손가락장갑뿐이었다. 그로 인해 손가락 마디 끝이 추웠고 등산 스틱을 잡는 것조차 힘들었다. 하루가 지날수록 준비와 계획의 중요성을 느끼는 중이다. 걷다 보니 서서히 해가 떠올랐고 덕분에 굳어있던 몸이 풀리기 시작했다. 이게 뭐라고 괜히 행복했다. 내리막과 오르막을 반복하며 중간지점인 투클라에 도착했다.
"건! 여기서 점심 먹고 가자."
라즈는 배가 고픈지 여기서 점심을 먹고 가자고 했다. 나는 어제 점심때 먹은 피자로 인해 속이 불편한 상태였다. 그러나 내가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라즈 역시 배고픔을 참고 트레킹을 해야 했기에 라즈를 위해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나는 고산병 예방에 좋다는 마늘 수프 한 그릇을 주문했다. 말이 좋아 마늘 수프지 으깬 마늘 1쪽을 맹물에 올려준 느낌이었다. 메시의 나라에서 온 파블로 아저씨를 다시 만났다. 어제 잠깐 본 사이였지만 반가웠다.
"아저씨! 오늘 컨디션 어떠세요?"
"나는 괜찮아, 너는 어때?"
"속이 조금 더부룩하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라즈가 말하길 이곳부터는 숙소 구하기가 더 어려워지다 보니 본인이 먼저 가서 방을 알아본다고 했다. 반가운 소식이기도 했지만 이 힘든 길을 정말 나 홀로 트레킹 해야 하는 상황이 찾아왔다. 이제 오르막 돌길의 시작이다. 딱 봐도 길 자체가 삭막하고 험해 보였다. 과거 빙하지대였던 돌 밭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잡목들과 큰 돌들이 전부였다. 너무 힘들었다. 높은 해발고도에 강한 추위는 물론 급격히 가팔라진 경사 그리고 누적된 피로로 인해 체력이 저하되는 시점이었다. 그로 인해 한발 한발 내딛는 속도가 어제보다 훨씬 느려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몇 걸음 가지 못해 멈춰 서서 크게 숨을 두어 번 내쉬고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턱 밑까지 차오르는 거친 호흡으로 인해 주저앉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올라가면서 '나는 할 수 있다'를 수십 번씩 외쳤다. 정말 혼자만의 싸움이었다. 계속해서 호흡은 거칠어지고 다리에 힘이 빠졌지만 그렇다고 힘없이 고개 숙인 상태로 오르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주고받는 인사를 통해서라도 스스로 좋은 에너지를 만들고 싶었다. 힘들지만 억지로라도 힘을 내는듯한 나의 목소리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이 인사를 해줬다. 몇몇은 힘없이 혹은 그냥 지나치기도 했지만 그냥 지나치는 이들의 반응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기에 긍정의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했다.
'컨디션 어때? 괜찮아?'라는 인사에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내며 헥헥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좋아! 괜찮아.'라고 답했다.
"와우, 너 대단하다. 강함과 에너지가 느껴져!"
밝게 웃고 싶은 마음과 달리 잘 웃어지지 않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좋은 에너지가 느껴진다며 격려를 해주는 사람들의 짧은 인사말에 괜찮다고, 좋다고 답을 하면 할수록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신기했다. 계속되는 오르막으로 인해 지금 걷는 이 고개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고 막막해 보였던 돌길의 연속이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나는 5,000m에 가까운 고개(투클라 패스) 하나를 넘고 있었다.
'결국 또 하나의 고개를 넘다니'
감격스러웠다. 6일 동안 체감상 가장 힘든 코스였다. 할 수 있다는 긍정 에너지 덕분에 어렵게 한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휴식하며 만난 독일, 알바니아에서 온 남자들 중 독일인은 1년 4개월 동안 세계일주 중이며 유럽을 시작으로 중동, 인도, 네팔과 동남아를 거쳐 우리나라까지 갈 예정이라고 했다. 인도에서 5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왔다는 말에 마치 우리나라인 것처럼 괜히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역시 인도는 매력 터지는 곳이 분명하다. 인도 여행에 대해 웃으며 몇 마디 나누다가 'So Crazy'라는 문구로 결론을 내렸다. 웃으며 공감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잠시 후 4명의 네팔 포터들이 앞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힘들었지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수버비하니"
"(하하) 수버비하니"
그들은 정말 역대급 밝고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해주었다. 덕분에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고 더욱 힘이 났다. 근데 갑자기 앞에 가던 백인 아주머니가 우릴 쳐다보며 뭐라 하는 게 아닌가.
* 필수 네팔 인사말(기본 회화)
1. 좋은 아침입니다 : 수버비하니
2. 좋은 밤 보내세요 : 수버라떠리
3. 안녕하세요 : 나마스떼
4. 얼마예요? : 꺼띠 호?
5. 싸게 해 주세요 : 밀라에러 디누스
6. 감사합니다 : 단야밧
7. 나는 한국인입니다 : 머 꼬리언 훙
8. 영어 할 줄 아세요? : 떠빠잉 엉그레지 볼누훈처?
9. 화장실이 어디예요? : 쩌르피 꺼하 처?
10.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수버딘
11. 또 만나요 : 페리 베떠웅나
12. 미안합니다 : 마푸 거르누스
13. 도와주세요 : 구하르
14. 부탁합니다 : 그리삐야
15. 당신 이름이 뭐예요? : 떠빠이 남 께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