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견례 파투, 모욕의 시작

처음 느낀 이상한 조짐

by 온담

나르시시스트는 타인을 인격으로 보지 않고, 자기 세계의 '조연'이나 '도구'처럼 여긴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스물셋이었다.
어딘가 불안한 듯 두리번거리는 눈빛, 서툰 행동, 말수는 적지만 호감 가는 외모.
나는 그가 수줍고 순수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첫 만남이 끝나고, 그는 지인을 통해 나에게 호감을 표현해 왔다.
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우리의 관계가 시작되었다.

5년간의 연애 동안 그는 여전히 말수가 적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관계를 주도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순둥이 같았다.
자연스럽게 결혼을 생각했고, 어느 날 그의 집에 인사를 갔다.





그때 나는 대학원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고,
그는 대기업에 취업해 있는 상태였다.
그의 집은 반지하였다.
나에겐 다소 생소한 환경이었지만, 시부모님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고,
앞날을 축복해 주셨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워 보이진 않았지만,
우리 부모님은 그런 것에 편견을 두시는 분들이 아니었다.
상견례 날짜도 순조롭게 잡혔다.




그런데 상견례 전날,
뜬금없는 소식이 들려왔다.
시아버지가 상견례를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조율이 아닌, 일방적인 파투 통보였다.

이유는 나였다.
대학원생인 내가 아들을 뒷바라지하지 못할 것 같고,
교회에 다니지 않을 것 같다는 것.
(당시 나는 실제로 기독교 신자였고 교회를 다니고 있었다.
무엇을 보고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상견례는 우리 부모님과의 약속이었다.
그 약속을 이렇게 일방적으로 깬다는 것은,
나뿐 아니라 우리 가족 전체에 대한 모욕처럼 느껴졌다.
5년간의 연애 동안 아무 문제없던 조건들이,
갑자기 걸림돌이 되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다음 날 상견례가 취소되었음을 부모님께 전하는 순간,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다.
이 결혼은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며칠 뒤, 그가 다시 상견례를 하자고 했다.
아무것도 바뀐 건 없었는데, 시아버지의 마음이 바뀌었다는 이유였다.

모든 것이 그 한 사람의 기분에 따라 뒤흔들리는 상황.
부모님도 고심하셨지만 결국 상견례를 수락하셨다.
그의 순한 인상, 대기업이라는 안정된 직업,
그리고 5년간의 별일 없는 연애를 믿어보자고 생각하신 듯했다.

나 역시 당황스러운 마음을 눌러가며 받아들였다.
그때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그렇게 일방적인 변덕을 용인한 것이,
지금 돌아보면 모욕의 시작이었다.





상견례 자리에서 시아버지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호의적으로 행동했다.
며칠 전의 파투가 정말 있었던 일인지,
착각이나 해프닝은 아니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렇게, 우리의 결혼은 시작되었다.




시아버지에게서 발견한 나르시시스트적 특성


1. 권력 확인 욕구


상견례 전날 갑작스러운 취소 통보는

자신이 관계의 결정권자임을 과시하려는 행위였다.



2. 단정적 평가와 오만한 판단


충분한 대화나 이해 없이 상대에 대해 근거 없는 단언을 내리는 태도.

“대학원생은 뒷바라지 못한다”, “교회 안 다닐 것 같다”


타인을 하나의 기준으로 재단하고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 전형적인 나르적 시선



3. 통제 욕구

자신의 기분대로 관계를 흔들고,
상대가 굴복했을 때 비로소 태도를 바꾸는 모습.
그 통제가 관철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호의'를 베푸는 태도.



이 글을 읽는 분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저처럼 각성하여 나르시시스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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