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폭력
조용한 신혼이 지나고, 한 번의 유산 끝에 우리에게 아이가 찾아왔다.
한 번의 아픔을 겪은 터라 임신 기간 내내 조심스럽고 불안했다.
40주의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사랑스러운 아이를 안았을 때,
나는 반드시 이 아이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다짐했다.
아이는 예민했고, 잠을 깊이 자지 못했다.
14개월이 될 때까지도 세 시간 이상 내리 자지 못했고,
분유는 거부하고 오직 모유만 찾았다.
아들은 온 가족의 첫 아이였다.
나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했고,
육아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남편과 함께라면 잘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처음엔 그도 서툴지만 노력하는 듯 보였다.
늘 안아야만 잠드는 아이를 품에 안고 달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딱 100일까지였다.
그가 “허리가 아프다”라고 말한 이후로
모든 육아와 가사는 내 몫이 되었다.
출산 후 몸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해주지 않았다.
허리 아프다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부탁하기도 애매했다.
아이는 생후 6개월 무렵, 전신마취 수술을 받게 되었다.
회복 중에는 하루에 세 번, 통 목욕을 시켜야 했다.
한 번도 벅찬 일을 하루 세 번이나.
그러나 내 아이였기에 모든 여력을 쏟았다.
그 시간 동안 남편은 무덤덤했다.
내 피곤함에도, 절박함에도,
아이의 웃음에도, 애교에도
무표정한 반응만 내비쳤다.
그가 가장 예민하게 반응한 건
주말 드라마를 방해받는 일이었다.
나는 밤중 수유를 위해
세 시간마다 깨서 수유하고, 기저귀를 갈고,
다시 재우기를 반복했다.
탈진한 어느 날, 새벽에 기저귀 가는 걸 부탁했다.
그는 화를 냈다.
“회사 가는 사람이 어떻게 육아까지 다 해?
회사 가서 일하지 말라는 거야?”
그리고 이어진 말.
“넌 낮잠 잘 수 있잖아. 좋겠다, 낮잠 자서.”
한 번은 아이와 백화점에 갔다가 힘들었다고 말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게 왜 애를 데리고 백화점을 가?”
모유 수유의 수고를 알아달라고 말했더니
그는 이렇게 반문했다.
“그건 네가 선택한 거잖아.
아들이 고마워해야지, 왜 내가 고마워해?”
그의 반응에 혼란스러웠다.
내가 예민한 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걸까?
그는 ‘맘충’이라는 말을 자주 썼다.
나는 외출할 때마다
맘충이 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썼다.
아이의 작은 칭얼거림도 막아야 했다.
그는 외출 시 아이를 조용히 시키기 위해
스마트폰을 먼저 꺼내 들었다.
아이와의 외출은 긴장의 연속이었고,
따뜻한 분위기란 없었다.
어느 날 그는 퇴근 후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며 나갔다.
나는 이미 지쳐 있었기에,
나가기 전에 아이 목욕을 시켜달라 부탁했다.
그는 짜증을 냈고, 결국 다툼이 벌어졌다.
그날, 그는 내게 처음 욕을 했다.
아이 목욕은 하지 않은 채, 그는 집을 나섰다.
내 육아는 외로웠다.
남편에게서 발견한 나르시시스트적 특성
1. 감정적 연결 회피 – 가족과의 정서적 교류를 피하고 혼자만의 시간에 몰두함.
2. 공감 부족 – 배우자의 피로와 감정에 무관심하고 반응 없음.
3. 책임 회피 – 육아와 가사에서 물러나며 핑계로 일방적 역할 분담을 정당화함.
4. 자기중심적 태도 – 타인의 헌신을 당연시하고, 감사하거나 공감하지 않음.
5. 경멸과 비난 – 요청에 분노하거나 비꼬며, 상대의 자존감을 깎아내림.
이 글을 읽는 분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저처럼 각성하여 나르시시스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