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취가 그의 자존심을 위협할 때
근로자가 아닌 투자자로
고등학생 때 내가 제일 좋아하던 과목은 경제였다. 경제 과목을 배울 때면 눈이 반짝 빛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경영학과를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과 선생님의 권유로 인문학과에 진학했다.
결혼 후 나는 통역사로 일했지만 정작 내가 가장 흥미를 가진 것은 부동산 투자였다. 신혼 초에 읽었던 로버트 기요사키의 저서 [부자들의 음모]를 읽고 난 후, 나는 결심했다. 근로자가 아닌 투자자가 되겠다고.
신혼집에서 시작한 투자 여정
전셋집 (그중 70% 이상은 친정에서 부담해 주셨다)으로 시작했던 우리의 신혼집은 이후 각종 부동산 투자의 기반이 되어 주었다.
전셋집에 살던 당시 우리는 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2014년 작은 신축 아파트 분양권을 처음으로 사게 되었다. 전세금에 수년간 맞벌이로 일하며 모은 돈 5천만 원을 더해 분양권을 샀고, 그 아파트에 입주해 2년 후 양도 차익을 얻고 팔았다.
그 후 다시 경기도로 이사를 했고 기존 아파트 매도 금액 그대로 광교에 전셋집을 얻었다. 그러던 중 동탄 2 신도시 분양권을 샀다. 남편은 동탄은 본인의 회사와 멀어서 안된다고 반대했지만, 나는 지금 우리가 가진 자금에 딱 맞고 미래 가치도 높으니 분양권을 사자고 설득했다.
결국 프리미엄과 분양가를 더해 2억 초반에 동탄 2 신도시에 입주하게 되었고, 이 아파트는 추후 매도해 약 4억 원 이상의 수익을 실현하게 되었다.
동탄에서 광교로
동탄의 쾌적한 환경도 좋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다음 기회를 향해 가 있었다. 광교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이 다시 꿈틀거렸다.
동탄에 거주하며 열심히 광교 분양권을 물색했다. 그러던 중 우리 자금 규모에 딱 맞는 광교 분양권을 매수했다. 초기라 프리미엄은 4천이었고 분양가 포함 매수 금액은 동탄 집의 매도 예상가와 맞아 떨어졌다. 광교의 이 아파트는 추후 수 억원의 양도 수익을 실현했다.
투자에 재미를 붙이다
광교에 입주한 후, 나는 부동산 투자에 자신감과 감을 얻게 되었다. 날마다 각종 부동산 앱에 올라온 수많은 매물을 비교하다 보면, 어떤 지역의 어떤 매물이 상대적으로 저평가 됐는지, 향후 얼마까지는 안정적으로 오를지 파악이 됐다.
드디어 나는 실거주가 아닌 투자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당시 시가에서 토지를 매도해 몇 억 원의 현금이 수중에 있었는데, 시부모님은 이를 어디에 투자할지 감이 없으셨다.
나는 광교에서 저평가돼있다고 생각했던 광교 소형평수 아파트를 알아보고 매수해 드렸다. 추후 이 물건은 4억 정도의 수익이 실현되었다. 또 시아버지가 국가유공자임을 활용하여 특별공급청약에 넣어 신축 아파트 분양을 받게 도와드렸다. 이 아파트는 약 2억 정도의 수익이 났다.
묘한 경쟁자의 시선
나 자신도 광교역세권 소형평수 아파트에 갭투자를 했고, 이 물건은 1억의 수익이 났다.
주변에서는 나를 치켜세우며 칭찬했지만, 남편은 부동산이 올라 좋으면서도 아내인 내가 잘했다고 인정하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눈치였다. 그는 고마워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아내가 잘되는 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도 되는 듯, 묘하게 경쟁자의 눈빛을 띠었다. 이후부터는 사람들 앞에서 부동산에 대해 나와 다른 의견을 내세우며 논쟁을 계속하기도 했다.
마지막 결단, 분당 급매물 잡기
나의 부동산 투자는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광교에 거주하는 중, 학군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당시 첫째는 곧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부동산 앱의 매물을 둘러보는 것이 일상이었던 내게, 어느 날 분당 수내동의 급매물이 눈에 들어왔다. 월세를 낀 물건이라 초기 자본이 많이 들어가 다른 매물보다 1억 정도는 싸게 나온 물건이었다.
이것저것 잴 것 없었다. 바로 분당 부동산으로 차를 몰았다. 집을 보니 연식이 오래되고 수리 상태는 좋지 않았지만, 해가 잘 들고 초등학교와 학원 상가와 가까운 동이었다. 결단이 필요했다.
똘똘한 한 채만 남기다
그동안 보유하고 있던 동탄과 광교의 부동산들을 모두 처분하면 잔금을 맞출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잔금일을 조금 넉넉히 줄 수 있다면 그 기간 동안 가진 부동산을 매도하여 잔금을 치르겠다고 매수 의사를 밝혔다.
잔금 날짜를 6개월 받았다. 그 안에 나는 내가 가진 모든 부동산을 매도했다. 심적으로 부담 가는 일이었지만 당시 부동산이 활황이라 매도에 문제가 없을 거라 판단한 내 생각이 맞았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우리는 분당 아파트에 입주했다. 그리고 이 아파트는 매수 금액보다 현재 6억 이상 올랐다.
별 것 아닌 일
그 이후 부동산 시장은 조금씩 진정되었고, 나의 관심은 미국 주식 시장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물론 나보다 훨씬 투자를 잘하는 투자의 고수가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가족에게는 나의 노력과 수고를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나의 기여를 인정하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도 되는 양, 이를 축소하려 했다. 무료 컨설턴트 역할을 하며 시가에 수억 원의 수익을 실현시켜 드렸지만, 인정이나 감사의 말은 없었다. 결국 내 노력과 노동은 ‘당연한 일’로 치부되었고, 수억의 성과는 ‘별 것 아닌 일’이 되었다.
남편에게서 나타난 나르시시스트적 특성
1. 아내의 성취에 위협을 느낌
아내의 부동산 성공을 축하하거나 인정하지 않고, 경쟁 상대로 인식.
2. 감사의 표현 없음
수억 원의 수익을 안겨준 아내의 재테크를 축소하거나 무시함.
3. 공감 결여
아내의 노력과 감정에 무관심하며, 피드백이나 지지 없음.
4. 자신의 자존심 우선
가족의 이익보다 자신의 위신과 자존감을 우선시하며 불편함을 드러냄.
이 글을 읽는 분 중 단 한 분이라도 저처럼 각성하여 나르시시스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