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건 타프가 아니었다.
그날은 오전부터 흐렸다. 일기예보에는 오후 늦게부터 비가 온다고 했다. 초보 캠퍼였던 우리는 집에서 한 시간 내의 가까운 캠핑장을 예약해 두었다. 친구 가족과 두어 번 캠핑을 해봤지만 우리 가족끼리는 해본 적이 없었다. 장비도 어설프고 텐트 치는 것도 미숙한 상태였다.
오후부터 비가 온다고 예보돼있기에, 가까운 캠핑장에 가서 타프와 테이블만 세팅하고 놀다가 잠은 자지 않고 집에 돌아오기로 했다.
캠핑장에 도착해서 타프를 칠 때까지는 그럭저럭 무난했다. 나는 그가 타프 치는 것을 보조해 주고, 테이블과 의자 등을 세팅했다. 아이들도 캠핑장을 둘러보며 들떠 보였다.
세팅을 마치고 겨우 엉덩이를 붙이고 맥주 한 캔을 따니 과연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초보 캠퍼로서 처음 겪는 "우중캠핑"의 시작이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정도였기에 운치 있다고 생각하며 맥주를 넘겼다.
그런데 그는 오후 늦게 온다던 비가 더 일찍 오는 것이 마뜩잖아하는 듯했다. 타프가 비에 젖으면 그걸 걷어서 말리는 것이 귀찮다며, 바로 다시 타프를 걷어 철수하고 집에 가자고 했다.
부슬비는 이미 내리고 있었기에, 나는 타프가 많이 젖으나 조금 젖으나 큰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찌 됐건 캠핑을 시작했으면 우중 캠핑도 즐길 줄 알아야 하는 것 아닐까. 이제 막 세팅을 끝내고 맥주를 두어 모금 넘겼을 뿐, 손 안의 맥주는 아직도 차디찼다.
나는 어차피 비는 시작됐으니 조금 더 앉아 있다 가자고 말했지만, 그는 계속 지금 철수하자고 짜증을 부렸다. 아이들도 이제 막 도착해서 캠핑장을 둘러보고 있는데, 이제 막 앉아서 맥주 한 캔 땄을 뿐인데,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가 싫다고 하는데도 그는 계속 지금 철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지친 나는 "몰라, 맘대로 해."라고 했다. 맥주를 한 모금 더 들이켜는 순간, 나와 아이들의 머리 위로 타프가 와르르 무너졌다.
그가 우리가 있는 상태 그대로 타프를 무너뜨린 것이다.
아내와 아이들이 앉아있는 머리 위로 타프를 무너뜨리다니 생각도 못할 일이라, 순간 수치심과 분노가 치밀었다.
눈물이 나려는 것을 참고 아이들을 챙겨 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혼자서 타프와 나머지 장비를 정리했다. 그리고 우리는 말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도 도대체 이게 뭔가 싶었다. 가족끼리 즐거운 추억을 남기려고 캠핑도 시작한 것 아닌가?
집에 와서 이를 두고 언쟁이 시작됐다. 그는 부부싸움이 시작되면 늘 술을 찾았다. 감정을 가라앉히기보다는, 와인이나 맥주를 들이키며 감정을 고조시키고 위협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는 오히려 나와 아이들이 차에 들어가 있고, 혼자 자리를 정리한 것이 수치스러웠다며 나에게 화를 냈다. 혼란스러웠다. 그렇다면 내 머리 위로 타프를 무너뜨려도 나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그를 도와 정리를 도왔어야 한단 말인가?
그와의 말싸움은 항상 혼란스러웠다. 그는 모든 것이 내 잘못, 내 탓이라고 했다. 감정이 고조되자 그는 내 얼굴에 마시던 맥주를 끼얹었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지금까지 그가 해왔던 크고 작은 폭력의 징후들은 결코 순간의 실수가 아니었다. 그는 논쟁 중에 식탁 위에 있던 쌀튀밥을 내 얼굴에 던진 적도, 내 어깨를 밀친 적도 있었다. 물건을 던진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쌀튀밥같이 작은 걸 던진 것이 뭐가 문제냐, 물건은 너를 향해 던진 게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맥주를 끼얹고도 그는 "이게 무슨 끼얹은 거냐, 몇 방울 튀긴 거지."라고 말했다.
자신이 한 잘못은 모두 별것 아닌 양 축소해서 생각했고, 내가 한 잘못은 큰 일이라도 난 듯 생각했다. 화가 잔뜩 난 상태에서 맥주를 손에 몇 방울 덜어 튀기기라도 했다는 건가? 그는 내 얼굴에 맥주를 끼얹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상황을 축소했다.
이 날 무너진 것은 타프가 아니었다. 무너진 것은 그에 대한 내 신뢰였다. 그는 화가 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고, 그 후에도 반성하기는커녕, 태연하게 말을 바꾸고 자신의 잘못을 축소하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이었다.
이 사건 이후 나는 그와의 언쟁이 시작되면 조용히 핸드폰을 들어 녹화를 하기 시작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자 그와의 여행은 어느 좋은 곳을 가도 편하지 않았다. 아니, 어디를 가든 그와 함께라면 지옥이었다.
남편에게서 발견한 나르시시스트적 행동 특성
1. 공감 결여
가족의 기대나 감정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불안과 불편함만을 우선시함.
(부슬비에도 철수 고집, 타프 무너뜨리기)
2. 수동적 공격성 / 감정 보복
말로 표현하지 않고, 타프를 일부러 무너뜨려 감정을 행동으로 표출.
(의도적이고 상징적인 공격)
3. 책임 회피 및 전가
타프 사건 후 되레 본인이 피해자라는 식으로 왜곡.
(“혼자 정리한 게 수치스럽다”며 피해자 코스프레)
4. 과잉 반응 및 정서적 불안정성
갈등 시 술을 마시고 감정을 조절하지 못함.
(맥주를 끼얹고 분노 폭발)
5. 행동의 축소 및 왜곡
폭력적 행위를 ‘별거 아니다’라며 축소.
(쌀튀밥, 맥주 튀긴 것 등 모두 의미 축소)
6. 가스라이팅성 언행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고 상대의 감정과 판단을 혼란시키는 말들을 반복.
(늘 “네가 문제”라고 몰아감)
이 글을 읽는 분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저처럼 각성하여 나르시시스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