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는 폭력
그는 겉보기에는 매우 조용한 사람이다. 말이 없고, 표정 변화도 드물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철저히 수동적이다. 무언가를 먼저 제안하거나 스스로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결혼 생활 내내 내가 가장 힘들었던 점은, 육아나 가사에 대해 그가 전혀 책임감을 갖지 않는 태도였다. 그는 가족의 일원이 아니라, 방관자처럼 행동했다.
맞벌이일 때든 아니든, 집안일과 아이 돌보는 일은 모두 나의 몫이었고, 가끔 무언가를 부탁하면 어떤 날은 묵묵히 하다가도 어떤 날은 짜증을 내며 화를 냈다. 퇴근 후 아이와 눈 맞추며 놀아주거나 책을 읽어주는 일도 없었다. 아이가 감기에 걸려 약을 먹이는 것, 하루쯤 목욕을 시켜주는 것, 숙제를 챙겨주는 일조차도 그에겐 분노의 도화선이었다.
그의 태도는 일관되지 않았고, 나는 점점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하는 법을 익혀야 했다. 아이들 역시 ‘아빠는 원래 놀아주지 않는 사람’, ‘핸드폰만 보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주말 외출이나 산책조차 그에겐 부담스러운 일처럼 보였다. 그는 늘 무기력했고 귀찮아했다. 함께 나가는 것보다, 두 아이를 데리고 나 혼자 외출하는 편이 훨씬 마음이 편했다. 그와 함께할 때는 언제나 조마조마했기 때문이다. 줄이 길어지거나 아이가 칭얼거리기라도 하면, 그는 예외 없이 화를 냈다.
그렇게 그는 점점 가정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워갔다.
하지만 그는 단지 수동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동시에 굉장히 공격적이었다. 육아와 가사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으면서, 사소한 집안일에 대해선 날카롭게 지적했다. 세탁실의 섬유유연제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정기 배송으로 시켜 먹는 우유가 모자란다는 식이었다. 내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 오히려 더 화를 냈다.
한 번은 이사 과정 중 잠시 머무르던 오피스텔에서, 샤워 중이던 그가 나를 불렀다. 배수구에 물이 내려가지 않는다고 했다. 임시 거처라 나도 사정을 모르기에, “머리카락 좀 빼봐”라고 했더니, 그는 짜증을 내며 설비 문제라고 했다. 나 역시 장거리 운전으로 지친 상태였고, 그의 태도에 짜증이 나 “설비 문제를 왜 나한테 묻냐”라고 되물었다. 그 순간 그는 버럭 화를 내고 옷을 챙겨 집을 나갔다.
나는 두 아들과 함께 오피스텔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그는 그 일로 일주일 가까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이런 수동공격적 성향은 나를 점점 지치게 만들었다. 나는 더는 그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게 되었고, 결국 가정의 모든 책임을 홀로 짊어지게 되었다. 그는 철저한 방관자였다.
남편에게서 발견한 나르시시스트적 행동 특성 (수동공격형)
1. 수동적 회피와 책임 회피
가정 내 역할을 스스로 맡지 않음 (육아, 가사 전면 회피)
부탁하면 무응답이거나 짜증 섞인 반응
2. 감정적으로 일관되지 않은 반응
같은 상황에서도 때로는 조용히, 때로는 분노로 대응
예측 불가능한 태도로 상대를 위축시킴
3. 사소한 것에 집착적 지적
섬유유연제 위치, 우유 부족 등 비본질적 사안만 공격
핵심 책임은 회피하면서 지배감 확보하려는 심리
4. 수동공격적 대응
직접적 갈등보다는 무기력·무응답·회피로 압박
갈등 회피로 상대방이 ‘모든 짐’을 지게 만듦
이 글을 읽는 분 중 단 한 분이라도 저처럼 각성하여 나르시시스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