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금방 끝날 것 같았는데, 벌써 3개월이 되어간다. 이 와중에 황당하게 푸틴은 조만간 암 수술까지 받으러 간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목숨은 하찮게 여기면서 본인은 살겠다고 암 수술이라니, 이것이 바로 전쟁의 아이러니일까 아니면 인간의 벗어날 수 없는 죄성일까. 어쨌든 전쟁이 한창일 당시(지금도 전쟁 중이지만...) 우크라이나 문화유산의 파괴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자기네 나라 거장의 문화유산도 파괴하는데, 우크라이나 것은 오죽할까? 기사는 하나같이 전쟁의 참혹함과 그 속에서 신음하는 문화유산의 수난, 그리고 러시아의 야만적 반달리즘을 비판하고 있었다. 당연히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라서 전쟁으로 파괴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아름다운 문화유산 보호에 대한 촉구와 유네스코 입장 등을 연일 보도하였다. 프랑스의 전 문화부 장관이자 현 유네스코 사무총장인 오드레 아줄레 Audrey Azoulay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7개의 문화유산을 포함한 우크라이나의 문화유산을 보호에 달라고 호소하였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크라이나의 세계유산 중 가장 상징적인 건물은 수도 키이우의 성 소피아 대성당이다. 동방 정교회의 성 소피아 대성당은 다른 수도원 건물과 키예프-페체르스크 라브라와 함께 1990년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11세기에 건설되어 18세기 바로크 양식의 외관으로 개조된 성 소피아 성당에는 정교회를 상징하는 양파 모양의 첨탑, 모자이크 및 이콘이 있다. 우크라이나 지폐에도 새겨질 정도로 우크라이나를 대표하는 기념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유네스코가 평가하는 성 소피아 대성당의 진정성authenticité은 모든 건축적 요소가 원래의 재료를 사용하여 복원되었다는 점이다. 성 소피아 성당의 재건 작업은 1987년 '역사적 기념물 보호를 위한 유럽 금메달'을 수상했다.
두 번째 중요한 장소는(사실 안 중요한 곳은 없겠지만) 리비우 유적지구이다. 우크라이나 서부에 위치한 인구 70만 명의 이 도시는 1998년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중세 후기에 설립된 리비우는 중세 도시 지형을 온전히 보존한 곳으로 그곳에 살았단 다양한 민족 공동체 -모스크, 유대교 회당, 정교회, 아르메니아, 가톨릭 교회 등-의 흔적과 바로크 양식 건축물을 간직하고 있다. 유네스코가 말하는 리비우 유적지구의 진정성은 여러 지형적 특성을 유지하고 여러 번의 화재에도 불구하고 역사 도심 지구 구획을 보존했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도시 구조가 일부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그 후에 지어진 건물(우크라이나 제체시온 및 모더니즘 양식의)이 기존의 지구와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는 점에서 진정성을 높이 평가받았다.
중세 도시가 잘 보존되어있는 리비우 유적지구 @andriyko Unsplas
안타깝게도 파괴된 문화유산도 있다. 보도가 다 안 되었을 뿐이지, 일일이 따지자면 너무나 많을 것이다. 건축가와 학자, 학생으로 이루어진 우크라이나 연구팀은 지금까지 파괴된 건축물을 조사하는 중이고 팀에 속해 있는 리비우 국립 공과대학교 건축 및 디자인 연구소장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재난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도시 유산의 상당 부분을 파괴한 나치의 만행에 필적하는 것이라고 했다. 유럽 최초의 마천루로 여겨지는 13층의 타워가 있는 하르키우의 거대한 Gosprom 단지, 마찬가지로 하르키우에 있는 볼록형의 곡선이 인상적인 아르데코 양식의 철도원 문화궁전 등이 파괴된 것 중 가장 유명한 건물들이다. 이 모든 현대 건축물은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유대인이 공동으로 건설한 공동의 유산이기 때문에 건물의 파괴는 더욱 가슴 아픈 일이다.
볼록한 곡선이 인상적인 파괴되기 전의 하르키우 철도원 문화궁전 출처: wikidata
마리우폴에서는 건물의 90%가 파괴되었다고 예측되지만, 정면의 벽장식이 아조프해 지역의 금속 세공인과 농부의 임무를 그려냈던 유명한 신고전주의 양식의 드라마 극장을 포함하여 파괴되거나 심각하게 손상된 건물 22개만이 확인되었다(2022년 4월 초 기준). 어린이와 여성 등 민간인이 대피한 이 건물에서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약 300명이 사망했다.
종잇장처럼 파괴된 마리우폴 극장 PAVEL KLIMOV / REUTERS
폭격 맞기 전 극장의 모습. 출처 wikimedia commons
유네스코는 이런 러시아의 약탈 행위에 대하여 무력충돌 시 문화재 보호에 관한 1945년 헤이그 협약을 존중할 것을 촉구했다. 헤이그 협약은 전쟁으로 인한 문화재 파괴를 막기 위해 1954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체결된 협약으로, 문화재에 대한 적대행위와 문화재를 군사 목적으로 사용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또한 전시 국제법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은 협약을 준수해야 하고 위반하면 처벌할 수 있다. 분명 문화재 파괴는 국제법상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중대한 범죄 행위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이런 의문이 든다.
'전쟁 자체가 범죄 행위가 아닌가?'
현재 번역하고 있는 책이 고고학 분야라 번역에 도움을 얻고자 최근 고고학자인 강인욱 교수의 강의를 수강하였다. 강의 말미에서 강 교수님은 '모뉴먼츠 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영화로도 개봉된 모뉴먼츠 맨은 세계대전 당시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미술사학자, 건축가, 큐레이터, 복원가, 미술품 감정사 등 미술 전문가로 구성된 특별부대였다. 나치가 강탈한 문화재를 찾아내고 전쟁 지역의 문화재를 평가하는 일 등 세계대전 중 문화재를 보존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영화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 역사적 사실인지 몰랐어서 약간 충격을 받았는데, 충격을 받은 이유는 위와 비슷했다.
'애초에 전쟁을 안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사람의 목숨보다 문화재가 더 중요한 걸까?'
어쩌면 너무 순진한 질문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삶에 일어나는 나쁜 일들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으면 되는 일들이다. 그렇게 삶이 간단하면 좋겠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인생은 그리고 역사는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전쟁 앞에서 특수부대의 형태로, 또는 국제협약의 형태로 문화재를 보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특히 문화재 보존을 공부하는 나에게 있어서는 더더욱. 그런데도 자꾸만 찝찝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노트르담이 불타고 난 다음날, 하루 반 만에 1조 원 이상의 기부 약속이 이뤄졌다. LVMH와 로레알 같은 프랑스 기업뿐만 아니라 애플, 월트 디즈니 등 글로벌 기업, 그리고 전 세계 국민들의 소액 기부 행렬도 줄을 이었다. 물론 약속된 금액이 다 모인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노트르담의 화재는 화재 그 자체로 그리고 그 뒤를 이은 기부 행렬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 당시는 노란 조끼 시위가 계속해서 이어지던 때였다. 뭐 거의 매주 시위를 하긴 했지만 약간 주춤하던 시위에 불을 댕긴 것이 바로 이 기부 행렬이었다. 양극화로 인한 불평등한 사회를 바꾸자고 거리로 뛰쳐나간 노란 조끼 시위대가 '사람'이 아닌 '건물'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에 불만을 터트렸기 때문이다. 솔직히 당시에는 노란 조끼 시위로 너무 불편을 겪었기 때문에 매주 불편하게 하는 시위꾼보다는 문화유산을 더 보존해야지~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렇다고 경중을 따진 건 아니었다. 시위대의 주장도 이해가 갔고, 문화재에 쏠린 관심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트르담에 더 마음이 쏠린 이유는 물론 문화재 보존에 과도하게 치중한 나의 사랑도 그렇고 사회와 주변 문제에 관심 없던 나의 냉소주의도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와 백신 패스를 겪고 난 후 세계관이 완전히 바뀌게 되면서 문화유산에 가려 있던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화유산이 파괴된 것은 너무나도 안타깝지만, 그전에 전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됐던 걸까? 문화유산 복원할 돈으로 전쟁 난민을 돕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군인의 생명을 체스판 위에 놓인 말처럼 여기며 민간인도 폭격하고 있는 와중에 혼자 살겠다고 암 수술을 하는 사람에게 '문화재 보호에 관한 1945년 헤이그 협약'이 종이 쪼가리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아니, 오히려 협약을 받아들여 문화재를 보호한다면 그거야말로 더 기가 막힌 일이 아닐까? 우크라이나의 파괴된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나의 복잡한 마음은 코로나로, 백신으로, 백신 패스로 신음했던 사람들 앞에서 문화유산 보존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좌절하고 고뇌했던 지난겨울 bouleversé된 나의 새로운 세상이었다.
앞서 말한 우크라이나 연구팀과 프랑스 건축 및 시공자 협회(AMO : l’association Architecture et maîtres d’ouvrage)는 계속해서 소실된 건물을 조사하고 목록을 작성하고 있다. 문서가 없으면 복원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협회는 재건 전략을 수립해 발표하고 재단을 통해 재건 작업을 위한 기부금을 모으고자 한다. 이 모든 일은 우크라이나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한 목적이다. 협회장인 건축가 마르탕 뒤플랑티에 Martin Duplantier는 '파괴된 도시의 재건은 또한 삶을 다시 순환시키는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나의 전공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게 여겨졌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것을 포기할 수 없다고 깨달은 순간 내가 다시 일어날 수 있었듯이, 문화유산(또는 도시)의 복원은 남겨진 사람들의 삶을 일으켜 세울 것이다. 결국 남겨진 사람들의 삶은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에. 여기에 더해 오늘 얻은 소소한 수확이라고 한다면, 나의 전공이 세상에 의미가 있을수도 있겠다는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