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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May 09. 2022

나의 유럽문화유산의 날 답사기-프랑스 청와대, 엘리제궁

청와대 전면 개방을 앞두고

우리 목사님만 예전 설교 리메이크를 하는 게 아니었다. 나도 예전에 썼던 글들을 조금 업그레이드해서 리메이크해보려고 한다. 그냥 묻혀두기에는 아까운 주제들이 좀 있어서. 특히 청와대 전면 개방을 하루 앞두고, 프랑스의 청와대와 마찬가지인 엘리제 궁 방문기라는 오늘의 주제는 더욱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이제는 다년 체류증도 많이 발급하지만, 보통 1년씩 나오는 학생 체류증을 두고 프랑스에서의 삶은 하루살이가 아닌 1년 살이에 비유하곤 했다. '1년 잘 버텼다'라고 스스로 위로하던 나만의 연례행사가 몇 있었는데, 그건 바로 7월 14일 혁명 기념일의 에펠탑 불꽃놀이와 9월 셋째 주 주말의 유럽 문화유산의 날, 그리고 11월 첫 번째 일요일 개선문 무료 개방이었다. 이중에서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날은 단연코 유럽 문화유산의 날(Journée européenne du patrimoine)이다. 9월이 되면 여전히 어디를 갈까 설레는 마음으로 카탈로그를 뒤적이긴 했지만 프랑스 살이가 한 두 해 늘어나면서, 그냥 집 앞에 나오면 바로 보이는 에펠탑처럼 매년 맞는 유럽 문화유산의 날을 당연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방인이 언제고 떠날 수도 있는 사람이었지만 언제까지고 지속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던 그때, 익숙한 나의 삶은 전복되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프랑스는, 파리는 문화예술의 도시이다. 이제 곧 18번째 해를 맞게 될 유럽 박물관의 밤(La Nuit européenne des Musées), 10월에 열리는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피악(FIAC : Foire International de l'Art Contemporain), 마찬가지로 10월에 열리는 뉘 블랑쉬(Nuit Blanche), 6월의 음악 축제(Fête de la Musique), 뿐만 아니라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전시, 공연, 문화 행사 등... 앞서 말한 나만의 연례행사뿐만 아니라 파리에서 열리는 전체 문화예술 행사를 통틀어서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날은 '유럽 문화유산의 날'이었다.



이토록 유럽 문화유산의 날을 사랑하는 이유는 유럽연합 문화정책을 처음 배우게 되어 문화유산에 진지하게 관심을 갖게 된 '현대 유럽의 사회와 문화' 수업 덕분이다. 유럽 문화유산의 날은 바로 이 유럽연합의 문화정책을 대표하는 행사이고, 교수님이 수업 때 늘 강조하셨던 유럽연합 문화정책 수립 과정에서의 프랑스의 역할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유럽'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문화유산의 날은 사실 프랑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984년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자크 랑(Jack Lang)은 9월의 세 번째 일요일을 역사 기념물 공개의 날(Journée portes ouvertes dans les monuments historiques)로 지정하였다. 이 '개방일'은 문화를 민주화하고 프랑스를 국제적으로 홍보하는 문화부 정책의 일부였다. 프랑스에서의 시작을 계기로 1985년 10월 3일, 스페인의 그라나다에서 문화유산의 날이 탄생했다. 유럽의 건축유산 장관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2차 유럽 평의회 회의에서 자크 랑은 1984년에 프랑스에서 시작된 역사적 기념물 개방일을 다른 유럽 국가로 확대하는 방안을 제안했던 것이다.


'유럽 문화유산의 날' 로고

  






이 날이 특별한 이유는 다름 아닌 '개방성'에 있다. 평소에는 대중에 공개되지 않은 여러 유적들이 공개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소에는 가볼 수 없는 프랑스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 궁(Palais d'Elysée), 총리 관저 오뗄 드 마티뇽(Hôtel de Matignon), 상원 의사당 뤽상부르 궁(Palais du Luxembourg)과 하원 의사당 부르봉 궁(Palais Bourbon) 등에는 아침부터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는 자신의 나라의 역사와 예술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높은 관심을 보여준다.


1995년부터는 매 해마다 특별한 주제를 선정하여 자칫 매년 똑같을 수 있을 행사에 방문자들의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위기 속에서 하나가 되는 공동의 유산이라는 처음의 취지를 강조하기 위해 2021년 문화유산의 날은 '모두를 위한 문화유산(Patrimoine pour tous)'이라는 주제였고, 다가오는 2022년 유럽 문화유산의 날에는 문화유산 분야에서 가장 핫한 키워드 중 하나인 '지속 가능한 문화유산(Patrimoine durable)'이라는 주제로 열리게 된다.



2021 유럽 문화유산의 날





나는 프랑스에 도착한 때부터 매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한 곳이라도 방문하고자 노력했었다. 10곳이 넘는 곳을 방문했는데 어디를 가든지 항상 남녀노소 누구나 이 날을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날은 어린이만의 행사도 아니고, 어른들만의 행사도 아닌 프랑스 국민이면 누구나(그리고 당연히 외국인까지도) 향유할 수 있는 문화행사였다. 혼자, 또는 남편과, 아니면 친구와, 대부분 한 명 아니면 2명이서 조촐히 방문해 쓰윽 둘러보고 나오는 나와는 대조적으로 프랑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물론 혼자 방문하는 사람도 많지만) 작품 하나 앞에서 몇십 분이고 서로 이야기하며 자신들의 역사를 공부하고 전수하며 역사를 지켜나갔다. 처음 글을 쓸 당시에만 해도(2018년) 한국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프랑스의 모습을 보며 한국의 풍경이 떠올라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는데, 한국에 와서 문화유산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직접 경험하고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만큼 한국도 많이 바뀌어가고 있다(청와대 개방하 난리날 듯).


모두 다 특별한 곳이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엘리제 궁'이다. 엘리제 궁은 항상 매년 1순위로 뽑는 곳이었지만 사실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방문해 올랑드 대통령의 사진도 찍은 친구는 엘리제 궁 방문의 위험성을 미리 경고했었다. 또 새벽부터 줄을 서도 못 들어간다는 등 이런저런 카더라도 나를 위협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은 방문해야 할 것 같아 도전하였다. 황금 같은 주말 아침, 일어날 수 있는 최대한의 이른 시간에 일어나 엘리제 궁 앞에 도착했다. 아침 8시였는데, 이미 줄은 엘리제 궁을 넘어 샹젤리제를 지나 콩코르드까지 쭉 뻗어나가고 있었다. 나름 최대한 일찍 도착한 것이었는데, 역시 대통령 궁은 유럽 문화유산의 날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다.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더 이상 줄을 받지 않았고 조금만 늦게 들어왔으면 아예 들어가지도 못할 뻔했다. 학창 시절 놀이공원에서 2~3시간 줄을 선 이후로 오랜만에 줄 서기를 했었던 것 같다. 1시간, 2시간, 3시간.. 줄도 안 줄어들고 엘리제 궁도 안 보였다. 앞뒤로 꽉 막혀 있어 화장실은 물론이고 중간에 포기하고 나갈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4시간, 5시간.. 드디어 엘리제 궁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문을 들어가 보안대를 통과했지만 그 안에도 줄이 늘어서 있었다. 줄을 서기 시작한 지 장장 6시간이 지나서야 드디어 엘리제 궁에 입성하였다.


샹젤리제에 서 있는 인파. 이래서는 중도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 마스크 안 쓰고 저렇게 모여있는 사진 너무 낯설다.


드디어 문이 보인다. 저 앞이 정문인데, 저기가 끝이 아니었다.
힝 속았지? 안에 줄 또 있지롱




지금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적 명품의 본사가 있고, 프랑스에서 가장 럭셔리한 거리 중 하나인 샹젤리제 거리와 포부르 생토노레(Faubourg Saint-Honoré) 거리는 엘리제 궁이 지어진 18세기 때문 해도 드넓은 벌판이었다. 그곳에 건축가 아르망 클로드 몰레(Armand-Claude Mollet)는 에브뢰 백작(Comte d'Evreux)의 저택을 지었다. 공사는 1718년에 시작하여 1722년에 끝을 맺었다. 이것이 엘리제 궁의 첫 시작이었다. 1753년 루이 15세는 자신의 애첩인 마담 퐁파두르에게 선물하기 위해 이 저택을 사들인다. 그녀의 흔적은 살롱 퐁파두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엘리제 궁에 남아 있다. 그 후 루이 16세, 그의 사촌인 부르봉 공작부인(Duchesse de Bourbon)을 거친 엘리제 궁은 다른 귀족 저택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혁명 때 인쇄소, 망명 귀족으로부터 빼앗은 가구를 보관하는 창고 등으로 사용되는 수모를 겪었다. 1858년이 되어서야 공화국의 대통령 관저로 국민의회의 승인을 받은 엘리제 궁은 대통령으로 선출된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Louis Napoléon Bonaparte)를 맞았다. 나폴레옹 3세가 되어 제정을 시작한 그가 튈르리 궁으로 거처를 옮기긴 했지만 이후 프랑스 공화국이 다시 들어섰고 1873년 파트리스 드 마크 마옹(Patrice de Mac Mahon) 장군이 대통령에 선출된 이후 지금까지 엘리제 궁은 공식적인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며 프랑스 공화국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18세기 중엽 엘리제 궁의 정원 De Agostini Editorial - Getty


엘리제 궁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가장 뛰어난 고전 양식 건축 중 하나이다. 쿠르 도뇌르 (cours d’honneur : 서양의 궁전이나 저택에 있어서 건물이나 안뜰 중 가장 격식이 높은 것. 통상 쿠르 드 로지와 정문 사이에 있다 - 네이버 백과사전 미술대사전(용어편))와 정원의 한 축에 자리 잡고 있는 현관, 이중으로 된 코르 드 로지 (corps de logis : 서양의 저택(邱毛)건축에 있어서, 중심이 되는 건물 또는 건물의 부분. 본체라고도 함. 본체에 연속되어 있지만 이보다 낮거나, 혹은 그와 같은 높이라도 그 끝부분이 본체와 직교(直交)하는 종속적인 위치에 놓인 건물의 부분, 즉 익옥(翼屋, 좌우팔방으로 뻗은 집, wing[영], aile[프], Flugel[독])과 구별할 때 쓰인다 - 네이버 백과사전 미술대사전(용어편)), 정원을 면하고 있는 그랜드 살롱을 중간에 공유하면서 메인 건물의 1층에 위치한 대접견실 등이 그것이다.


엘리제 궁 항공샷. 현관과 쿠르 도뇌르, 정원이 한 축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Patrick Durand/Sygma via Getty Images



엘리제 궁의 메인은 단연 실제 대통령이 업무를 보는 방인 살롱 도레 (Salon doré)일 것이다. 원래 마담 퐁파두르의 대형 살롱이자 공원이 내려다 보이는 건물 중앙에 위치한 이곳에 나폴레옹 3세 부인인 외제니 황후를 위해 1861년 오비드 사브뢰(Obid Savreux)가 조각을, 장 루이 고동 (Jean-Louis Godon)이 그림을 장식했다. 그때 당시의 장식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 1764년 고블랭에서 만든 태피스트리와 루이 14세 때 사본느리에서 만든 카펫과 더불어 천장에는 무려 크리스털과 금박을 입힌 청동으로 제작된 56개의 초가 빛나는 나폴레옹 3세의 샹들리에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제2제정 시절에는 외제니 황후가 침실로 사용했다.



화려한 살롱 도레. 나도 이런 데서 일하고 싶다. 그때는 올랑드 방이었는데 마크롱 방. 또 마크롱 방...





6시간의 오랜 기다림은 단 1시간 만에 막이 내렸다. 결국 봤다는 성취감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허무하기도 했다. 건축유산을 전공했지만 프랑스의 궁전이나 옛 귀족 저택을 방문하면 사실 비슷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한국에서 유럽에 막 왔을 때에는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지지만 파리에 있다 보면 완전히 다른 양식이나 이국적인 건물을 만나기 전까지는 아무 감흥이 없을 때도 있다. 그렇다면 건축물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일까? 왜 꼭 그 건물을 방문해야 할까? 특히, 그림과는 해외 전시가 불가능한 건축이라는 특성상 우리는 많은 돈을 들여, 금쪽같은 휴가를 쓰며 해외에 건축 유산을 보러 간다. 그 이유는 바로 건축물 속에 숨겨진 이야기 때문이다. 이곳이 프랑스 공화국의 대통령이 살고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그곳이 프랑스 상, 하원 의사당으로 사용되는 건물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건축물이 현재의 기능을 하기까지 건축가에서부터 첫 소유주, 이후 건물을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두 그곳에 담겨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긴 기다림을 마다하지 않는다. 거기에 누구나 역사와 문화예술을 즐길 권리가 있다고 여기며 마땅히 문화유산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자처하는 국가의 신념과 누구보다 자신의 역사와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지키고자 하는 국민들까지. 프랑스의 유럽 문화유산의 날이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P.S.

여기까지가 파리에서의 감성이었고, 지금은 어떨까? 사실 그랬다. 유럽 문화유산의 날이 당연해졌던 것처럼 나의 발걸음을 프랑스로 향하게 한 파리의 건축과 도시 풍경은 어느 순간 너무나 당연한 파리의 일상이 되었다. 어딜 가도 비슷했고 별 감흥이 없었던 때도 있었고 의무감에 갔던 적도 많았다. 심지어 가끔은 지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상이 단절된 지금의 내가 무기력하게 누워만 있던 그때의 나를 본다면 이렇게 소리지를 것이다. '너 당장 일어나! 일어나서 밖에 나가!' 특히 코로나로 일상의 중요함을 뼈저리게 깨달은 이때, 청와대 전면 개방을 맞아 엘리제 궁을 떠올리며 일상의 감사를 회복해본다. 어디에 있든 감사하지만, 그래도 내일 청와대 관람 당첨 소식이 들려왔으면~




참고자료

http://www.elysee.fr/

https://journeesdupatrimoine.culture.gouv.fr/

Le Palais de l’Elysée, Collection Prestige, 2013

Georges Poisson, Histoire de l’architecture à Paris, Paris,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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