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타워'가 보이는 집에 살고 있는 유능한 장난감 기획자 타카리코. 그녀는 짝사랑하는 상대의 집을 보기 위해 매일 2배 이상 걸리는 수상 버스를 타고 출근할 정도로 열성적이다. 하지만 좀처럼 그에게 마음을 밝히지 못하는 주인공... 짝남의 집에서 보이는 '스카이트리'를 사수하는 수상한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짝남의 주변에서는 계속해서 의문스러운 일이 일어나고, 그녀는 몰래 사건을 해결하면서 그의 주변을 맴돌 뿐이다. 그러면서 타카라코는 자신의 본심을 알아차리기 시작했고 결국 그들은 런던 템즈강변에서 재회하게 되는데...
짝사랑하는 여성의 섬세한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한 유즈키 아사코의 <짝사랑은 시계태엽처럼>은 '스미다 강'을 중심으로 한 도쿄를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스미다 강...' 의도치 않았지만 지난 1주일 동안 '스미다 강'은 나에게 굉장히 친근한 장소가 되었다. 유즈키 아사코의 책에서, 그리고 서울역사박물관의 국제교류전 '에도시대 스미다 강의 도시 풍경'에서.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점은 책에서 만난 '스미다 강'과 박물관에서 만난 '스미다 강'은 4세기가 넘는 시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다(아무리 최근이라 해도 100여 년의 시차).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전시회에서 만난 '스미다 강'은 도쿄라는 이름을 갖기 이전인 1603년부터 1867년까지의 '에도' 시대에 바라본 '스미다 강'이기 때문이다.
'에도시대 스미다 강의 도시 풍경'은 2019년 에도도쿄박물관에서 개최한 서울 관련 전시에 대한 답방 전시로, 17세기에서 19세기 말까지 일본의 옛 수도의 변천 과정과 에도시대 도시 풍속과 생활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이다. 생각보다 전시품이 굉장히 알찼는데, 그중에서도 눈길을 사로잡은 건 '호쿠사이'의 우키요에. 파리에서 국립 기메 동양 박물관(Musée national des arts artistiques Guimet)에서 열린 호쿠사이 특별전을 관람한 적이 있는데 굳이 특별전을 언급하지 않아도 유럽에서의 우키요에 사랑과 서양 미술사에 끼친 우키요에의 영향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호쿠사이를 위시한 일본 우키요에 작품은 옛 도쿄의 시간을 그림 속에 남기며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당시 에도시대의 풍경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제일 좋았던 근대화된 도시 도쿄의 풍경. 빨강과 보라색 물감은 서양에서 들여온 것이다. 이때는 도쿄지만 여전히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
호쿠사이가 그린 교카 그림책. 스미다 강을 배경으로 한 에도의 사계절과 풍속이 담겨 있다.
제작할 때부터 구멍을 뚫어 뒤에 빛이 비치게 만든 그림. 이름을 까먹었다ㅠ 실제로 보면 굉장히 아름답다.
다시 페이지를 넘겨 <짝사랑은 시계태엽처럼>의 마지막 장으로. 마음을 정리한 타카라코는 런던의 템스 강변을 걷고 있다. 한쪽에는 런던아이, 반대편에는 빅벤이 서 있다. 템스 강변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의 손에는 타카라코가 기획한 장난감이 들려 있었다. 유럽에서 자신이 담당한 장난감을 만나다니... 싱숭생숭했던 타카라코의 가슴속에 뜨거운 온기가 퍼져나갔다.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다르지 않다. 일본이나 런던이나, 분명 다르지 않을 것이다. 스미다 강이나 템스 강이나. 하나야시키나 복스홀이나, 스카이트리나 빅벤이나, 오오쿠로의 텐동이나 영국의 피시앤칩스나. 유즈키 아사코, <짝사랑은 시계태엽처럼>, 소미미디어, 2017, 269-270쪽.
주인공은 눈을 감고 강의 냄새를 맡으면 스미다 강과 템스 강은 무척 비슷한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장난감으로 인해 모든 중압감에서 해방되어 마음을 자유롭게 날갯짓할 수 있었다. 장난감은 어떤 시대에나, 어떤 장소에나, 사람이 존재하는 이상 필요하고 그렇다면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내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짝사랑은 이제 잊고 런던에서 새롭게 살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마음을 정리하던 그녀를 위로하던 것이 바로 스미다 강과 비슷한 런던의, 템즈 강의 냄새 그리고 풍경이었다.
하지만, 과연 스미다 강과 템즈 강은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스미다 강의 도시 풍경과 템즈 강의 도시 풍경은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에도 시대, 아니 최소한 근대 도쿄 시대의 스미다 강변과 '스카이트리'와 '도쿄타워'가 세워진 21세기 도쿄의 스미다 강변의 풍경은 천차만별인데,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가 활약하던 런던의 템즈 강변과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템즈 강변은 같다고 할 수 있을까? 런던은 모르겠지만(아마 맞을 것이다) 적어도 파리는 그렇다고 자신할 수 있다.
생루이 섬에서 퐁뇌프까지, 루브르 박물관에서 에펠탑까지, 또는 콩코르드 광장에서 그랑 팔레와 프티 팔레까지의 도시 풍경은 센 강에서 펼쳐진 파리의 변천사를 볼 수 있게 해 준다. 파리의 주요 기념물 중 상당수는 센 강 유역 또는 강이 내려다보는 곳에 세워졌다. 그중에서도 노트르담 대성당과 생트 샤펠 성당은 중세 건축의 걸작품이다. 퐁네프는 프랑스 르네상스를, 마레와 생루이 섬은 17세기와 18세기 파리 도시 계획의 역사를 증거 한다. 또한 루브르 궁(현 루브르 박물관), 앵발리드, 에콜 밀리테르(군사학교) 등은 프랑스 고전주의를 보여주며, 철과 금속으로 만들어진 파리 건축의 아이콘 에펠탑으로 대표되는 19세기와 20세기 파리 만국 박람회 때 건설되어 보존된 건축물이 센 강변에 늘어서 있다. 바로 이 진정성을 인정받아 파리의 센 강변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파리의 센 강변이야말로, 중세 시대부터 현재까지 같은 강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이다. 그 진정성을 지키기 위해 정부는 직접, 또는 공공 기관을 통해 센 강 유역의 부두, 대부분의 기념물 및 관련 공간을 소유하며 센 강은 유산법, 도시계획법, 환경법 등 최고 수준의 법적 보호 속에 국가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다.
실제로 노트르담 성당 복원 계획에서 이 파리 센 강변의 진정성은 복원 시점을 결정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했다. 복원 시점을 화재 바로 직전의 형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한 게 바로 이 가치였기 때문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복원 심의를 결정한 CNPA(Commission nationale du patrimoine et de l'architecture)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비올레르뒥이 설계한 첨탑이 달린 노트르담 대성당이 포함된 파리 센 강변의 풍경이며, 1862년에 역사적 기념물(Monuments historiques)로 지정되었던 노트르담 대성당의 그 모습에 역시 1859년에 완성된 비올레르뒥의 첨탑이 포함되어 있음을 고려하였다.
시간이 멈춘 듯한 파리 센 강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구역. 프랑스의 사례를 보면, 진짜 별 걸 다 세계유산/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한다는 걸 알 수가 있다. 한국도 세계유산을 너무 좋아해~
파리보다는 아니겠지만 런던(고층 빌딩이 더 많음)의 경관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나 런던이나, 스미다 강이나 템스 강이나 분명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유즈키 아사코 책 속 주인공의 독백은 새로운 삶을 시작해보겠다는 그녀의 다짐을 북돋아준다. 하지만 아쉽게도 문화유산의 풍경에서 보자면, 일본과 런던이나, 스미다 강이나 템스 강은 분명히 다르다. 좀 더 시야를 넓혀, 급격한 근대화를 통해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이뤄낸 아시아와 유럽의 문화유산 보존 풍경은 분명 같지 않다. 어쩔 수 없는 요인이 작용한 면이 있겠지만(ex. 한국전쟁) 경제와 맞바꾼 역사는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피어나는 씁쓸함은 어쩔 수 없다. 물론 역사라는 이름 하에 모든 걸 다 남길 수는 없다. 결국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왜 보존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