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의 거리를 넘어, 백화점은 여전히 욕망의 풍경이다
3년 전, 출장길에 들른 대전의 한 백화점에서 나는 뜻밖에 파리를 떠올렸다. 매장의 배치와 인테리어가 갤러리 라파예트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그 경험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후 서울의 백화점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흰 곡선의 구조와 탁 트인 천장의 공간감은 파리 봉 마르쉐를 떠올리게 했고, 그 순간 오래된 기억이 겹쳐졌다. 여행길이 아니라 일상의 한국 도시 한복판에서 파리를 마주할 줄이야. 그 경험들 덕분에 오랫동안 잊고 있던 한 권의 책, 에밀 졸라의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이 소설의 무대는 19세기 파리 제3공화국 시절이다. 졸라가 모델로 삼은 것은 세계 최초의 근대적 백화점, 봉 마르쉐였다. 봉 마르쉐의 창업자 부시코 부부는 가격을 흥정하는 대신 정찰제를 도입했고, 쇼윈도를 통해 누구나 가격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예전의 상점에서 주인은 가능한 한 ‘비싸게’ 파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낮은 마진을 유지하더라도 꾸준한 판매량이 이익을 보장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이 변화는 단순히 상업의 혁신을 넘어 새로운 사회적 습관을 만들어냈다.
소설 속 백화점 내부는 그야말로 작은 도시였다. 1층 입구에는 각종 세일 품목이 진열되어 있었고, 장갑이나 실크, 면직물, 모직물 매장이 갤러리마다 질서 있게 늘어서 있었다. 2층에는 기성복과 란제리, 레이스와 숄이 자리 잡았으며, 3층에는 침구와 카펫, 크기가 커서 다루기 힘든 상품들이 모여 있었다. 고객들은 물건을 사지 않아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고, 흥정할 필요 없이 가격표를 보고 선택할 수 있었다. 오늘날 대형 쇼핑몰의 풍경이 이미 19세기 파리에서 시작된 셈이다.
또한 봉 마르쉐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통신판매를 도입했다. 파리 외곽이나 지방, 심지어 해외에서도 주문 편지가 도착했고, 전담 부서가 그것을 분류하고 포장해 발송했다. 직원 수는 해마다 늘어났고, 매일같이 산더미 같은 주문이 쌓여 백화점의 창고와 포장실을 가득 메웠다. 지금 우리가 모바일로 ‘한 번의 클릭’으로 물건을 주문하는 풍경은, 사실 19세기 후반 우편 주문의 소란스러운 풍경에서 이미 예고되고 있었다.
판매 방식뿐 아니라 직원 관리에서도 새로운 실험이 이어졌다. 판매원들에게는 판매 실적에 따른 수당이 지급되었고, 이는 곧 치열한 경쟁을 낳았다. 그러나 동시에 백화점은 직원 복지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비수기에는 해고 대신 유급 휴가를 주었고, 퇴직자를 위한 연금 제도가 마련되었다. 도서관과 음악회, 체육 강좌와 어학 수업이 열렸으며, 심지어 백화점 내부에는 의료 서비스와 목욕탕, 구내식당까지 갖춰졌다. 한 사람의 일상이 거의 백화점 안에서만 해결될 수 있을 정도였다. 소비자가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면, 직원들 또한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근대적 노동 환경을 체험한 것이다.
하지만 졸라가 강조한 본질은 백화점이 단순히 편리함과 화려함의 상징이라는 점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백화점이 어떻게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하고, 그 욕망이 어떻게 삶을 지배하는지를 예리하게 포착했다. 쇼윈도의 화려한 장식과 끊임없는 세일은 사람들을 유혹했고, 특히 절약과 실용으로 시작한 여성들은 점차 허영심의 덫에 걸려들었다. 결국 소비는 가정을 흔들고, 일상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힘이 되었다. 졸라에게 백화점은 단순한 상업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약점을 집요하게 겨냥하는 거대한 장치였다.
오늘날 한국의 백화점도 단순한 쇼핑 공간을 넘어선 지 오래다. 미술 전시와 북토크, 공연이 열리고, K-팝 스타와 협업한 한정판 굿즈가 고객을 불러 모은다. 과거 파리의 패션이 전 세계의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한국의 뷰티와 패션, 음악이 세계적 유행을 만들어낸다. 동시에 소비의 무대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확장되었다. 휴대폰 화면을 스치며 가격을 확인하고, 보이지 않는 데이터와 코드가 새로운 쇼윈도가 되어 우리의 욕망을 자극한다.
결국 졸라가 그려낸 풍경은 150년이 지난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소비는 인간의 불안을 달래고, 동시에 새로운 결핍을 만들어내는 아이러니한 힘을 갖고 있다. 백화점은 신앙을 잃은 시대의 새로운 성당이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 아름다움과 물건을 숭배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것은 단지 19세기 여성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오늘날의 우리 역시 여전히 백화점에서, 또 새로운 욕망의 장소인 온라인 쇼핑몰과 플랫폼 앞에서 비슷한 태도를 취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무엇으로 우리는 이 공허를 채울 수 있을까. 졸라는 답을 내리지 않았다. 다만 인간은 언제나 무언가를 숭배하며 살아왔다는 사실만은 보여주었다. 그 숭배의 대상은 신에서 물건으로, 교회에서 백화점으로, 이제는 플랫폼과 알고리즘으로 옮겨왔을 뿐이다.
150년 전 파리와 21세기 한국은 서로 다른 시대에 놓여 있지만, 결국 같은 진실을 비춘다. 화려한 쇼윈도와 반짝이는 화면 너머에서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를 갈망하고, 또다시 채워 넣는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은 그래서 단순한 고전이 아니라, 오늘 우리를 비추는 또 하나의 거울이다.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결국, 무엇이 우리의 영혼을 진정으로 채워줄 수 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