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복원하고 모두와 나누는 문화의 힘
덕수궁 석조전 음악회에 당첨되었을 때, 나는 오래 잊고 있던 설렘을 되찾았다. 코로나 시기라 40석으로 제한된 자리였고, 티켓은 1분 만에 매진됐다. 사회자가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선택받은 분들”이라고 농담처럼 말했는데, 이후로는 그런 행운을 거머쥔 적이 없으니 그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석조전 중앙홀은 1918년 고종의 탄신을 기념해 피아노가 울려 퍼졌던 자리였다. 백여 년을 건너 다시 음악이 흐르는 순간, 과거와 현재가 겹쳐 들려오는 듯했다. 황제의 전유물이던 공간이 시민의 무대가 되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인상 깊었다. 마침 그날은 ‘문화가 있는 날’이었다. 입장료 천 원조차 없는 날, 누구나 고궁 안으로 들어와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 궁궐 한복판에 울린 선율은 내가 프랑스에서 보았던 음악과 문화 민주주의의 풍경을 겹쳐 떠올리게 했다.
프랑스에서는 오래전부터 ‘문화 민주주의’가 정책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장 미셸 지앙은 저서 <문화는 정치다>의 도입부에서 “문화 정치는 프랑스의 발명품이다”라고 단언한다. 누구나 문화예술에 접근할 권리가 있다는 이 신념은 프랑스 문화정책의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1984년 자크 랑 문화부 장관이 제정한 ‘역사적 기념물 개방일’은 이듬해 ‘유럽 문화유산의 날’로 확장되었고, 매달 첫째 주 일요일 무료 입장, ‘박물관의 밤’, ‘뉘 블랑쉬’ 등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문화가 있는 날’ 역시 그 궤적 위에 있다.
프랑스가 문화유산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는 2019년 화재 이후의 노트르담이다. 프랑스에 가기 전까지 프랑스에 가기 전까지 음악 유학이라면 독일이나 이탈리아만 떠올렸다. 하지만 막상 파리에 가보니 국립 고등 음악원(CNSMDP)에 진학한 후배들이 적지 않았다. 생상스, 드뷔시, 라벨, 포레로 이어지는 작곡가들의 계보, 그리고 색소폰을 만든 아돌프 삭스(벨기에 출신이지만 프랑스에서 활동한)까지. 미술보다 덜 드러나 있을 뿐, 프랑스의 음악적 DNA는 분명 존재했다.
그 DNA는 오늘날에도 이어진다. 2019년 화재로 지붕과 첨탑이 무너진 노트르담 성당은 단순한 건축물 복원을 넘어 음향까지 되살리려 했다. 목재와 석재의 균형 속에서 형성되던 고유의 울림을 되찾기 위해 학자와 과학자들이 ‘소리의 고고학’을 연구했다. 파리 국립 음악원과 소르본 대학, CNRS 연구진이 함께 참여해 성당의 음향을 디지털 모델로 재현했고, 시대별로 달라졌던 울림을 시뮬레이션했다.
그리고 2024년 12월, 노트르담은 다시 문을 열었다. 단순히 첨탑과 지붕만이 아니라, 수 세기 동안 쌓여온 울림의 기억까지 복원한 채로. “과거에도 귀가 있다(Le passé a des oreilles).” 연구팀의 말처럼, 복원은 단순한 재건이 아니라 경험과 기억을 돌려주는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덕수궁의 가을밤 역시 비슷한 울림을 주었다. 고종의 생신을 기념하던 음악이 시민의 귀에 다시 닿았던 순간, 그것은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기억의 계승이었다. 한국의 문화 정책, 프랑스의 문화 민주주의, 그리고 노트르담의 재개관이 하나로 겹쳐진다.
문화는 건물이나 제도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공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소리를 어떻게 되살리며, 무엇을 함께 나누려 하는가에 달려 있다. 덕수궁의 선율과 노트르담의 울림은 그 사실을 또렷하게 일깨워주었다. 닫힌 문을 열고, 잃어버린 소리를 되찾는 일. 그것이야말로 문화 민주주의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