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24일(12일째)-맨해튼, 브루클린
나와 아내는 6시 반에 일어나 고대하던 센트럴 파크 조깅을 나섰다. 센트럴 파크는 도심 공원의 대명사로 맨해튼 안에 있는 직사각형 형태의 거대한 공원이다. 도시가 개발되고 발전을 거듭하면서 시민들에게 영국 런던의 하이드 파크처럼 휴식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원으로 또 하나의 상징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해가 뜨기 시작한 뉴욕의 거리를 나서니 한겨울이 무색하게 춥지가 않다. 손이랑 귀가 전혀 시리지 않았다. 신호를 봐가며 20분 정도 달리니 센트럴 파크가 눈앞에 나타났다. 빌딩 숲 속 푸른 잔디와 숲길이 한적하기 그지없었다. 모여드는 러너들 사이에서 10분 정도 뛰어보니 땀도 나고 뉴욕이란 도시 안에 진정 휴식을 한 것 같았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 식당이 넓지 않아 사람들로 붐비기 때문에 방에 가져다가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조식으로 여러 가지 챙겨서 방으로 가져온 다음에 다들 나눠먹었다. 준비를 끝내고 내려와서 커피를 받고 있는데 호텔 서버가 나의 패션을 쿨하다고 칭찬했다. 전에 셰이크셱 버거에서 나의 모자, 워싱턴 초상화 박물관에서 나의 재킷 칭찬을 받았는데 모두 흑인들이라 이곳의 흑인들은 나의 패션이 마음에 드는 건지 칭찬 같은 표현은 스스럼없이 했다.
여러 의미로 유명한 뉴욕의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 남쪽으로 내려가 원 월드 트레이드센터 쪽으로 갔다. 먼저 911 메모리얼에 갔다. 2001년 9월 11일 당시 쌍둥이 빌딩이라고 불리는 세계무역센터를 강타한 테러에 완전히 이 주변이 붕괴되어 그때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공간이자 그 당시 피해를 기억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그때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기에 정확히 뉴스와 신문에서 봤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차분하면서도 희생된 사람들 하나하나의 삶을 조망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을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고 피해받았을 당시 잔해들도 남겨 놓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아이는 어떤 일인지 잘 이해하지 못해서 옛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있는 거대한 폭포 기념물 앞에서 911 테러에 대해 설명해줬다. 이 안에서는 세계무역센터 기둥의 잔해와 희생된 사람들 사진 등을 숙연하게 둘러봤다. 희생된 사람들 전부에 대해 그 삶을 기록해 놓은 것이 가장 인상 깊었다.
다음은 원 월드 트레이드센터 전망대로 가서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시키기로 했다. 102층까지 1분 만에 도착했는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뉴욕의 시대별 도시 발달에 관한 영상을 보았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뉴욕의 초기부터 지금까지의 도시 모습이 재현되는데 꽤나 흥미로웠다. 영상이 끝나고 어두운 스크린이 올라가면서 맨해튼 다리와 뉴욕의 마천루가 한눈에 펼쳐졌다. 다들 절로 탄성이 나는 광경이었다. 100층 전망대로 내려가 로어 맨해튼의 360도 전망을 감상했다. 멀리 브루클린 브리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자유의 여신상까지 걸어가는 곳마다 뉴욕의 랜드마크가 있었다. 내려가기 아쉬운 풍경이었지만 오후 1시 크루즈를 타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왔다. 나는 이 풍경을 간직하기 위해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좀 더 아래 지역으로 내려가 볼링그린 파크로 갔다.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인 이곳이 수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바로 월 스트리트의 상징인 돌진하는 황소상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황소상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렸다. 자본이 가지는 위력은 보이지 않게 일군의 관광객들을 줄 서게 만들었다. 우리는 굳이 줄 서서까지 사진을 찍고 싶지는 않아서 옆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뉴욕 증권거래소를 지나 월 스트리트를 걸었다. 항상 주식 시장, 주식에 관련된 문제가 나오면 뉴스에 단골로 등장하는 곳을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현대 자본이 가지는 보이지 않는 금융 질서와 이로 인해 날로 심해지는 빈부격차에 대해 변화의 필요성을 생각하면 동경하는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월 스트리트를 걸어서 맨해튼 섬과 리버티 섬 사이를 도는 페리를 타기 위해 피어 15호를 향해갔다. 빌딩 숲을 벗어나 이스트 강변이 주는 또 다른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시간대가 아시아 사람들이 많이 신청한 것인지 대부분 한국, 중국, 일본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1층이든 2층이든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었다. 청명한 하늘 아래 브루클린 브리지를 지나 로우 맨해튼이 보이고 자유의 여신상을 향해 갔다. 자유의 여신상이 가까워지자 사진을 많이 찍었고 찍는 사진마다 작품이 되었다. 자유의 여신상은 뉴욕의 상징이자 미국의 상징으로 빼놓을 수 없는 조각상이다. 프랑스가 1886년에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선물한 것으로, 에펠탑으로 유명한 구스타브 에펠이 철골 구조 설계와 분해, 조립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소위 아메리카 드림을 품고 미국으로 넘어오는 이민자들이 가장 처음 보게 되는 상징으로 유명한데 이민자로 세워진 나라답게 큰 상징이 있는 조각상으로 현재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리버티 섬을 가지 않고 이렇게 유람선으로 둘러보는 것이 한눈에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고 감상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배에서 나오는 뉴욕 관련 노래와 이 풍경이 너무 잘 어우러졌다. 브루클린 브리지를 한 번 돌아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뉴욕을 품 안에 전부 담은 즐거운 50분이었다. 배에서 내려 출출해진 배를 채우러 뉴욕 피자가게에 가서 페퍼로니를 비롯한 조각피자 3종류로 간단하게 허기를 달랬다. 뉴욕에서 베이글, 스테이크와 함께 꼭 먹고 싶은 음식이 피자였는데 이탈리아계 이민자가 많은 뉴욕에서 발전된 이제는 뉴욕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 큼지막한 피자를 입안에 넣고 사진들을 감상했다.
우리는 기운을 충전하고 브루클린 브리지를 향해 갔다. 밑에는 자동차가 지나고 위에는 다리를 건너는 도보가 있었는데 날이 좋아서 그런지 관광객들이 바글바글했다. 맨해튼에서 브루클린으로 이어지는 대교로 1883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맨해튼 브리지와 더불어 뉴욕을 대표하는 다리로 개통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로 알려졌다. 1883년이면 우리나라는 이때 강화도 조약 이후 개항이 한참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수많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 등장하는 단골 소재인데 지금은 뉴욕 교통량이 많아져 교통 체증을 유발하기도 한다는데 이제는 뉴욕이 가지고 있는 유적 중 하나로 대접받고 있는 다리였다. 어머니는 다리를 지나가면서 여행 기념으로 모으고 있는 마그넷을 2개 구입했다.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사람들이 계속 오고 가서 겨우 멋진 사진을 몇 장 남겼다.
브루클린 브리지를 건너고 덤보로 넘어갔다. 덤보에는 브루클린을 상징하는 유명한 사진 명소가 있다. 그곳에 갔을 때 거리에 사람들이 다들 사진 찍고 있길래 처음에는 뭔가 했는데 우리가 찾던 장소였다. 우리도 그 대열에 합류해 멋진 사진들을 남겼다. 그리고 근처 카페를 가려고 했는데 다들 빈자리가 없어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 미드타운으로 돌아갔다. 아내가 저녁 식사로 뉴욕 스테이크 레스토랑을 예약해 놓았는데 그쪽으로 간 다음 근처에 있는 카페에 앉아서 커피와 핫초코, 초콜릿 크레페로 에너지를 충전했다. 맨해튼과 브루클린의 엄청난 광경을 모두 담느라 바쁘던 머리와 발을 식혔다.
저녁은 어제 미리 예약해 둔 스테이크 전문점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확인해보니 아내가 실제로 예약을 한 곳은 우리가 있던 카페에서 2km가 떨어진 레스토랑이었다. 이름이 같아서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하는 수 없이 예정에 없던 2km를 걷게 생겼길래 다들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아서 당일 예약이 될까 싶었지만 서둘러 식당 예약을 바꾸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뉴욕 스트립스테이크, 드라이 숙성 립아이 스테이크, 샐러드, 프렌치프라이를 주문했다. 특급 레스토랑답게 웨이터가 물도 계속 챙겨주고 매니저가 와서는 고기와 소스 설명도 해주면서 스테이크 그릇을 미리 데워서 각각 챙겨주는 등 특급 서비스가 있었다. 고기도 부드럽고 맛있었다. 하지만 아내의 표현으로는 내가 집에서 구워주는 크고 부드러운 고기에 길들여져여서 일까 천상의 맛은 아니라는 평을 했다. 그래도 부드러운 고기를 칼질해가면서 아이도 잘 먹고 다들 맛있게 먹었는데 사이드로 시킨 감자튀김이 너무 기름지고 느끼해서 먹을 수가 없었다. 우리를 살펴주는 종업원을 불러 얘기하니 감자튀김을 취소해 줬다. 그렇게 분위기 있는 칼질을 마치고 팁까지 해서 다소 비싼 가격을 내고 나왔다. 프랑스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던 아주 럭셔리한 저녁이었다.
이제 호텔을 향해 깜깜한 밤거리를 걸어갔다. 중간에 플랫 아이언 빌딩과 아이가 좋아하는 레고 샵을 들러서 고대하던 레고 장난감을 샀다. 어머니가 꼭 아이에게 사주고 싶다고 하셔서 아이도 냉큼 가서 신중하면서도 열심히 골라 샀다. 여행 다니고 있어서 큰 것은 사지 말자고 했더니 자기 품 안에 들어갈 작은 사이즈로 골랐다. 가는 길에 메이시스 백화점 본점이 있어서 호기심에 들어가 봤는데 역사가 오래된 백화점이라 그런지 서울의 오래된 백화점이 연상되는 내부였다. 오밀조밀하게 매장들이 있었는데 인상 깊었던 것은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회사 직원들 이름을 벽면에 박아놓은 추모판이었다. 나와서는 유명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지나치며 호텔로 가는데 아내의 음주를 위해 호텔 근처 편의점에 들렸다가 한국 컵라면들을 팔길래 그것까지 사고 오늘 밤에 뜻하지 않은 라면 파티를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