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25일(13일째)-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오늘은 지금까지 화창했던 날과는 다르게 뉴욕에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날이었다. 8시에 일어나 창문을 걷어보니 축축한 뉴욕이 펼쳐졌다. 여행 기간 내내 날씨가 화창하고 비도 안 와서 최고의 여행 날씨였는데 여행 기간 안에 딱 오늘 비가 온다고 하니 내가 고대하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 어머니와 나는 1층 식당에서 먹을 것을 챙겨서 조식을 가지고 방으로 돌아왔다. 아이와 아내는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도란도란 침대 위에서 가져온 음식을 먹고 정리를 한 뒤 비에 젖은 거리와는 다르게 산뜻한 기분으로 나섰다.
비 오는 뉴욕 거리로 나서서 예약해 둔 우버 택시를 탔다. 덕분에 비를 안 맞고 센트럴 파크를 가로질러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도착했다. 호텔이 센트럴 파크와 멀지 않은 거리에 있어서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거대한 외관이 우리를 맞이 했는데 하나같이 영국박물관, 런던 내셔널 갤러리,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같은 곳들은 거대한 그리스 신전처럼 굵직한 기둥으로 멋들어지게 건축이 되어 있어서 이곳에 훌륭한 작품들이 잠들어 있기에 부족함은 없어 보였다. 다만 대다수가 자국의 소유물이 처음부터 아니었다는 점만 빼고 말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메트(The Met)라고 줄여서 말하기도 하는데 대개 기증을 통해서 소장품이 증가되었고 후원금 등으로 수집된 작품들이 있어서 총 300만 점이 넘는다고 한다. 1866년 7월 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프랑스 파리에서 미술관 설립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하고 1870년 뉴욕 시민들의 노력으로 개장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센트럴 파크로 이전한 다음 확장을 거듭하여 지금과 같은 거대한 규모로 세계 최대급 미술관의 위상을 가지게 되었다. 국립으로 지어진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작품들이 모여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미술관답게 수많은 미술 작품들이 있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박물관이라고도 불리는 명성처럼 유적, 유물들도 아주 충실했다. 그리스, 로마 미술과 중세 유럽은 물론이고 아프리카, 아즈텍, 잉카, 이집트, 서아시아, 중국, 인도, 일본, 우리나라, 동남아 등 아시아 관련 유물들이 작품도 어머어마하게 소장되어 있었다. 처음 보는 아시아 문화재가 워낙 많아서 어떻게 이 모든 것들이 관련 없는 뉴욕으로 흘러들었는지 유물들의 이동에 대해 각각의 사연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전 10시 반이었는데 로비는 몰려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다들 우리와 같은 심정이었는지 주말인 데다가 비까지 내려서 이리 왔나 싶었다. 미리 끊어둔 표를 바꿔서 입장 스티커를 모두 붙이고 먼저 보이는 이집트관으로 들어갔다. 나는 샅샅이 둘러보고 어머니와 아내는 중간, 아이는 너무 관심이 없었다. 처음 보는 유물들에 정신이 뺏겨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상형문자, 미라, 당시 공예품들도 이색적이었지만 당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지배로 인한 영향인지 그리스인 미라가 인상 깊었다. 아이는 아내에게 "엄마, 사람들은 왜 돌을 보는 것을 재미있어해요?" 하고 물었다. 결국 어머니와 나는 같이 다니면서 보고 아내랑 아이는 둘이서 남았다. 이집트관 관람이 끝나고 우리는 박물관 기념품 매장 장난감 코너에서 만나 잠시 머물렀다. 아이는 여기가 제일 재미있었다고 했다. 아내가 아이를 돌보느라 고생을 했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선물 하나 한다고 해서 뭐가 제일 마음에 드는지 물어봤을 때 아이는 고민하지 않고 미리 봐 두었는지 제일 멋진 금색 기사 피겨 하나를 샀다. 나와 아내 같았으면 퀄리티 대비 가격이 아까워 절대 사주지 않았을 테지만 손자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과 재미도 없는 공간에서 몇 시간씩 어른들과 다녀야 하는 아이의 마음이 만나 피겨가 아이 손에 쥐어지게 되었다.
미국 미술관이라 그런지 미국 화가들의 그림도 꽤나 많이 있었는데 그쪽 파트를 보고 나서 아내가 많이 지쳐있었기에 로비 카페로 갔다. 원래도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자리도 겨우 잡고 길게 줄을 서서 겨우 간식거리를 살 수 있었다. 간단하게 한 끼를 먹으려고 샌드위치도 사려했는데 이미 팔리고 없었다. 결국 과자와 커피를 마시며 한숨 돌리고 다시 구경을 시작했다. 이곳에는 한국관이 있어서 가봤는데 정말 거대한 나머지 몇 개의 전시실을 쓰고 있던 중국과 인도관 사이에 작게나마 있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우리나라 작품을 보니 뭔가 마음이 뭉클해졌다. 약탈 문화재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우리 한국 전시관이 규모를 키워 기증받거나 교환 전시를 통해 한국의 전통문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2층에서는 르네상스 회화부터 시작해서 드가, 세잔, 반 고흐, 고갱, 터너, 르누아르, 반 다이크, 루벤스, 피카소, 마티스, 모네, 마네, 고야 등의 작품들이 벽에 줄줄이 걸려 있어서 유심히 보았다. 이렇게 미술관을 다니다 보니 화가의 생애와 화풍에 대해 알게 되었다. 유럽에 있는 유수의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 중에서 겹치는 것들도 있었고, 유명한 작가들 작품은 골고루 나뉘어 소장되어 있다 보니 비슷한 그림을 찾아내는 재미도 었었다. 그리고 유명 작가들과 그림들을 오롯이 보면서 매력에 빠질 수 있는 미술관은 우리나라에서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최고의 선택이라 아이도 이런 재미를 아는 나이가 하루빨리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유명 화가들의 작품도 좋았지만 이집트 문명의 문화재를 전시한 부분이 제일 기억에 남았다. 예전 영국박물관에서는 시간이 많지 않아 쓱 보고 지나쳤는데 이곳에서는 그래도 하루 종일 시간이 있어서 다양하고 정교한 유물들을 그나마 꼼꼼히 볼 수 있었고 처음 보는 이집트 문화재도 여럿 있어서 더 관심 있게 보게 되었다. 역시 이런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올 때면 작품때문에 사진도 많이 찍게 된다.
생각해보면 이집트, 인도, 중국 그리고 우리가 세계사를 다룰 때 정말 간단히 다루는 나라들 조차 몇 천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데 그러한 나라들의 문화재들이 돌고 돌아 이곳 뉴욕에 함께 잠들어있다는 것도 아이러니였다. 지금이야 이렇게 보안이 철저하고 튼튼한 박물관의 유리관 안에 잠들어 있지만 여기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을지 유물들이 이야기를 한다면 눈물 없이는 못 들을 것 같았다. 거대한 박물관을 돌다 보니 바깥은 깜깜해지고 비도 그쳤다. 배고프고 다리도 아픈 우리는 저녁 7시가 다 되어 미술관을 나섰다. 하루 동안 9시간 정도를 내내 작품 보는데 쏟아부은 것이다. 아내와 어머니도 대단했지만 그 시간 동안 참고 같이 다녀준 아이도 정말 대단했다.
저녁을 먹으러 근처 레스토랑에 갔는데 인기가 많아서 예약 없이는 자리도 없다. 그래서 아내가 마침 가고 싶었던 푸드트럭을 향해 2km를 걸어서 갔다. 푸드트럭이었기 때문에 길에서 서서 먹어야 했다. 어머니는 이걸 모르셨는지 내색은 안 하셨지만 당황하신 듯했다. 사실 나도 그런 줄 모르고 갔다가 그래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다들 배고픈 와중이라 열심히 먹었다. 아이는 맛있다고 좋아했다. 디저트로 컵케이크와 푸딩을 사서 다시 휘황찬란한 타임스퀘어와 브로드웨이 42번가를 지나서 사람들의 홍수를 헤치고 호텔에 도착했다. 아이는 나와 레고 만들기 대회를 하고 어깨가 뭉친 나를 위해 안마를 해주었다. 여유 있을 줄 알았던 오늘도 두 눈에 수많은 그림과 유물을 눈에 담고 마음에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