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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ston trip

2020년 1월 26일(14일째)-보스턴 구시가지, 하버드 대학교

by 오스칼
뉴욕 맨해튼의 새벽

새벽 5시 알람 소리에 맞추어 나는 눈을 떴다. 깜깜한 가운데 화장실 쪽에서 새어 나오는 옅은 불빛이 눈앞을 구분하게 해 주었다. 이불 밖으로 느껴지는 새벽 공기가 다소 쌀쌀했다. 어젯밤에도 늦게 잠을 청했기에 일어나는 게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깊게 잠을 잤는지 아니면 오늘 또 다른 여행지를 간다는 생각에 다소 긴장되었는지 잠을 깨는 게 어렵지 않았다. 이어서 어머니와 아내도 일어났다. 아직 만 5세밖에 되지 않은 아이는 아직도 한참 침대의 포근함을 느끼고 있다. 짐을 간단히 싼 후 아이를 깨워 어스름을 등지고 뉴욕 거리로 나갔다. 하루 종일 시끄러운 도시도 이 시간만큼은 잠시 숨을 고르는지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 경적을 울려대는 차들은 거의 없었다. 낯선 도시에서 이방인으로서 거리를 배회한다는 것은 유쾌하면서도 때론 긴장감을 갖게 하는 감정소비의 원인이 되었다. 그렇게 찬 공기를 가르며 보스턴으로 가는 버스를 찾아 걸었다. 거대한 이층 버스는 우리를 온전히 먹겠다는 듯이 이미 입을 벌리고 있었다.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고 이내 버스는 출발했다. 온갖 세상 언어가 들리고 인파가 북적이고 경적소리가 가득 담긴 불야성의 뉴욕도 잠에서 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명이 밝아오는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어느 고전영화에서 보듯 낭만적으로 보였다. 승객들을 태운 버스는 길게 뻗친 도로를 끝없이 달려갔다. 주변은 건물, 나무, 들판으로 바뀌어가고 다시 많은 건물로 뒤덮인 도시가 나오니 보스턴에 도착했다.


프리덤 트레일 시작

보스턴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위치한 도시로서 주 자체가 미국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주이다 보니 보스턴 역시 미국에서 역사가 오래된 도시라 영국 식민지 시절 건물들이 도시 풍경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인구는 내가 사는 도시와 비슷한 듯했는데 광역권으로 묶여 도시들이 연달아 있다 보니 훨씬 규모가 커 보였다. 이곳은 미국 건국 초기부터 중심지였기 때문에 백인, 영국인, 개신교로 일컬어지는 계층이 휘어잡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 계층의 영향력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다. 미국 역사에서는 그 유명한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으로 독립 전쟁의 시발점이 된 곳이기도 하다. 필라델피아, 뉴욕과 더불어 미국을 대표하는 도시였기에 이곳 역시 상당히 컸으나 마땅한 항구도 없고 평야가 넓은 것도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정체되었지만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이름 높은 하버드 대학교, MIT를 비롯한 유명한 대학들이 위치하면서 교육 도시로 큰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도시 안에만 대학이 36개라고 하니 조금만 걸어다가 보면 대학교가 등장하는 도시였다. 우리가 잘하는 하버드, MIT 이외에 보스턴 대학교, 노스이스턴 대학교, 버클리 음대, 보스턴 칼리지 등이 이곳에 있다.


우리가 있는 곳은 보스턴

버스터미널에서 아침에 미리 싸온 남은 음식들을 먹어치웠다. 그리고 보스턴 거리를 걸어 프리덤 트레일의 시작점인 보스턴 코먼 공원에 도착했다. 햇볕이 쨍쨍한 화창한 날씨였기에 뉴욕보다 북쪽에 있어도 걷는데 문제가 없었다. 건물도 뉴욕과는 확연하게 분위기 차이가 났다. 프리덤 트레일은 1958년 지역 저널리스트였던 윌리엄 스코필드가 시작했는데 보스턴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고자 보스턴 유적지구를 도보로 걸을 수 있게 계획한 것이다. 그래서 현재 9개의 유명한 역사 유적지가 하나의 길로 연결되어 있고 이 길을 찾아가기 편하게 벽돌이나 페인트로 칠해 처음 오는 사람들도 불편함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프리덤 트레일은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에 전공 강의로 들었던 미국사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셔서 처음 알았는데 그때 생각이 잠깐 났다. 따로 가이드북을 사지는 않고 인터넷의 후기 설명을 보면서 총 4km 정도의 프리덤 트레일을 따라 걸었다. 길이 따라오라고 표시되어 있으니 지도 찾을 것도 없이 편했다. 가는 길에 만나보았던 의회, 교회, 집회장, 선박 등을 살펴보며 미국 독립의 시작이 된 자랑스러운 도시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보스턴은 영국 식민지 시기와 독립전쟁 시기의 유적이 많아 미국의 아테네라고 불린다고 했다.


존 하버드 동상에서

1시간 정도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긴 3시간 정도 프리덤 트레일 워킹을 하고 우버 택시를 이용해 하버드 대학교로 갔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이자 명문대라고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대학인 아이비리그 최고의 대학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이기도 했다. 죽으면서 재산의 절반을 기증한 존 하버드 동상에 가서 발등에 손을 대고 사진을 찍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역시 그의 발등은 수많은 사람들이 만진 덕분인지 번들거리고 있었다. 마침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별로 기다리지 않고 바로 찍을 수 있었다. 왜 이걸 해야 하는지 모르는 아이에게는 이 학교 다니면 장난감을 원 없이 살 수 있다고 하니 오고 싶다고 했다. 아내는 여기 와서 좋은지 사진을 이곳저곳 찍는 거에 요구사항이 많았다. 기념품 샵에 가서 아이에게 줄 모자를 하나 샀다. 이 주변은 영화 '굿 윌 헌팅'에 나온 곳인데 아내가 이 영화를 무척 좋아했기에 아내가 느끼는 감정은 남달랐다.


다시 우버 택시를 이용해 보스턴이 자랑하는 퀸시 마켓에 갔다. 아내가 찾아놓은 랍스터 샌드위치 가게에 가서 랍스터 샌드위치 3개, 크랩 샌드위치 1개, 조개 차우더 수프 1개, 랍스터 수프 1개, 콜라 1개를 주문해서 먹었다. 나는 비교당하는 랍스터가 기분 나쁘겠지만 인 앤 아웃 버거 다음으로 미국에서 최고의 음식이라고 극찬했다. 정말 단순하게 빵 사이에 랍스터 살이 가득 차 있었는데 맛은 심플하면서 신선하고 랍스터의 풍미가 살아있는 샌드위치였다. 먹다 보니 목이 막혀 혹시 콜라 리필이 될까 싶어서 물어봤는데 종업원이 원래 리필이 안되는데 관광객인 것 같으니 쿨하게 해 주었다.


먹고 난 후 천천히 보스턴의 올드타운을 걸어서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고 다시 5시간을 달려 뉴욕에 도착했다. 아이는 잠 한숨 안 자고 다섯 시간 동안 조잘조잘 떠들었다. 어둠이 내리깔린 맨해튼에 들어서서 길이 막히자 목이 마르다고 징징대며 "I can hold it any more!" 하자 옆에 있던 사람들이 아이를 보고 웃었다. 호텔에 돌아가는 길에 유명한 뉴욕 피자 가게에서 내가 사랑하는 음식인 페퍼로니와 치즈 조각 피자를 사서 들어갔다. 창 밖에 빛나고 있는 뉴욕의 야경을 보며 12시 넘어서 잠들었다.

보스턴 전경
하버드 대학교 앞


랍스터 샌드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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