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28-19일(16-17일째)-존 F. 케네디 공항
아침 7시 핸드폰 알람 소리에 나, 아내, 어머니 모두 일어났다. 미국에서의 마지막이자 뉴욕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아왔다. 다들 정리를 한 후 아이도 일어나서 짐 싸기를 마쳤다. 8시에 1층으로 내려갔는데 운이 좋았는지 한 번에 바로 내려갈 수 있었다. 워낙 높은 층인 데다가 엘리베이터가 단 3대뿐이라 바쁜 아침이면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잡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나마 우리는 높은 층에 있어서 내려가기 편했지만 중간층이나 밑에 층 사람들은 이미 꽉 차서 만원인 엘리베이터 때문에 잡고도 번번이 놓치지 일쑤였다. 로비에 자리를 잡고 조식을 먹었다. 출국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았는데 이날 조식이 가장 맛있어서 나는 허겁지겁 많이도 먹었다.
그리고 우버 택시를 불러서 JFK공항으로 갔다. 원래는 뉴욕 국제공항이지만 암살된 케네디 대통령 이름을 따서 공항 명칭이 1963년 바뀌었다. 그래서 다들 JFK라고 부른다. 마지막 발길이 되어줄 우버 택시가 와서 무사히 탑승하고 24km 떨어진 공항으로 출발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우리 여행 스타일상 걷기도 많이 걸었지만 우버 택시를 이용해서 참 편하게 다녔다. 일반 택시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지는 않아도 비슷한 가격에 안전하고 바로 갈 수 있다는 장점과 무엇보다 팁을 내지 않아도 되니 불필요한 생각을 할 필요도 없어다. 아내는 지나가는 뉴욕 거리를 눈에 담았다.
드디어 도착한 JFK공항 1터미널은 생각보다 아침이라 그런지 차분해 보였다. 공항은 오래되었지만 각 나라를 대표하는 항공사들이 모여있어서 그런지 도착지를 보니 파리, 런던, 로마, 상하이, 도쿄, 인천, 이스탄불 등 세계의 대표도시로 떠나는 비행기들이 상황판을 채우고 있었다. 10시부터 여유 있게 공항에서 대기를 했다. 아이가 있어서 탑승할 때 먼저 탈 수 있도록 배려를 받았다. 일찍 탑승해서 4명이 한 줄로 맨 뒷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뒷자리에 사람이 타고 있으면 의자 시트 젖히는 것이 미안해서 애초 예약을 할 때 끝으로 예약했기에 편하게 갔다. 기분 탓인지 좌석 간격이 상당히 넓어 오고 가는 것도 불편하지 않았고 발도 편히 뻗을 수 있어서 프레스티지석 부럽지 않았다. 총 14시간의 비행 중에서 아이는 첫 7시간은 야무지게 기내식 먹고 만화 영상 보고 비행기에 탑재된 게임을 샅샅이 뒤져서 다 해보고 그다음 5시간은 쭉 자면서 왔다. 다들 긴 시간을 비행해야 해서 걱정을 했는데 14시간의 비행은 생각보다 평화로웠다. 몇 번 장거리를 타서 적응이 되었는지 이 정도는 견딜만했다.
반가운 우리나라,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날이 바뀌고 오후 5시가 넘어 어둑어둑 초저녁이 되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수많은 아파트를 보니 왔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날짜도 바뀌어서 화요일에 출발했지만 우리나라는 수요일이었다. 하지만 우리 몸은 아직 미국 시간에 맞춰져 한밤중이었다. 캐리어 짐이 늦게 나와서 공항버스 타러 갈 시간이 부족해 보였다. 일단 나는 아이 손을 잡고 버스를 향해 뛰었고 아내는 예매를 한 다음 우리를 따라왔다. 온 가족의 달리기 작전으로 떠나기 직전의 버스를 가까스로 잡아 탈 수 있었다.
아내의 표현을 빌리자면 너무 유명한 나라에 잠시나마 살아본 꿈같은 16일이었다. 아내는 영어에 관심 있어도 말만 배웠지 그것을 감싸고 있는 문화에 대해선 잘 몰랐는데, 미국인들에게 둘러싸여 지내다 보니 개인주의 문화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예를 들어, 음식을 주문할 때도 정해진 메뉴를 고르는 게 아니라 들어가는 재료나 조리 법 소스까지 각자의 취향에 맞춰주는 것과 부딪치면 바로 Sorry 하고, 화장실에서는 일회용 변기 커버를 까는 등 개인 간의 거리나 접촉에 민감해 보였다. 그러면서도 일회용품을 즐겨 쓰고 분리수거도 안 하는 등 개인의 편의를 극대화하는 이중적인 모습도 보여서 괴리감을 느꼈다고 했다.
아이는 이번 여행을 하면서 많이 컸고 변했다는 게 느껴졌다. 작년 이맘때 서유럽을 갔을 때만 해도 문이 안 열리는 극한 상황에서만 영어를 했을 뿐 별로 영어에 대한 추억이 없었는데 올해는 딴 사람이 되었다. 단순히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지도를 받거나 화장실을 물어보거나를 떠나 개인의 감정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통에 오히려 공공장소에는 가끔 아이를 제지해야 될 정도로 자기가 하고픈 말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었다. 자신감이 아내보다 더 높아서 아내 입장에서는 많이 뿌듯해했다. 그리고 몸집이 커진 만큼 나에게 안아달라고 하거나 목마 태워 달라는 소리는 거의 하지 않았다. 오히려 힘들어 보이면 내가 먼저 안아주거나 목마 태워 주고 오히려 아이는 본인도 가족으로서 하루 동안 열심히 걸었다는 사실에 인정받고 싶어 했다. 그래서 입으로는 언제까지 걸어야 하냐고 계속 물어봤지만 안아 달라는 말은 하지 않는 끈기를 보였다.
내가 느꼈던 짧은 소견으로는 일단 북미 동부와 서부를 동시에 간 입장에서 서부가 훨씬 따뜻하고 여유로워서 그런지 사람들도 푸근하고 살기 편해 보였다. 날씨 영향을 잘 받는 나이기에 그렇게 생각이 들었나 보다. 뉴욕은 미국이라기보다는 세계 도시라는 느낌이었다. 서울, 상하이, 런던 사람들이 그 나라를 대표하는 대도시이긴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그 나라의 정체성을 대변하지 못하는 세계 도시인 것처럼 당연히 세계의 수도라고 생각되는 뉴욕은 너무 많은 전 세계 사람들이 오갔다. 툭 치고 지나가는 사람이 파라과이,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인도네시아 등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기에 미국 감성은 아닌 듯했다. 예전 아일랜드에서 더블린에 갔을 때 택시 기사 아저씨가 진정한 아일랜드를 느끼려면 더블린이 아니라 시골로 가야 한다고 했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미국의 풍경들은 대중문화에서 눈이 아프게 보았던 풍경들이라 이질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잘 알던 장소에 와서 이렇구나 하고 느꼈다. 그만큼 우리가 미국 문화에 노출이 많이 되었다는 뜻이겠다. 그리고 환경오염의 주범 국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캐나다만 해도 환경을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았는데 여기는 죄다 일회용품에 분리수거는 없다. 그저 다 하나의 쓰레기통에 버렸고 버리는 게 음식물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 구분조차 안 하니 평생 분리수거의 세상에서 살았던 나는 너무 놀랐다. 미국인들처럼 살려면 지구가 7개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과연 그럴 것 같았다. 다들 아프지 않고 무사하게 북미 대륙 횡단 여행이 끝났다. 다음 여행지를 또 생각하게끔 하는 멋진 여행의 마무리였다. 다들 기억 속에 잠들어 있던 집에 돌아와 냉골 바닥인 방에 뜨끈한 온돌을 켜고 후끈한 한국인의 잠자리를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