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10개월 아이와 홍콩&마카오 여행 준비
홍콩과 마카오는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이미 머릿속에는 이름 모를 거리와 인파가 뚜렷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보았던 홍콩 누아르 영화와 요즘 한국 영화에 이르기까지 홍콩과 마카오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워낙 많이 있었기 때문에 익숙하면서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특히 홍콩은 철없던 어린 시절에 무수히 봐왔고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도 의리와 낭만을 그리며 보았던 영화들이 있었기에 마치 영화 기행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홍콩은 과거 중국이 청나라 시절에 영국과 싸웠던 아편 전쟁에서 패한 후 영국의 식민지가 된 것으로 익숙하다. 1839년에 일어난 제 1차 아편 전쟁으로 인해 난징 조약으로 홍콩 섬이 대영제국으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영국에게 영구적으로 할양되었고, 이후 애로호 사건이 빌미가 되어 영국이 일으킨 제 2차 아편 전쟁에서 또 패하면서 베이징 조약으로 청나라는 영국에게 카오룽 반도를 할양하게 된다. 이후 영국은 1898년 카오룽 반도의 북쪽에 있던 신계 지역을 99년 임대 형식으로 얻으면서 더욱 크기가 늘어나게 된다. 이때 99년이라 함은 영원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고 시간이 지나면서 신계 지역에 대한 반환 문제가 대두되자 결국 같은 생활권이자 도시권으로 묶인 홍콩 전체가 중국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카오는 미국의 라스베이거스와 더불어 도박 도시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으며 많은 홍콩, 중국인이 가서 돈을 쓰고 있어서 오히려 원조인 라스베이거스보다 도박 비용이 뛰어넘는다고 한다. 마카오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는데 포르투갈인이 마카오에 들어오게 된 것은 홍콩에 영국인들이 들어온 것보다 훨씬 오래 전인 명나라 때라고 전해진다. 16세기부터 교역을 하던 포르투갈인들이 눌러앉아 살기 시작해서 1888년에 청나라와 포르투갈 사이에 맺어진 통상 조약으로 인해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된다. 그리고 본토인 포르투갈의 영향력이 줄어들기 시작하자 자치 형태로 운영되다가 식민지가 된 지 백 년이 훌쩍 지난 1999년 12월 20일에 중국으로 반환이 되어 21세기가 되기 전에 홍콩과 마카오 둘 다 중국의 영토 안으로 편입되었다. 마카오는 홍콩처럼 거대 도시가 아닌 인구 60여만 명에 면적도 좁아서 도시로 걸어 다니면서 여행이 가능하고 포르투갈의 영향으로 유럽 문화가 짙게 배어 있기 때문에 중국 안에서 또 하나의 유럽이라고 불리고 있다. 그리고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 된 이후 무역항으로서 매력을 잃어가자 도박 산업이 크기 번성하더니 지금은 국제적인 도박 도시로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현재 홍콩과 마카오는 중국의 일국양제(一國兩制) 정책에 따라서 공산당이 일당 지배하는 본국과는 다르게 민주주의 방식을 따르고 있으며 이로 인해 중국과 마찰을 빚기도 하여 최근에는 홍콩 민주화 시위에 대한 탄압이 강압적으로 이루어져서 국제적인 논란을 만들어왔다. 자그마한 항구에서 시작해 영국과 포르투갈의 식민지를 겪고 이제는 세계 G2 중 하나인 중국의 품 안에서 다른 운명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두 도시는 여전히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아시아의 별로 우리는 그 별을 만나러 가고자 여행 짐을 꾸렸다. 아이 용품이 있으니 최소한의 짐으로 어른 짐을 꾸렸고 환전은 홍콩 달러로 미리 환전해서 가기로 했다. 중국 영토이지만 일국양제로 인해 다른 행정 체계를 갖고 있는 특별행정구역이라서 화폐 단위도 달라서 중국이지만 다른 나라 여행 준비하는 기분이 들었다. 미리 소아과에 가서 여행 관련한 처방을 받고 철저히 준비를 했는데, 여행 전 날에 아이가 스티커를 목에 삼켜서 빼내는 해프닝이 생겨서 걱정 반 기대 반의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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