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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칼 May 30. 2021

천장지구(天長地久)를 향해

생후 10개월 아이와 홍콩&마카오 여행 준비

2014년 봄을 알리는 3월 중순에 아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여행을 좋아하던 나와 아내는 열심히 육아를 하고 있으면서 여행에 대한 꿈을 잠시 접고 있었다. 아이 키우는 것에 대해 적응하면서 초보 부모로서 좌충우돌하면서 지내다가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는지 스멀스멀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이가 너무 어리기 때문에 국내 여행을 생각했지만 이미 그해 여름부터는 아이를 데리고 국내 여행을 다니고 있었기에 더 멀리 나가고 싶은 생각이 올라왔다. 일단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나간다는 데 쉬운 것은 아니었기에 주변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걱정과 만류를 많이 하고 아이가 한 명이기에 괜찮을 것 같다는 말도 들려왔다. 아직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하는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것에 대해 처음이기에 확신이 없었던 우리 부부는 마침 어머니께서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는 외삼촌 가족과 해외여행을 가고 싶어 하셨고 새롭게 가족이 된 아이를 축하하는 의미로 여행을 가고 싶다 하셔서 해외여행으로 결정을 봤다. 이렇게 외삼촌 가족에게도 여행 계획을 알리고 함께 가지고 정해져서 여행하는 가족은 생후 10개월이 된 아이, 나, 아내, 남동생, 어머니 그리고 평소 친분이 두터운 막내 외삼촌 가족 4명으로 총 9명이 움직이는 대가족 여행이 되었다. 


첫 해외여행부터 9명이 움직이는 여행이라 준비를 담당하게 된 나와 아내에겐 다소 부담이 되긴 했었다. 그래도 아이를 돌아가면서 봐주실 수 있는 어른이 우리 외에도 3명이 더 있어서 마음을 놓기로 했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결정을 일임하셨는데 아이 위주로 고려를 해서 생각을 했다. 먼저 여행지를 정해야 했는데 비행기 거리가 짧은 곳으로 선정해야 했다. 검색을 해보니 비행기 안에서 압력 때문에 우는 아이, 좁은 공간에만 있으니 소리 지르거나 우는 아이 등 다양한 이유 때문에 아이를 데리고 비행기 타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많아서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월 한겨울에 떠나니 우리나라보다 추우면 안 되고 이왕이면 더 따뜻한 날씨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이 움직이니 음식도 입에 맞고 혹시 아이가 아프면 데리고 갈 수 있는 병원 체계가 잘 되어 있는 곳을 생각해보니 일본, 중국, 대만, 홍콩, 괌, 오키나와 정도가 생각났다. 첫 여행이고 다들 휴양하는 여행은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모두 안 가본 곳과 도시 안에서 이동하기 편리한 곳을 고려하다 보니 홍콩을 가기로 했다. 그리고 홍콩과 함께 마카오까지 묶어서 홍콩과 마카오를 가기로 낙점했다. 그렇게 도시가 정해지니 그 이후 항공권을 예약하고 호텔을 정했다. 호텔을 정할 때 도시 안에서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 편하게 교통이 편리한 중심지로 정했다. 시설 또한 베이비 케어가 가능한 곳으로 정해서 아기 침대 등을 구비받을 수 있게 했다.


홍콩과 마카오는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이미 머릿속에는 이름 모를 거리와 인파가 뚜렷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보았던 홍콩 누아르 영화와 요즘 한국 영화에 이르기까지 홍콩과 마카오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워낙 많이 있었기 때문에 익숙하면서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특히 홍콩은 철없던 어린 시절에 무수히 봐왔고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도 의리와 낭만을 그리며 보았던 영화들이 있었기에 마치 영화 기행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홍콩은 과거 중국이 청나라 시절에 영국과 싸웠던 아편 전쟁에서 패한 후 영국의 식민지가 된 것으로 익숙하다. 1839년에 일어난 제 1차 아편 전쟁으로 인해 난징 조약으로 홍콩 섬이 대영제국으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영국에게 영구적으로 할양되었고, 이후 애로호 사건이 빌미가 되어 영국이 일으킨 제 2차 아편 전쟁에서 또 패하면서 베이징 조약으로 청나라는 영국에게 카오룽 반도를 할양하게 된다. 이후 영국은 1898년 카오룽 반도의 북쪽에 있던 신계 지역을 99년 임대 형식으로 얻으면서 더욱 크기가 늘어나게 된다. 이때 99년이라 함은 영원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고 시간이 지나면서 신계 지역에 대한 반환 문제가 대두되자 결국 같은 생활권이자 도시권으로 묶인 홍콩 전체가 중국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카오는 미국의 라스베이거스와 더불어 도박 도시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으며 많은 홍콩, 중국인이 가서 돈을 쓰고 있어서 오히려 원조인 라스베이거스보다 도박 비용이 뛰어넘는다고 한다. 마카오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는데 포르투갈인이 마카오에 들어오게 된 것은 홍콩에 영국인들이 들어온 것보다 훨씬 오래 전인 명나라 때라고 전해진다. 16세기부터 교역을 하던 포르투갈인들이 눌러앉아 살기 시작해서 1888년에 청나라와 포르투갈 사이에 맺어진 통상 조약으로 인해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된다. 그리고 본토인 포르투갈의 영향력이 줄어들기 시작하자 자치 형태로 운영되다가 식민지가 된 지 백 년이 훌쩍 지난 1999년 12월 20일에 중국으로 반환이 되어 21세기가 되기 전에 홍콩과 마카오 둘 다 중국의 영토 안으로 편입되었다. 마카오는 홍콩처럼 거대 도시가 아닌 인구 60여만 명에 면적도 좁아서 도시로 걸어 다니면서 여행이 가능하고 포르투갈의 영향으로 유럽 문화가 짙게 배어 있기 때문에 중국 안에서 또 하나의 유럽이라고 불리고 있다. 그리고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 된 이후 무역항으로서 매력을 잃어가자 도박 산업이 크기 번성하더니 지금은 국제적인 도박 도시로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현재 홍콩과 마카오는 중국의 일국양제(一國兩制) 정책에 따라서 공산당이 일당 지배하는 본국과는 다르게 민주주의 방식을 따르고 있으며 이로 인해 중국과 마찰을 빚기도 하여 최근에는 홍콩 민주화 시위에 대한 탄압이 강압적으로 이루어져서 국제적인 논란을 만들어왔다. 자그마한 항구에서 시작해 영국과 포르투갈의 식민지를 겪고 이제는 세계 G2 중 하나인 중국의 품 안에서 다른 운명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두 도시는 여전히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아시아의 별로 우리는 그 별을 만나러 가고자 여행 짐을 꾸렸다. 아이 용품이 있으니 최소한의 짐으로 어른 짐을 꾸렸고 환전은 홍콩 달러로 미리 환전해서 가기로 했다. 중국 영토이지만 일국양제로 인해 다른 행정 체계를 갖고 있는 특별행정구역이라서 화폐 단위도 달라서 중국이지만 다른 나라 여행 준비하는 기분이 들었다. 미리 소아과에 가서 여행 관련한 처방을 받고 철저히 준비를 했는데, 여행 전 날에 아이가 스티커를 목에 삼켜서 빼내는 해프닝이 생겨서 걱정 반 기대 반의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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