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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칼 May 30. 2021

英雄本色의 무대에 서다

2015년 1월 10일(1일째)-쳅락콕 공항, 옹핑, 침사추이

인천 국제공항으로 가는 날 새벽 2시에 같은 도시에 사는 막내 외삼촌 가족을 픽업하고 공항으로 갔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 공항까지는 차로 달려 3시간이 걸리기에 넉넉하게 4시간을 잡고 운전을 했다. 서울에서 공부하는 사촌동생 2명과 일하고 있는 동생은 서울에서 인천으로 합류하기로 하고 아이, 아내, 어머니, 막내 외삼촌과 외숙모를 모시고 공항으로 갔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는 운전하는 내내 막힘없이 뚫려 우리의 여행이 시원스럽게 이루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두컴컴한 가운데 가로등만 빛나는 고속도로에는 차들이 거의 없었고 낯선 곳을 향해가는 우리를 위해 포근하게 안아주는 듯했다. 인천 국제공항을 운전해서 가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서 운전하면서 지나치는 풍경도 낯설어 이미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여행지에서 볼거리, 먹을거리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을 테지만 처음으로 아이를 데리고 가는 해외여행이라 걱정이 되긴 했다. 가는 도중에도 약은 잘 챙겼는지 어디 열은 안 나는지 신경이 계속 쓰였다. 


인천 국제공항에서 아내와 아이

아직 아침 해가 뜨기도 전인 새벽 6시가 안되어 공항에 도착해서 먼저 도착 지점인 픽업 장소에 내려준 다음음 드넓은 야외 주차장을 찾아 주차를 하고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온 동생들과 오랜만에 만나서 출국 수속을 했다.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안고 있어서 일단 여권을 제시하고 아이 얼굴을 보였다. 수속 직원이 슬쩍 보더니 이내 여권을 돌려주었다. 이렇게 아이의 공항 입성 첫 관문을 무사히 통과했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화려한 조명이 가득한 면세점들이 늘어선 거리 안으로 들어갔다. 항공기 기내식이 없기도 하고 아침 식사 시간이 되어 다들 출출해 공항 안에서 아침 식사를 하기로 했다. 아이도 낯설어하면서 울거나 하지 않고 가족이 같이 있으니 기분이 좋아 보이면서 칭얼거림도 없이 잘 있었다. 밖에 다닐 때는 항상 내가 안고 다니기 때문에 나와 꼭 붙어 있었지만 식사하거나 쉴 때에는 아내나 어른들이 돌아가면서 봐주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다 같이 모여서 첫 해외여행을 대가족으로 떠나게 되니 기분이 뭔가 뭉클하면서 좋은 여행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을 했다. 특히 어머니께서는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막내 외삼촌 가족과 함께 떠나는 첫 여행이라서 그런지 기분이 많이 좋아 보였다. 그리고 화창한 아침의 기운을 받으며 9시 20분에 홍콩 쳅락콕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길지 않은 비행시간이지만 그래도 잘 있을지 걱정이 되었는데 비행기 안에서 아이는 얌전히 깨어있기도 하고 자기도 했다. 당연히 이곳이 어디인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주변에 다들 가족이 앉아 있어서 친숙한 사람들이 있으니 안심이 된 모양이었다. 다행히 울거나 소리 지르거나 아프지 않고 3시간 반의 비행을 끝냈다. 햇볕이 내리쬐는 화창한 홍콩의 한낮에 쳅락콕(赤鱲角, Chek Lap Kok) 공항으로 불리는 홍콩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비록 홍콩 누아르 영화에 클리셰처럼 등장했던 카이탁(啓德, Kaitak) 공항이 아니라서 주룽반도 홍콩 도심에 이루어졌던 아슬아슬한 곡예는 아니었지만 영화 '영웅본색(英雄本色)'의 주윤발이 바로 앞에 서성일 듯한 느낌을 받았다. 카이탁 공항은 1925년부터 홍콩의 허브였지만 1998년에 폐쇄되어 국제공항의 역할은 쳅락콕 공항이 이어가게 되었다.


홍콩 국제공항에 도착

홍콩 무비 키즈였던 나로서 처음 와보는 홍콩은 낯설지만 그렇다고 낯설지 않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어딘가 잠자고 있을 것만 같은 숨겨진 도시 같았다. 그리고 지금은 중국 영토로 엄연한 중국의 주권 아래 있는 도시이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이름보다는 홍콩이라는 이름 그 자체가 부각되는 도시라는 느낌을 받았다. 일국 양제의 형태를 받는 홍콩은 일단 쓰는 화폐도 중국 위안이 아닌 홍콩 달러를 쓰고, 홍콩이라는 이름이 여기저기 있기에 다른 행정 구역이구나 하는 생각은 더욱 확실해졌다. 하지만 생각보다 영어에 능숙한 사람은 적어서 놀라기도 했다. 각종 거리, 지명이 영어로 되어 있었고 오랜 시간 동안 영국의 식민지였기에 당연히 영어가 자연스럽게 통할 거라 생각했던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이미 반환된 지 20년 정도 되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만나지 못했다. 길을 물을 때 영어로 물어보면 영어 못한다고 만나는 사람이 많았고 오히려 띄엄띄엄이지만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홍콩인을 만나곤 했다. 많은 중국인이 이미 들어와서 살거나 우리처럼 여행 왔는지는 모르지만 영어의 효용성은 다소 떨어진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홍콩은 표준 중국어라고 할 수 있는 베이징어(푸퉁화, 普通话)를 쓰지 않고 광둥어를 사용해서 기본적으로 익히고 간 단어나 문장이 중국어와는 많이 달랐다. 짧은 비행시간이었지만 여행 책자를 뒤적뒤적 보면서 뒤에 나와있는 홍콩 회화를 몇 가지 외웠는데 광둥어라 그런지 홍콩 영화에 등장하는 대사 같은 말들이 많았다. 현재 홍콩은 중국 영토이기 때문에 베이징어가 공식 언어이지만 절대 다수의 홍콩인들은 광둥어, 영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광둥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1억 명에 가깝다고 하니 해외 교포까지 합쳐야 비슷할 것 같은 한국어 사용 숫자에 필적하는 언어라는 사실에 놀라웠다. 


베이비 시터와 가이드 그리고 아이

공항 입국장으로 나온 우리는 먼저 예약해 놓은 관광 티켓, 교통카드 등을 구입하고 이미 점심 때가 되었기에 공항 안에서 간단히 점심을 사 먹기로 했다. 이날 홍콩 여행 루트는 공항을 중심으로 놓았을 때 숙소 반대편에서 오후 일정이 있었기에 일정을 마치고 나서 공항에 들려 짐을 찾아 숙소로 가는 것이 동선이 좋아 보여서 일단 공항 짐 맡기는 곳에서 짐을 맡겼다. 이름 모를 중국 식당에서 마침 메뉴판에 사진이 있길래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을 주문해서 나온 음식을 먹는데 아이는 같이 먹지 못하고 모유를 먹었기 때문에 아내가 수유실이나 이동할 때 가리고 먹이곤 했었다. 점심 식사를 마친 다음 다들 첫 일정인 옹핑에 가기 위해 S1버스를 탔다. 옹핑은 길이 5km가 넘는 옹핑 360 케이블카가 명물이었는데 홍콩에서 가장 큰 섬인 란타우 섬에서 꼭 타봐야 하는 관광 명소라고 불려서 온 가족이 같이 가서 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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