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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망 Oct 23. 2021

"빨래"

[음악단편소설] feat. 가수 '이적'의 노래 '빨래'

https://youtu.be/8BzmSqVYsRk



3분 55초 동안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듣고 떠올려본 단상입니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음악과 함께 읽어보세요. 주인공의 성별은 가수의 성별을 따릅니다.






이미 아침인걸 안다.

잠이 깬 지 오래다.

그냥 누워있는 거다.

혹시 다시 또 잠이 올 수도 있으니까.

그럼 또 다른 꿈을 꿀 수도 있으니까.

아니 꿈을 안 꿀 수도 있지.

그냥 그렇게라도 하루가 가면 그만이다.


허리가 아프다.

누워있기도 힘드네.

베개에 등을 기대어 비스듬히 앉는다.

다시 잠이 오면 바로 침대로 기어들어갈 수 있게 이불을 턱까지 끌어당긴다.

부들거리는 느낌에 잠시 딴생각이 난다.

갑자기 눈물이 툭 떨어진다.

한번 흐른 눈물은 멈추질 않는다.

닦지도 않는다.


그냥 그렇게 한참을 있는다.


또 생각이 난다.

'어떡하지?'


기억의 조각이 다시 선명히 맞춰진다.

그 자리, 그 공간에서... 우리는 다시 또 앉아있다.

나는 또 이별을 한다.

무표정한 그 눈을 다시 마주한다.

날씨가 참 맑았는데...

차라리 비라도 오지...

화사한 햇살 때문에 헤어진 기억에서 조차 그녀는 눈이 부시다.


나는 왜 그날 그 옷을 입고 나갔을까...

하필 그때 왜 그 음악이 흘렀을까...

내가 정말 좋아하던 노랜데...

더 이상 그 노래를 즐길 수 없는 게 이별보다 더 아쉽네...

녀를 알기 전부터 좋아 노래였는데...

다 식은 커피, 갈 곳 잃은 손가락, 까끌거렸던 옷깃...

왜 하나도 잊히지 않을까...


그녀가 고개를 든다.

무슨 말이 나올지 이미 안다.

내가 무슨 말을 뱉을지도 안다.

그때 한 말이 아닌 다른 말을 해 본다.

진심이 아니었던 말들을 주워 담아 본다.

그게 아니었다고 말을 한다.

그녀의 대답이 바뀐다.

잠시나마 안도감이 든다.

하지만 들리는 목소리는 그녀의 것이  아니다.

내가 한 말에 내가 대답을 하고 있다.

내가 듣고 싶던 대답을...


다시 정신이 든다.


어디서부터 허상일까...


내가 진짜 이별을 한 게 맞을까...


눈물이 말라

눈가에 소금꽃이 되어 피었다.


아프다.

눈물이 날 때마다 따갑다.

마음도 따가운데

눈가도 따가운 게 너무 싫다.

일어나서 화장실로 간다.

찬물로 눈을 닦는다.

두 손에 찬물을 가득 담아 얼굴을 담근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이 아쉽다.

찬 물을 입에 가득 물고 숨을 참는다.

세면대 물마개에 비친 동그래진 얼굴을 쳐다본다.

싫다...

더 이상 참기 힘들어 토하듯 물을 뱉어낸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흘러 내려가는 모습을 본다.

남김없이 가져가 줘.

내 속에 있는 모든 것들.


거울을 본다.

나를 본 게 얼마만일까...

맘에 안 든다.

수건으로 세게 문질러 닦는다.

닦는다고 얼굴이 바뀌진 않아.

마른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어본다.

까슬거렸던 수염이 이제 부드럽다.

까슬거렸던 내 마음엔 아직 날이 서있다.


그녀의 말들은 아직도 아프다.

그날...

더 아픈 말들로 나는 내 마음에 방패를 쳤다.

그 방패가 깨진 유리조각이 되어 다시 나를 찌른다.


그녀는...

그런 나를 잊을 수 있을까...


우리는...

서로를 잊을 수 있을까...


목이 마르다.

마실 물이 없다.

마실 컵도 없다.

찬물을 틀어 그냥 입을 대고 마신다.

널브러져 있는 컵들을 개수대에 넣는다.

구겨진 맥주캔과 쓰레기를 주워 담는다.

발에 치이는 물건들을 제자리에 가져다 둔다.

마음보다 몸이 더 힘들게 들어본다.


쉴틈을 주지 않다.

머리...

...


닦은 곳을 다닦는다.


바닥에 빈 공간이 보이고

구석엔 옷무덤이 생겼다.


또 뭘 해야 하나...


벽에 기대앉아 멍하니 주변을 둘러본다.

옷무덤이 눈에 꽂힌다.

지친 몸을 일으켜 세운다.


천천히 옷무덤으로 다가간다.


두 팔을 벌려 모든 옷을 들어 올린다.

옷무덤만 한 내 감정의 흔적도 들어 올린다.

작은 양말이 몇 개가 떨어진다.

정리되지 않은 내 감정도 떨어진다.

다시 허리를 굽혀 바닥의 양말을 줍는다.

굽힌 허리에 주워 올린 양말 대신 다른 옷들이 떨어진다.


다시 주워 올리려다 떨어진 옷들을 그냥 잠시 두고 본다.


하나도 남김없이 들어 올릴 수 없음을 안다.

흘러내린 내 감정도...


손안에 있는 옷을 단단히 움켜쥔다.

이것만이라도...


빨래를 해야겠다.

더러워진 옷도...

남겨진 내 감정도...


빨래로 모든 걸  다 씻어낼 수 없다는 걸 안다.


아니...

그대로 남아

내일의 내가 다시 오늘의 모든 걸 반복한다 해도...


지금은...

빨래를 해야겠다.


지금은...

뭐라도 해야만 할 것 같으니...





빨래를 해야겠어요

오후엔 비가 올까요

그래도 상관은 없어요

괜찮아요


뭐라도 해야만 할 것 같아요

그러면 나을까 싶어요

잠시라도 모두 잊을 수 있을지 몰라요


그게 참 맘처럼 쉽지가 않아서

그게 참 말처럼 되지가 않아서

무너진 가슴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난 어떡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만 할까요


가사_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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