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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Oct 24. 2021

감정은 자유로울 수 있잖아

“우리도 자유 부인 모임 함 해야지!” 아이 또래 친구 엄마들 모임에서 누군가 ‘자유 부인’ 이란 단어를 꺼냈다. 자유 부인이 언제부터 (아이 없는) 자유 부인의 대명사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옛날 옛적 소싯적 자유 부인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로부터 아이를 잠시 맡기고 친구들과 함께 짧은 여행을 다녀온다던지, 분위기 좋은 바에 밤마실 다녀온다는 이야기들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해외에 사는 우리들에게 자유 부인이란 먼 얘기였다. 한국의 주 52시간 근무와 칼퇴근 소식이 무색하도록 남편들은 여전히 바빴고, 곁엔 아이를 믿고 맡길 부모님도, 보모 아주머니도 없었다. 


대화는 선뜻 이어지지 않았지만 눈빛들은 조용한 가운데 반짝였다. 아이와 함께 하는 날들은 모두에게 크고 작은 기적이었을지 몰라도 우리의 하루가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건 사실이었으니. 


이곳에서 ‘엄마’라는 이름으로 만나게 된 사람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들로 만나서 아이 저녁 메뉴를 이야기하는 우리들에겐 사실 ‘엄마’ 이전의 공통점은 없었다. 남편을 따라 중국에 오게 된 사연들도 제각각, 한국에서의 직업이나 살았던 지역 모두 달랐다. 학교 선생님, 미술 전공자, 중국 유학 왔다가 만난 중국사람과 결혼까지 하게 된 엄마까지.. 우리 모두에겐 서로가 단번에 짐작할 수 없는 각자의 삶이 존재했었으나, 엄마라는 이름 앞에선 쉽게 드러나지가 않았다. 처음으로 자유 부인의 날이 성사되어, 저녁 어스름 작은 백 하나 맨 가벼운 몸으로 만났던 그날에야 알았다. 우리 모두는 누려본 자들이었다는 것을. 


레깅스와 헐렁한 티셔츠가 아닌, 예쁜 원피스 차림의 그녀들은 예뻤다. 맥주 첫 잔이 달콤하리만큼 시원했다. 과거엔 이런 게 일상이었던 적도 있었는데, 그때 마셨던 맥주는 왜 그토록 씁쓸했을까?  

“이러니까 집에 있는 아이들 생각도 안 난다~ 시간이 꼭 그냥 되돌아간 것만 같아. 하하하.” 한 엄마의 너스레를 또 다른 엄마가 너스레로 받아친다. “그럴 땐 배를 내려다보면 돼.” 다들 와르르 웃어대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현실은 현실이다. 그리고 인생의 매 순간에는 그때마다의 씁쓸한 현실이 존재한다. 


자유 부인이 되었던 그날 후, 떠올랐던 몇몇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쉬이 사라지지가 않았다. 친구들과 만나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시간들은 분명 자유로웠다. 편한 옷 보다 마음에 드는 옷을 입을 수 있었고 아이가 아닌 나 위주로 메뉴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단 몇 시간이나마 홀홀 단신 자유의 몸이었던 그날, 나는 생각했다. 결혼하기 전 뭐든지, 어디든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던 그때의 난 왜 자유롭지 않았었는가를.. 


80년대 초반 생들의 20대는 꽤 자유로웠다. 코로나 시대를 겪고 있는 지금 돌이켜보면 아마도 전무후무하게 자유로웠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예측해본다. 취업의 난관은 있었으나 적어도 대학 1, 2학년 동안에는 대학 시절의 낭만이란 게 남아 있었으며, 해외여행과 어학연수, 워킹 홀리데이 등이 봇물 터지던 시기였다. 취직해서 대기업 군대 문화에 졸다가도, 퇴근하면 동기들과 삼삼오오 모여 맛집에서 술 한 잔씩 기울일 수 있었고, 뮤지컬이나 영화, 전시회 등 누릴 수 있는 각종 문화생활도 다양했다. 시댁 왕 할머님께서 겪으셨던 6.25 전쟁 피난길 이야기도 아니고, 아버지 사업이 쫄딱 망해 아르바이트하며 9년을 대학 다녀야 했다던 남편 이야기도 아니었다. 우리 집은 평범했지만 엄마는 항상 나에게 백화점 옷을 입혀주고 싶어 했고, 유럽 여행도, 어학연수도 보내주셨다. 지방에서 올라온 몇몇 대학 친구들은 내가 콜라 한 잔을 빨대 두 개로 나눠 마시기만 해도 서울깍쟁이라며 핀잔 아닌 핀잔을 줬고 나는 그냥 웃었다. 


언제부터였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어느 순간 누군가 하는 말에 대부분 다 수긍하기 시작했고, 내 감정과는 상관없이 웃어줬다. 누가 봐도 착했던 난 착하다는 말을 혐오했다. 어디선가 들어본 ‘말 잘 듣는 아이가 위험하다’는 말은 바로 나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좋아하는 것이 딱히 없었고 먹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에 대답도 할 수 없었으며, 대부분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상태로 지내 왔다. 가장 잘하는 건 주어진 일을 책임감 있게 해내는 것뿐이었다. 온 세상이 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듯했지만 내가 잡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심장이 빨리 뛰고, 얼굴엔 열이 오르고, 이유 없이 쓰러져서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면 아무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한의원에 가서 약을 지어먹어도 뚜렷하게 나아지지 않아 그냥 그런대로 살았다. 학교 가는 광역 버스를 타면 자주 눈앞이 하얘지고 식은땀이 나서 잠깐 내렸다가 그 다음다음 버스를 타고 가느라 지각하기도 일쑤였다. 한 번, 지하철에서 쓰러졌을 때는 구급차가 왔다. 그래도 그냥 몸이 약해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다가 회사 다닐 때 만성 두드러기가 재발했다. 초등학생 때 몇 번 그런 적이 있었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처음 재발하는 것이었고 수시로 미칠듯한 간지러움과 수포가 올라와 약을 먹었다. 멀쩡히 회의를 하다가도 시도 때도 없이 두드러기가 올라왔기 때문에 하얗게 멀쩡한 얼굴로 있다가, “저, 갑자기 두드러기가 나서 조퇴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억울했다. 간지러워 미쳐 펄쩍 뛰고 데굴데굴 굴러야 알아줄 것인가 싶었다. 내 모든 인내심을 동원해 참고 또 참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겨우 뱉어낸 나의 표면적인 증상과 감정들은 그렇게 항상 하찮아 그지없어 보였다. 심장이 빨리 뛰어서 엄마 손에 이끌려 심전도 검사를 받아본 것 외에는 어떤 검사도 받아본 적 없었지만, 나는, 내 몸의 주인인 나는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나의 어딘가가 고장 나 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이제는 더 이상, 나는 나를 방관하면 안 된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상처 주고 싶지 않아 뭉툭하게 깎고 깎았던 나의 마음 안에는,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않았던 그 자리에는, 무성한 가시 투성이가 자라 따갑고 씁쓸하게 나를 찔러대고 있었다. 가려움도, 눈물도, 화도, 참는 데 익숙해진 나는 나의 감정에 사정없는 통제를 가하고 있었다.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는 이 세상에서는 자유의 가치가 하락한다. 자유(自由)란 외부가 아닌 자신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다. 존재의 고유성이 유지될 수 있을 때 한 사람의 자유의 불씨가 살아난다. 


오랫동안 감정을 통제하는 데 익숙했던 나에게는 지금 이 자유의 불씨가 정말이지 소중하다. 쪽잠 한 번 잘 시간의 자유와 마음껏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 같은 것들의 소중함을 이제는 안다. 펑펑 울어보기도 하고, 소리를 질러보기도 하고, 박장대소하며 크게 웃어보기도 한다. 남의 말을 듣고만 있던 내가 주절주절 수다쟁이가 되기도 한다. 순간의 감정에 보다 충실해진다. 눈앞에 놓인 자유를 손 내밀어 잡아보려 한 적 없었던 나는, 이제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 것들을 흘려보내지 않으려 한다. 매 순간 느끼는 감정 그 자체를 억누르지 않으려 한다. 쌓인 설거지를 하루 미뤄둘 자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공복에 마시고 싶은 커피를 한 잔 가득 마실 자유, 하고 싶은 걸 하고 하기 싫은 걸 하지 않을 자유, 아이를 재우고 나서 읽고 싶었던 책이나 드라마를 볼 자유, 남편과 맥주 한 잔 하며 이야기할 자유, 그렇게 점점 자유로운 시간과 소중한 감정들이 늘어간다. 


자유에도 여러 가지 모습들이 있다. 자유자재로 악기 연주를 하는 몰입의 경지,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지도 모른 채 책 한 권을 읽어 내려가거나 글을 써 내려가는 몰입의 시간은 자유롭다.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멍 때리며 듣고 있는 순간도, 서로의 눈을 마주 보고 아무것도 덧대지 않은 투명한 얼굴로 웃는 모습도, 네가 처음 보는 세상을 너의 신기해하는 눈으로 함께 바라볼 수 있다는 것도, 나에겐 모두 자유다. 


만약, 아이에게 삶의 진정한 자유를 느끼게 해 줄 수 있다면, 내가 그걸 해치지 않을 수 있다면 아이는 잘 자랄 거라고,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자유를 준다는 건 존재의 고유성을 인정해 준다는 말이다. 

자유롭다는 건 감정을 느끼는 나의 존재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 엄마가 된 지금도 감정은 자유로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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