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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Oct 24. 2021

나의 하루

울음소리에 눈을 뜨고, 울음소리에 잠이 들었다. 엄마의 하루는 그랬다. 매일매일이 새로운 패턴으로 급속히 변해 갔고 또 정착해 갔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건 아기나 나나 마찬가지였지만, 아기는 울었고 나는 울지 못했다. 방긋방긋 웃는 얼굴만 봐도 하루가 금방 지나갈 것만 같던 예상은 또 빗나갔고 끝이 없는 것만 같은 더딘 하루를 보냈다. 


다행인건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산후 우울증이라 할 만한 증상은 없었다.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해야 하는 것에 더 익숙하게 살아와서였을까. 나는 묵묵히 엄마로서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했다. 젖을 먹이고, 분유를 타고 울면 안아주고, 자다 깨면 또 안아서 재우고, 이유식 할 때가 되면 열심히 책을 들여다 보고 식단을 짜서 이유식을 만들어줬다. 일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하루의 체크리스트를 써서 하나씩 지워나갔다. 자주 깜빡해서이기도 했지만, 그건 하기 싫은 일을 할 때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 썼던 방법이기도 했다. 나의 의지를 온통 작은 노트 안의 체크리스트에 맡겼다. 어쨌든, 힘들었지만 죽겠다는 아니었으니 적어도 육아 지옥은 아니었으리라. 부족한 잠과 욱신거리는 몸뚱이가 온갖 복잡 다단한 감정들을 누르고 있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게 해외에서의 독박 육아는 힘에 부쳤고 ‘우울’이라 부를 수 있는 감정들도 마음에 오갔지만, 그걸 내가 아는 우울함으로 정의 내리기엔 어딘가 어색한 점이 있었다. 어쨌든 항상 혼자가 아닌 둘이었고,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을 때도 아기가 울면 벌떡 일어났다. ‘힘들다’와 ‘우울하다’는 조금 달랐다.  


예전의 나는 그랬다. 항상 해야 하는 것에 둘러싸여 있었던 나는, 무언가를 신이 나서 열심히 파고들어 본 기억이 없다. 목표를 갖거나 의지를 갖고 노력해 본 적이 없다.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도 나에 대한 기대를 서서히 내려놓으셨고 나는 모두를 너무 실망시키지 않는 적정한 선까지만 노력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무력감에 시달렸지만 어쩌면 그건 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졸업 전에 꽤 괜찮은 곳에 취직을 했으니 이걸로 됐다 싶었다. 내가 성취한 것들로 나를 인정받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성취하지 못했을 때 나 자신뿐 아니라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게 될까 봐 두려웠던 마음,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할 것만 같은 불안감. 그래서 나는 욕심도 뭣도 없는 그냥 착한 아이로 스스로를 감쌌다. 내 마음은 나 혼자만 아는 쪽이 편했다. 그렇게 함께보다는 혼자를 택했다. 어쩌면 나는 항상 우울했었는지도 모른다. 



아이와 함께하는 하루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은 단순한 행위의 연속이었다. 알람이 아닌 울음소리에 잠이 깼고, 분유를 탔고 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시켰다. 서툰 손동작이 조금씩 능숙해졌을 뿐, 나의 행위에는 여전히 아무 의미도 없었던 반면, 아이의 행동에는 의미가 늘어갔다. 먹이고, 달래고, 기저귀를 갈고, 씻기고, 재우고, 안아주고… 언제까지고 반복될 것만 같았던 패턴도 조금씩 바뀌었다. 먹이고, 웃고, 말을 걸어주고, 달래고, 기저귀를 갈다 웃고… 


나는 그저 조금 책임감 있는 엄마였을 뿐인데, 아기를 돌보는 나의 행동들은 나의 의지라기보단 체크리스트의 실행 정도였을 뿐인데, 아이는 나를 사람으로, 엄마로 대해주었다. 아이가 웃는 걸 한 번 더 보려고, 장난감이라도 갖고 노는 양 한 번 더 웃겨주면, 아이는 깍깍 웃다가 내 눈을 지그시 들여다봤다. 아기의 눈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며, 나는 내 인생 처음으로 내 마음 구석구석 옭아매고 있던 보이지 않는 칼날을 거뒀다. 아주 작은 것에도 움찔해버리는 정체 모를 마음속 두려움, 내가 나를 움직이는 건지 내가 만든 리스트의 존재가 나를 움직이는 건지 모를 착각 같은 것들, 의식하지 못한 채 몸에 배어있던 그것. 아이 앞에서는 그게 필요 없었다. 아이는 뭐든지 진짜를 봐줬다. 내가 엄마로서 서툴러도, 마음만큼은 진짜라는 걸 아이는 알아주었다. 


언젠가부터 서서히, 나는 아이와 함께 보내는 하루가 두렵지 않았다. 사람 만나는 게 항상 부담스러웠지만 아이와 함께라면 두렵지 않았다. 누군가는 말한다. 아이를 낳고 철장 없는 감옥 안에 갇혔다고, 나는 아이와 함께 보이지 않는 혼자만의 감옥에서 벗어났다. 


아이를 무릎 위에 앉혀 놓고 노래를 불러주고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줄 때도 있었고, 내가 아는 동화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들려줄 때도 있었고, 진짜 나의 이야기를 해준 적도 있었다. 글을 쓰듯이 문장이 생각나면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집안에서 아이를 업고 다니며 구석구석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발견하면 또 말을 건넸다. 어느 날은 옷장에 박힌 동그란 못 두 개를 보고 말을 걸었다. 그리고 혼자 킥킥대며 마커 펜으로 두 개의 점 밑에 빙그레 웃는 입을 그려 넣었는데, 그때 아기가 그 낙서를 보고 처음 들어보는 육성으로 소리 내어 크게 웃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샘이 터져 나오는 것 같은 소리였다. 그건 정말이지 작은 기적과도 같았다. 그 후로 나는 내가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모습과 목소리로 아이를 웃겨주기 시작했고, 그럴 때면 아이와 함께 태초의 즐거움을 공유했다. 즐거움의 겉치레 같은 걸 떼어낸 즐거움의 결정체란 분명 그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 결정체는 다름 아닌 자유였다. 


그렇게,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조금씩 하루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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