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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디아이 Apr 28. 2024

예민한 사람 속내 Interview

선천적 기질 위에 후천적 환경요인으로 예민성은 배가 되었어요.

기자: 예민하고 유별나다는 비난에 힘들었던 때가 있으셨다는데 속내가 어떤지 궁금합니다.


예민: 저는 태어나기를 예민한 기질을 갖고 태어났어요. 태어나서는 밤잠을 잘 못 이루고 밤새 우는 아기였기도 했고요. 생활면에서 부모님은 제게 엄살부리지 말라는 말을 많이 하셨어요. 억울하기 짝이 없었죠.

제가 느끼는 감정을 표현했는데 '너가 느끼는 감정은 거짓'이라고 한 셈이니까요. 예민하고 까다롭다는 비난은 90%이상 부모님에게서 들었어요. 


기자: 엄살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 보이 이렇네요.

[엄살] : 아픔이나 괴로움 따위를 거짓으로 꾸미거나 실제보다 보태어서 나타내는 태도나 말


예민 : 저의 첫째 아기도 역시 신생아시절 영아산통으로 한달가량 새벽에 잠을 못 이루고 울었는데요. 아기의 울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저의 아버지는 제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했어요. 저도 태어나서부터 밤마다 잠을 못자고 엄청 우는 아기였대요. 매우 예민한 아빠는 갓난아기의 울음을 견디다 못해 아기의 뺨을 막 때렸다고 제게 말했어요. 진지한 사과나 후회한다는 언급이나 표정이 없이요. 머릿 속에 생생한 아버지와의 불행한 기억들도 감당하기 힘든데 기억에도 없던 새로운 사실로 우는 아기를 볼 때마다 또다른 괴로움이 시작되었어요. 아버지는 왜 우는 아기를 키우며 가장 힘들어 할 때에 그런 이야기를 건넸을까요. 아마도 '너도 지금 굉장히 괴롭지? 그래서 내가 그랬던거야. 그러니 나의 행동이 이해가 가니?' 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감정자산이 제게도 대물림 되었는지도 확인하셨습니다.

아버지 또한 할아버지로부터 폭력을 대물림 받았어요. 아버지는 타인에 대한 연민을 느끼는 뇌구조가 일반인과 다르다고 생각해요. 폭력을 행사해도 아파하는 상대를 보고 감정을 조절하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역치가 매우 낮죠. 태어나서 눈 뜨자마자 맞이 한 '불행함'을 엄마로 착각한 새끼오리 아버지는 조금이라도 평안한 상태가 되면 심한 열등감과 의심, 부정성을 내포한 언어들로 집안을 다시 불행한 분위기로 되돌렸어요. 조상시대의 열악한 시절처럼 언제 들이닥칠 지 모르는 호랑이 공격에 대비해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뇌구조 기본값이 프로그래밍 시킨거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내면에 굉장히 많은 분입니다. 


뇌 연구에 의하면 아기는 생후 6개월만 되도 엄마가 아무리 감정을 숨겨도 엄마의 뇌파 진동에 다른 아기의 심정도가 불안정해 지는 그래프를 볼 수 있다고 해요. 언성을 높이는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아기의 소변에 스트레스 호르몬이 다량 검출된다고 합니다. 스트레스 조절기능을 담당하는 HPA라는 뇌기능은 생후1년 사이에 형성이 되는데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은 아기는 이 기능이 손상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기가 성인이 되어서도 조금의 스트레스에도 감정 조절이 안되고 우울, 불안장애, 기억력 손상이 일어나기 쉽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기가 성인이 되어 회복에너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훈련하면 회복탄력성을 키우고 다른 삶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합니다. 

현재 저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나쁜 영향을 주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일을 줄이고 잇어요. 제 아이에게 영향이 가기도 해서 아이가 어릴 때 만큼은 필요한 일이라 생각해요. 


선천적인 예민한 기질 + 후천적 환경 요인으로 저의 예민성이 배가되었다고 생각해요. 


기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약자 아기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아파오네요.


예민: 집집마다 차이는 있지만 출생순서에 따라 성격이 달리 형성되는 심리 이론이 있잖아요.

저는 첫째 자녀 + 살림밑천이란 말을 듣고 자란 딸 + 선천적 예민한 기질 + 긴장감 넘치는 환경요인으로 저의 예민성은 더욱 뾰죡해졌어요. 그런데 그 뾰족함은 감정 부정과 억눌림으로 타인을 향하기보다 자책하며 저 자신을 찔렀습니다. '예민한 이유가 없는데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니.'라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양가 감정으로 더 미치는거죠. 


보편적으로 첫째 아기를 키우는 경우 부모도 육아가 처음이다 보니 아기의 울음과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둘째 아기에게는 그보다 덜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합니다. 둘째 때는 첫째 때의 경험을 살리기도 라고요. 울음소리에 대한 데이터가 있기에 배고파서 우는 건지,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우는 건지, 아니면 어디가 아픈 건지 대처하는 마음도 한결 편안하죠. 부모의 얼굴은 아기가 세상으로 나아가는 통로이기에 아기는 좀 더 온순한 성격으로 자라날 경향이 크고요.

생후 24개월 아기의 뇌는 성인의 80% 정도에 달하는 뇌발달이 이루어진다는 하는데요. 부모의 민감한 반응에 뇌발달이 되어 온 첫째 아이의 영민성에 따라붙는 예민성은 양날의 검이라는 사실입니다. 집집마다 부모 개인의 경험의 역사가 다르지만 양육방식에 따른 보편적 인간의 행동방식이라고 합니다.


저도 아이 둘을 양육하는 과정에서 위와 같은 과정이 적용되고 있음을 느꼈어요. 아이 둘을 똑같이 키운 것 같은데 면밀히 들여다 보면 다른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첫째 아이 때는 물병의 재질부터 아기 입에 들어가는 쪽쪽이까지 성분을 따져보고 고민하는 시간이 많았어요. 반면 둘째 아이는 이미 공부해 놨던 기본 정보들이 구축돼 있으니 범위 내에선 웬만해선 괜찮다고 여겼던 것 같아요. 아이가 둘이면 물리적인 집안 일거리는 두배가 아닌 그 이상더라고요. 첫째 아이도 나름대로 어린 아이인데 그동안 기본값으로 받아 왔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자 불쾌감이 있는 울음소리를 보였어요. 반면 둘째 아기는 혼자 감정조절하는 법을 배워야 했어요. 아기 이유식 준비와 가제수건 외 거대한 양의 빨래와 개키기, 간식 등을 준비할 때 둘째 아기는  "어 그래~~ 엄마 곧 가~~~." 라는 오지 않는 엄마의 육성에만 의지했어야 했습니다. 좀처럼 와주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다 지치는 사이 아기는 스스로 감정조절 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아기에게 바로 갈 수 있는데 안 가는 거랑 정말 바빠서 못 가는 거랑 다르잖아요. 집안 살림을 할 때 내는 세탁기 소리, 이유식을 탕탕거리며 끓이는 돌봄 패턴과 공기도 아기의 귀에도 익어 머리만 엄마쪽으로 돌리고 눈알을 굴리며 상황을 이해해 줘요.


둘째 아이는 실제로 첫째 아이보다 예민성이 낮아요. 그런데 처음부터 그렇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출산 병원에서 시작된 젖병 수유룰 직접 모유수유로 바꾸는 과정에서 신생아의 예민성을 간파했습니다. 배고픈데도 먹기를 거부하고 2시간동안 울며 불며 막 눈 뜬 오리새끼처럼 태어나서 처음 입에 물었던 젖병을 지속적이고 끈질기게 요구했어요. 저를 도와주셨던 산후조리 선생님은 수십년 간 모유수유를 돕고 교육도 하시는 분이었는데 신생아인데도 고유의 기질을 알 수 있다고 하시면서 아기의 고집을 겪고는 '무엇을 해도 자기 뜻대로 꼭 이루어 내는 아이로 자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말씀해 주셨어요. 최근에 만났던 다른 아기는 혀 아래에 선천성 설소대가 불편하여 엄청나게 울었던 아기와 저의 둘째 아기를 양대산맥이라고 혀를 내두르며 웃으셨어요.


그래, 교육은 지금부터다 라는 마음으로 아기와 저는 수유시간만 되면 서로 땀을 뻘뻘 흘리며 인고의 시간을 버텼어요. '아가야, 배고프지 이번 타임에도 엄마랑 잘 해보자~축복이(태명)는 잘 할 수 있어~." 라고 등을 가볍게 두들겨 주며 격려해줬어요. 감정이 조절 안되는 날은 육아서적들을 보고 실전 대화법 문장에 밑줄 긋고 외운대로 말하려고 노력했어요. 너무 졸렸지만 성공하고 나면 먼 여행에 지니고 다니지 않아도 될 유축기나 젖병들, 분유, 젖병 소독 등을 떠올리며 버텼던 것 같아요. 울음은 2시간에서 1시간으로 줄었고 20분으로 줄어들다가 결국엔 수유시간에 엄마에게 안긴 지 1분도 안 되어 직접 모유수유에 성공하였습니다. 신생아 교육이 따로 있지 않구나 생각했습니다.


산후조리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완고한 아기도 기특했고, 끝끝내 저와 극적 합의를 이루어 준 아기도 기특했어요. 그냥 울면서 뭔가를 요구하는 생명력 자체가 기특했어요.


기자 : 아기의 양육과정에서 다져지는 예민성의 차이도 흥미롭네요.

첫째 아기의 에피소드도 있나요?


첫째 아이는 영아산통이 심해서 새벽2시부터 7시까지 우는 아기를 달래느라 한달을 거의 못 잤었어요. 남편과 저는 영화 속 좀비처럼 얼굴과 머리가 쑥대밭이 된 상태로 싱크대에 물을 틀어 백색소음을 내며 2시간이고 3시간이고 아기를 안고 달래야 했습니다. 서로 여유있게 마주보는 시간은 끝이었고 바톤터치로 인력을 분배했어요.

출산한 몸 상태로 아기를 키우며 잠 못자는 고통이 얼마나 큰 지  잘 알아요. 아침 해가 뜨고 아기가 울다 지쳐 잠이 들 째쯤 저도 잠에 빨려드는 도중 가위에 눌렸어요. 그런데 이불 안으로 눈두덩이가 전부 새카만 아기귀신이 올라와 와 저를 결박하는 거예요. 예민한 엄마가 예민한 아기를 키운다는건 정말 가혹한 형벌만 같았어요. 새벽 내내 악을 쓰고 우는 아기를 보고 '너 참 대단하다. 오죽하면 이렇게까지 우냐~.' 정말 안타까고 그랬어요. 이 정도 존재감이면 아기의 이름처럼 '해' 처럼 세상을 비추는 햇님이 될 상이다!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부부의 묵묵한 전우 정신과 한없이 자상한 부성애로 한달의 고비를 지나왔고 결국 평화의 깃발을 꼽았습니다. 그때 아기에게 말했습니다. '햇님아, 태어나보니 너의 아빠가 네 아빠인 기분이 어떠니?' 라고 말했습니다. 창 밖을 바라보니 이글이글 타는 황색 모래 세상에서 맑은 구름과 파란 하늘로 바뀌는게 보이드라니까요. 인간의 미성숙과 한계치를 확인하는 때였죠.



예민 : 저의 어린이집 시절도 떠올라요. 엄마는 제 머리를 세게 묶어서 어린이집에 보냈어요. 막내딸이었고 타고난 기질까지 예민성이 낮은 엄마는 당겨진 머리카락으로 인해 머리가 아프다는 말이 전혀 와 닿지가 않았어요. 엄마 본인에게 괜찮았기에 딸도 괜찮을거라 생각하셨죠. 깔끔하고 단정해 보여야 하는 면이 더 중요했기에 묶기 싫다는 제 의견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어쨌거나 묶어야만 했습니다. 당겨진 머리카락으로 신경이 온통 머리로 다 쏠려 어린이집에서도 편안하게 생활을 할 수가 없었어요. 묶었던 고무줄을 풀 때는 더 아팠죠. 원피스와 함께 신었던 두터운 흰 스타킹을 신으면 딱 달라붙는 느낌이 너무 싫어서 하루종일 불편했어요. 그 때는 원피스 입을 때는 무조건 입어야 한다고 하니 그냥 입어야되나보다 하고 살았어요. 추울 때도 너무 추워서 입술이 보라색이 되도록 달달 떨렸어요. 그 상태로 화장실에 가서 이를 닦았는데 너무 불편했지만 참고 이겨냈던 부분들은 사회화 과정이라고 생각도 들고요. 함께 큰 남동생은 예민성이 낮았고 저와 달리 잠도 많아 잘 자는 편이었어요. 저와 달리 감기몸살에 열이 불덩인지도 모르고 아무소리 않았던 동생을 칭찬하는 방식으로도 저와 비교하셨어요. 막내 아들에다가 잠도 잘 자는 아이였으니 더 이쁘긴 했을겁니다. 엄마도 사람인데 그렇지 않았겠습니까. 누구나 같은 고통을 느끼는데 다들 내색도 안하고 참는 건 줄 알았어요. 크면서 친구들과 사람들의 경험과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저와 같은 사람들이 많은데 유별나 보이지 않도록 자기 표현과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사회화 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남의 몸이 되어 체감하여 증명해 볼 수도 없으니 나 원 참 답답할 노릇입니다. 타고난 기질이 비난 받는다는건 너는 왜 이렇게 생겼냐고 아이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이에요. 달리 금수저가 아니고 자존감 수저가 진짜 금수저라고 생각해요.


기자: 긴긴 마음고생의 나날이었겠습니다. 예민성이 장점으로 발휘되어 인정받았던 경험이 있었나요?


예민 : 네, 초등학교 때는 가까운 거리에 사는 1살 차이 친척언니와 함께 봉숭아믈을 들이곤 했어요.

서로의 손톱에 잘 빻은 봉숭아를 올려 비닐로 감싸고 내일을 기대하며 함께 잠을 청했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제 손가락을 붙어 있어야 할 비닐은 온데간데 사라져 있었고 제 손톱은 물론 깨끗했죠. 한편, 저의 손길로 예리하게 잘 싸매졌던 언니의 손톱은 새빨갛게 물들여져 있었어요. 봉숭아물은 매년 그런 식이어서 언니에게 이번엔 잘 좀 싸달라고 푸념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여러 상황을 비추어 같은 상황에서도 좀더 두드러진 반응을 보이는 저는 항상 까다롭고 유별난 아이가 되었죠. 저의 감정을 이해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저만 꼭 외계에서 온 것만 같았어요. '너가 나보다 더 예민하잖아 그래서 나한테 그렇게 말하는 거잖아' 라는 타인의 감정을 해석 할 여력도 없었고 그저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대로 나 자신을 판단하는 일이 전부였어요.


기자: 성인이 되어서도 경험했던 상황이 더 있으신가요?


예민 : 성인이 되서는 저의 예민성을 저의 취미나 일로 몰아서 사용했고요.

일상 생활에서는 대수롭진 않은 불편함을 느꼈어요. 식당에 가면 스텐그릇에 담긴 밥공기를 받잖아요.

어떤 사람은 밥공기를 잘 받기도 하는데 저의 경우는 너무 뜨거워서 손톱으로 받곤 했어요.

집에서 요리를 하던 중에 끓어넘치는 냄비의 손잡이를 순간적으로 잡았는데  순간 너무 뜨거워서 미끄러지며 바닥에 떨어트릴 뻔 하기도 했어요.


기자: 주변에 예민씨 같은 분이 또 계신가요?


예민 : 디자인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떠올라요. 여자들은 예민성이 높았고요. 흥미로웠던 부분은 남자 디자이너들의 성향 또한 그랬던 것이었어요. 감수성이 섬세하고 예민성이 높은 분들이 많았어요.


사회생활을 하고부터는 저의 예민성이 일에 뾰족하게 발휘될 수록 능력이 향상됨을 느꼈어요. 성취로 인한 자기효능감과 자존감이 올라가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제는 타인이 제게 예민하다고 비난해도 저는 흔들리지 않아요. 저의 예민함으로 남에게 피해를 준다면 잘못된 거지만 예민성을 발위하여 일을 아름답게 완성하고 잘못된 점을 비난의 언어가 아닌 좋은 언어로 바로잡는 행동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예민함은 삶을 풍요롭게 해줘요. 같은 가을 하늘도 매일 다르게 느껴요. 자연을 섬세한 디자인 패턴을 관찰하며 얻는 행복도 누릴 수 있어요. 어제와 오늘이 또 다르니 지루할 틈이 없어요. 시간으로 봤을 땐 남보다 더 많이 느끼니 보통의 하루는 저에게 이틀이기도 할테죠. 한해를 돌아보면 정말 다사다난했던 경험이 모두 지혜의 통장에 차곡차곡 쌓이는 느낌이 들어 뿌듯합니다.



기자: 그렇다면 종합결론을 내려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예민씨가 느끼는 감정은 엄살도 아니고 그저 삶의 풍요로움을 깊게 누리는 사람이라고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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