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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토끼 Mar 08. 2021

육회: 2위가 되기까지

모험을 통한 취향의 재발견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이 질문을 들으면 한 치의 고민 없이 "떡볶이요"라고 대답한다. 예전 같았으면 "두 번째는 피자요"라고도 덧붙였을 것인데, 요새 피자의 자리를 위협하는 음식이 있다. 바로 '육회'다. 매주 가는 떡볶이집이 있지만 매주 가는 피자집은 없는데, 매주 배달시켜 먹는 육회집이 있으니 이미 2위라고 해도 되겠다.


육회가 피자를 제친 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시작은 아주 사소했다. 회사 사람들과  같이 점심을 먹는 자리에 곁들임 음식으로 육회가 나왔는데, 팀장님이 굳이 나를  집어 먹어볼 것을 권했던 것이다.


어려서부터 날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 생선회도 대학 새내기 때 선배들의 권유에 억지로 먹어본 것이 다였다. 물컹물컹한 식감과 비릿한 끝 맛을 새빨간 초장에 감추어 꿀떡 삼켰었다. 그런 내가 육회를 먹어 봤을 리 만무했다. 소고기도 촉촉함을 포기할지언정 무조건 핏기 없이 바짝 구워 먹던 나다. 고기는 당연히! 구워 먹는 것이라 생각해왔었다.


젓가락을 들고 잠시 고민했다. 나는 더 이상 스무 살 새내기도 신입 사원도 아니어서, 못 먹는 것은 못 먹는다고 웃으며 거절하는 스킬이 장착되어 있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궁금하기도 했다. 이 '날 육고기'는 대체 어떤 맛이길래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까? 이 생소한 음식은 어째서 저녁 회식자리는 물론, 점심 식사상에까지 올라오는 걸까? 어차피 자주 볼 사이라면 무슨 맛인지라도 볼까?


"먹어본 적은 없는데... 먹어 볼게요!"

비장하게 대답하자, 팀장님은 신이 나서 동그란 계란 노른자를  터트려 비비기 시작했다. 그렇게  앞접시에 ' ' 왔다. 일단 맛을 보고   먹겠으면 뱉으면  일이었다. 조심스레  점을 집어 입에 넣었다.

"앗, 배도 같이 먹어야 하는데..."

팀장님이 다급하게 외쳤지만 나의 젓가락질이 조금  빨랐다.


고소했다. 쫄깃한데 부드럽고, 짭짤한데 달콤했다. 처음 느껴보는 맛이었다. 처음엔 긴가민가 했는데, 배를 올려서 먹어보고, 무순과 함께 먹어도 보면서 깨달았다. 이건 맛있다!


그 뒤로 여러 육회 집을 접하게 되면서, 특히 광장시장의 어느 육회집에 빠지게 되면서, 예전에는 모험이었던 일이 지금은 일상이 되었다. 먹지 않던 음식을 먹어본 작은 시도가 나를 '육회가 있는' 새로운 세계로 인도해 준 것이다. 주말마다 성실하게 육회를 시켜 먹는 삶을 살고 있으니 이쯤 되면 감히 '떡볶이 다음'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되겠다.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의 101등 연습생이 갑자기 쭉 치고 올라와 최종 데뷔한 느낌이랄까. 이름조차 몰랐던 연습생이 알고 보니 이렇게 멋있는 사람인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시도해보지도 않고 '저건 절대 내 취향이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일은 좋지 않다. 소소하게 음식에 관한 일지라도, 이렇게 나도 몰랐던 나를 알아가게 된다.


반면 여러 번 실패한 음식도 있다. 남들이 다 좋아한다는 '곱창'이다. 사실 나도 안다, 곱창이 맛있을 거라는 걸. 길을 지나다 맛있는 냄새가 나서 간판을 쳐다보면 십중팔구는 곱창집이니까. 그런데 막상 한 점을 입에 넣으면 상상했던 그 맛이 아니라 두 점은 못 먹겠다. 이 사실을 이야기하면 아직 괜찮은 곳을 못 가봐서 그렇다며, 맛있는 가게에 데려가 주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친구들 덕분에 곱창을 향한 모험은 몇 번 더 계속될 것 같다.


한 번은 성공했지만 꾸준한 취향으로 남지 않은 음식도 있다. '삭힌 홍어'다. 전라도에서 잠시 근무했을 때, 회사 직원이 소개해 준 맛집에서 처음 접한 음식이다. 그날 주방 이모님께서 서울 아가씨가 홍어 먹는 모습을 보겠다며 앞에서 지켜봐 주신 덕분에 한 접시를 뚝딱 비웠고,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고, 사이다 서비스까지 받았다. (서비스 때문이  아니라) 홍어는 상상했던 것보다 맛있었다. 그러나 그 뒤로 또 먹어본 적은 없으며 어디 가서 '홍어 먹어본 적 있다'라고 말만 하는 정도다.


세상은 넓고 아직 먹어보지 않은 음식은 많으며 나의 취향은 아직 다 개발되지 않았다. 더 많은 모험을 통해 제2의 육회를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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